글 | 윤덕향 전북대학교 고고문화인류학과 교수 새해가 시작된 지 한참 지난 시점에서 지난해를 돌아보는 것이 멋쩍고 쑥스러운 일이지만 지난해 도내에서 있었던 문화유산 또는 문화재와 관련한 많은 일중 경기전과 전라감영터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고자 한다. 주지하는 바와같이 경기전은 태조의 어진을 모신 곳으로 평양, 경주와 더불어 태조의 어진을 이곳에 모시게 된 것은 전주가 조선왕조의 발상지라는 것에 비롯된다. 즉 경기전은 태조어진을 모시기 위한 시설이며 태조 어진은 전주가 조선 건국의 발원지라는 것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예술적 가치나 사료적 가치와는 별개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국가에서 사적 339호로 지정한 것은 경기전이 가진 건축학적 의미보다는 태조의 어진을 봉안하고 있다는 것에 바탕하는 것이다. 지난 해 태조 어진이 관리과정에서 훼손된 것이 밝혀지자 전주시와 문화재청 사이에 어진의 보관장소를 둘러싼 갈등이 발생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일이다. 어진의 보관과 관련한 논쟁에서 태조 어진을 경기전에 보관할 수 없다는 측은 태조어진이 전주 이씨 문중이나 전주시의 것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것이므로 어진을 보다 잘 보관, 관리할 수 있는 곳에 보관·관리하여야한다고 한다. 이에 대하여 경기전에 어진을 보관하여야한다는 측에서는 문화재는 현장에 있어야 본디의 가치를 지니는 것이며 이를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것은 경기전의 역사적 의미와 지역민의 자존심을 손상하는 것이라고 한다. 경기전을 둘러싼 논쟁에서 대체로 관리주체인 전주시는 태조의 어진이 훼손된 책임이 있는 탓인지 수세적인 입장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며 상대적으로 어진을 이전, 보관하여야한다는 측은 훼손의 책임과 완벽한 복원 수리를 주장하며 이전의 당위성을 펼치고 있다. 진정한 주장이나 속내를 알 수 없고 그저 장님 코끼리 만지는 식이지만 언론에 보도된 바에 의하면 이전을 주장하는 측의 얘기는 전주시가 문화재,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태조 어진을 보관, 관리할 능력이 전혀 없는 것으로 몰아세우는 것 같다. 이에 대해서 전주시는 어진전을 신축하여 어진을 모실 것이므로 전주에 보관하여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경기전이 국가지정문화재인 사적이라는 것을 구태여 들먹이지 않더라도 문화재의 관리 주체는 국가이며 따라서 문화재의 보존과 관리에 대한 최종 책임도 국가에 있음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어진 훼손의 책임이 전주 이씨 종중이나 전주시에 있음을 분명한 일이지만 국가도 역시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스러운 것은 아니다. 어쩌면 조선 초 평양과 경주에 나누어 모셨던 영정 중 전주 경기전에 지금의 모습으로라도 남아있는 것은 전주 이씨와 전주시의 공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경기전에 적지 않은 국가의 지원이 있었으며 특히 최근 일제 강점기에 훼손된 경기전이 현재의 모습으로 정비된 것은 높이 평가할 일이다. 그리고 그런 노력은 근본적으로 조선 왕실의 발상지로서 전주에 자리하고 있는 태조 어진을 보다 잘 관리하고 그 상징성을 드높이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이제 그 상징의 결집인 어진을 다른 곳으로 이전하여 관리하겠다는 것은 어진이 지니고 있는 조선왕조의 발원지라는 상징적 가치를 폄하하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역의 자존심에 바탕한 편협함이 아니라 태조의 어진은 조선 왕조의 발원지에 대한 상징이라는 점에서 조선 왕조의 뿌리에 대한 확인이며 뿌리를 입증하는 것이다. 