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짓국’하면 서울 청진동의 해장국과 대구의 따로국밥이 먼저 떠오른다. 청진동의 해장국이나 대구의 따로국밥은 선지를 주재료로 한 것이다. 선지는 응혈 상태의 소 피를 일컫는 말이다. 모르는 사람이 없을 터이다. 그런데도 ‘선지국’이라 하지 않고 ‘해장국’, ‘따로국밥’이라 한 것은 아침 속풀이 해장이나 국밥으로 저 지방 사람들이 즐겨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따로국밥’은 선짓국 그릇과 밥그릇을 따로 내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선짓국은 한자어로 우혈탕(牛血湯)이라 일컫기도 하였다. 내내 같은 뜻이나 선짓국을 우혈탕이라 하여 혹 되잖은 점잔을 빼려는 것은 아니었을까. 이야 어떻든, 나는 때로 콩나물해장국이 아닌 선짓국으로 아침 술속이나 점심 요기(療氣)를 다스리기도 한다. 그동안 자주 간 식당은 「삼일관」(전주시 완산구 고사1동, 전화 284-8964)이었다. 콩나물국과 선짓국만으로 꽤나 오랜 전통을 지닌 집이다. 이른 아침의 해장이나 점심·저녁의 끼니를 때우는데도 많은 손님들이 단골로 찾는 집이기도 하다. 최근 다른 한 집의 선짓국 전문점을 알게 되었다. 몇 친구와 어울려 소문으로만 들어오던 그 집을 찾았다. 「양평해장국」(전주시 덕진구 진북동 991-2, 전화 271-0836)을 간판으로 내세우고 있다. 자리에 앉자, 벽면의 선전문이 눈길을 끈다. ① 인공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다. ② 육수에서는 육고기 기름을 제거하였다. ③ 뚝배기에 떠있는 기름은 고추기름이다 는 내용이었다. 이 집의 해장국도 물론 선지국을 이름이다. 식단에는 ‘양평해장국’(4000원), ‘버섯해장국’(4000원)이라 하였으나, 다같이 선지가 주재료였다. 주인 양승원씨에게 ‘양평이 고향인가’를 묻자, ‘아니다’는 것이었다. ‘왜 양평해장국을 내세웠느냐’는 물음에, ‘본점은 서울 강남에 있고, 이곳은 체인점이다’는 대답이다. 전주시내에만도 세 군데가 있다고 했다. 본점에서 보내오는 선지와 소스만을 사용하고, 끓이는 일과 상차림의 찬은 모두 체인점의 몫이라는 것이다. 이윽고 선짓국 뚝배기가 나왔다. 뚝배기 안에는 덩어리진 선지에 양(司)과 처녑 썰이 몇 가닥, 콩나물·파 썰이가 소복히 담겨 있고, 고추기름이 둥둥 떠있다. 지난날의 시골 음식다운 투박함이다. 어쩌면 거칠거칠한 것이 외려 입맛을 돋운다고 할까. 국물 맛이 목에 안겨 시원하다. 상차림도 초고추냉이장, 새우젓, 오징어젓, 무우지, 깍두기, 배추김치, 풋고추 썰이, 다지기 뿐으로 조촐하다. 양이나 처녑 가닥을 초고추냉이장에 찍어 먹으니 제맛이다. 김치, 깍두기도 설지않은 새금한 맛이다. 빛깔이나 매운 맛을 챙기자면 다지기를 요량하여 풀어 먹을 수 있다. 「삼일관」의 선짓국과는 또다른 맛이 돋는다. ‘어 잘 먹었다.’ 입가를 훔치며 이 집을 나서면서도 왜 양평(陽平)의 지명이 해장국 선짓국에 올랐을까는 풀리지 않았다. ≪신동국여지승람≫의 토산조(土産條)에도 뱅어·웅어·면어(綿魚)· 붕어·숭어일 뿐, 네 발가진 짐승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긴, 요즘에야 ‘신토불이’라 해도, 어디 그 지방 특산의 토종 먹거리를 좀처럼 챙길 수 있던가. 먹거리의 수송 또한 동서남북 하룻길인 것을. 솜씨좋은 한 숙수(熟手)가 고향 이름을 붙여 어느 지방에 자리잡아 그 음식으로 이름을 얻으면 동서남북에 체인점을 낼 수 있는 세상이기도 하다. 음식 맛에 쏠리는 게 음식점 손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