문화유산이 국가의 것이며 궁극적으로 국민의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태조 어진은 우리의 본관을 바꿀 수 없는 것처럼 경기전에 자리하고 있을 때 비로소 조선 왕조의 뿌리로서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따라서 조선왕조의 정통성을 잇고 있는 우리 대한민국에서는 조선 왕조의 발원지를 상징하는 어진이 본디의 장소, 즉 전주에 자리하여야함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며 그 보존이나 관리를 위한 각종 시설과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은 문화재의 궁극적인 소유권자인 국가의 당연한 의무인 것이다. 한편 도난과 화재 방지 등을 위한 시설을 갖춘 어진전을 신축하여 어진을 보관 관리할 것이니 전주에 어진을 두어야한다는 전주시의 주장도 문제의 본질은 아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정문화재에는 당연히 도난과 화재 방지를 위한 시설을 갖추어야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고 어진의 훼손은 당연히 지켜져야 할 일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또 앞으로 잘 관리할 것이니 믿고 맡겨달라는 식의 구차한 부탁이라면 하지 않음만 못한 일이다. 이와 관련이 있을 법한 것으로 지난 연말 전라감영 시굴결과를 둘러싼 논의가 연상된다. 전라 감영터, 도청이 이전되고 난 지역에 대한 시굴조사에서 통일신라시대의 기와편이 여러 점 확인되었고 그 결과에 힘입어서인지 아니면 오래전부터 전주시에서 틈날 때마다 검토하고 있는 후백제 관련 사업에 다시 힘이 실리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견훤의 후백제 유적으로서의 가능성이 거론되는 것 같다. 도청 이전부지에서 출토된 기와가 견훤의 궁터로 전해지는 동고산성에서 출토된 기와와 같은 시기의 것으로 추정되므로 도청사가 있던 곳에 후백제 유적이 있을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 통일신라 시대의 기와편이 나왔다고 하더라도 그 기와가 나온 곳에 건물터가 있었는지, 그 건물터나 기와가 견훤의 시기인지, 그리고 그 건물의 성격이 어떤 것인지 등이 확인되어야할 것이다. 이런 저런 것들을 차치하고 전라감영터에서 견훤과 관련된 건물, 특히 견훤의 궁궐터가 확인된다면 전주시가 어느 시기의 것으로 정비하거나 복원할 것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역사적으로 오랜 연원을 지닌 도시들의 경우 역사적 과정에서 나름의 의미를 가지는 시기가 있었고 관점에 따라서 각각의 모습으로 현재적인 의미를 가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들은 각자의 이미지로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비추어지는 것이고 이런 이미지를 중심으로 그 도시나 지역의 정체성을 운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전통문화의 도시로서 전주가 표방하는 이미지 또는 전주시가 내세우고자하는 전주의 정통성은 어떤 것인가 생각해볼 일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전통문화도시로서 전주가 추구하는 정체성의 핵심은 후백제의 도읍인가 아니면 조선 왕조의 발원이며 지방 행정의 중심지인가를 확인하여야할 것이다. 나아가 우리 전북의 이미지나 지역의 정체성은 어디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으며 대외적으로 어떻게 우리를 드러낼 것인지 머리를 맞대고 정말 진지하게 생각할 일이다. 관리 부실을 빙자하여 태조어진을 옮기겠다는 것은 단순히 문화유산인 영정을 옮겨가는 것이 아니라 이 지역의 역사적 정통성과 지역의 정체성에 대한 도전이다. 또 견훤의 일시적인 도읍으로서 전주를 강조할 것인지 조선왕조의 발상지이며 지방 행정의 중심으로서의 전주가 역사적 정통성을 지니는 것인지에 대해 우리의 모호함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태조 어진과 관련하여 정말 두려운 것은 정통성에 대한 방황과 혼돈인 것이다. 윤덕향 | 서울대학교 고고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전북대학교 고고문화인류학과 교수로 있으면서 전라북도 문화재 위원과 호남문화재 연구원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