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슨 선생 노릇을 했다고』 (이오덕 지음, 삼인 펴냄) 글 | 박기웅 정읍 서영여자고등학교 국어교사 얼마 전 졸업한 지 10년쯤 되는 제자를 만나 담소를 나누었다. 그리고 며칠 뒤, 그 제자에게서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제자가 말했다. “오랜만에 선생님한테서 인간은 존엄하다는 말을 들었어요.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말이었거든요. 요즘 어디에서 그런 이야기 듣기 어렵잖아요.” 이오덕의 신간 <내가 무슨 선생 노릇을 했다고>를 읽으면서 문득 그 제자의 말이 떠올랐다. ‘인간은 존엄하다.’ 그리고 혼자서 중얼거렸다. ‘그래, 교육은 중요하다.’ 43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며 평생 우리말과 글을 살리는 일에 몰두하며 참교육 운동을 해온 이오덕은 너도 나도 교육에 대해서 말하고, 교육 얘기로 온 나라가 들끓어도 모두 교육에 대해 너무 모른다고 생각했다. 교육 아닌 것을 교육이라 믿고 모두 달려가니 아이들이 죽어가도 뭐가 잘못되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평생 교육자의 길에서 아이들 살리는 운동을 해왔고 꼿꼿하고 타협하지 않는 성품으로 돌아가시기 전까지 원고지와 펜을 놓지 않은 그가 남긴 교육 이야기는 새삼 아이들과 우리 교육 현실을 되돌아보게 한다. 이오덕의 글을 보면 그가 늘 미열(微熱)에 시달리고 있음을 눈치 챌 수 있다. 교육, 아니 어린 아이들에 대한 그의 사랑이 그를 늘 미열에 시달리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체온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글을 써나가면서 그의 체온은 점점 더 올라간다. 섭씨 40도. 그는 섭씨 40도의 체온으로 글을 쓰다가 그대로 글을 맺는다. 글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절규에 가깝다. 굳이 글의 구성을 따지자면 그는 서론과 결론이 없이, 그 자체가 바로 서론이자 결론인 본론을 힘차게 끝까지 밀어부친다. 다행히도 그의 절규는 그 혼자만의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열기는 고스란히 독자들에게도 전달된다. 그리고 독자들도 열기에 들떠 한참을 씩씩거리는 것이다. 그것이 이오덕 글쓰기의 힘일 것이다. 그의 관심은 온통 교육에 쏠려 있다. 그 관심은 체계적이라기보다는 직관적이고 관념적이라기보다는 구체적이다. 그가 책에서 그렇게 ‘삶’에 주목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너무 진부해서 더 이상 논의되지 않는 문제들, 도무지 부서지지 않아 모두 포기하고 있는 문제들, 자세히 알고 있으면서도 실천되지 않는 문제들에 대해서 쉴새없이 독설(?)을 내뱉는다. 그래서 처음에는 ‘에이, 또 그 소리!’ 하다가도 그의 끈질긴 설득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이다. 이오덕은 2003년 8월 일흔여덟의 해를 살면서 동시, 동화, 문학 평론, 글쓰기 등 수많은 책을 쓰고 엮었으며 1987년 전국교사협의회, 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설립 운동, 교육 학교 민주화 운동 등 현장에서 벌어진 민주교육 운동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참교육 운동, 우리말 운동, 글쓰기 교육, 어린이문학 비평 등을 포괄하는 그의 폭넓은 자취는 모두 교육자 이오덕에게서 시작된 것이었다. 특히 그는 살아있는 동안 아름다운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고, 또한 아이들의 글쓰기 자세에 대해서도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그의 글은 쉽고 잘 읽힌다. 하지만 그 쉬운 글에 담긴 내용은 가히 혁명적이고 전복적이다. 현실을 깡그리 부숴 버리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자는 의미에서 그런 게 아니고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교육의 방향이나 태도에 대해 정반대되는 입장을 고수한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예를 들어 그는 아이들이 하루종일 책상에 앉아 주어진 지식만을 열심히 받아들이는 것은 죽은 교육이라고 말한다. 돈 많이 벌어 편안하게 살려는 목표를 가진 사람은 심각한 병에 걸린 사람이라고 말한다. 아이들을 방안에 온종일 가두어 놓고 죽자살자 책만을 읽고 쓰고 외우게 하면 아이들은 거짓 흉내와 잡동사니 지식과 쓰레기 같은 관념으로 노예근성을 배울 뿐이라고 말한다. 아이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시하면 아이들은 자주성을 잃어버리고 창조성이 시들어 버려서 무엇이든지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끌려가기만 하는 기계가 되어 버린다고 말한다. 이 모든 것은 바로 우리 교육 현실에서 무수히 찾아볼 수 있는 사례가 아닌가. 본인도 인정하다시피 이오덕은 사회 구석구석의 불의에 대해 참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그의 비판의 영역도 매우 넓다. 아이들을 배려하지 않는 행정, 아이들을 점수 쟁탈의 경쟁장으로 내몰아 채찍질하기에 바쁜 교사, 자기 자식에 대한 이기적인 욕심으로 학교의 분위기를 흐리는 학부모, 그밖에도 체벌이나 촌지, 장사꾼이 되어버린 어린이 문학 등에 이르기까지 그의 비판의 촉수는 교육과 관련된 사회 전반을 샅샅이 살핀다. 하지만 그의 비판이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님을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교육에 관한 훌륭한 방법론들을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이를테면 그는 “삶을 빼앗은 교육, 삶이 없는 교육은 교육이 아니다. 생명을 억누르고 생명을 죽이는 교육이다. 가장 바람직하기로는 놀이와 일과 학습이 하나가 되는 교육이다. 살아있는 말하기, 살아있는 그림 그리기, 생명력 있는 글쓰기, 적절한 숙제가 필요하다.”고 외친다. 이오덕은 더 나아가 인간다운 인간을 만들기 위한 참교육의 지침을 친절하게 열거하기도 한다. 교육학 개론이나 교과서 같은 데서는 찾아보기 힘든 그만의 현실적인 교육지침인 셈이다. 아이들을 점수 따기의 노예로 만들지 말 것. 온갖 상에 대한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할 것. 아이들과 같이 놀아줄 것. 일을 하는 가운데서 교육을 할 것. 아이들의 자기 체험이나 마음에 따라 스스로를 표현하게 할 것. 말하기 교육에 힘쓸 것. 정직한 글을 쓰게 할 것. 생명의 존엄함을 가르칠 것. 학급에서 민주적인 삶을 몸에 익히도록 할 것. 사람이 가장 기본으로 해야 할 일을 아주 어릴 때부터 깨닫고 할 수 있게 할 것. 오염식품으로부터 아이들을 지킬 것. 돈 봉투를 받지 말 것. 그의 문장은 단호하고 말투는 다소 거칠다. 선과 악을 너무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경향도 있다. 교육과 관련된 우리나라의 모든 제도와 의식들이 급박한 위기 속에 빠져 있음을 그는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본질과 형식을 너무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측면도 있다. 그만큼 현실의 힘이 세다는 뜻일 것이다. 그는 역사 이야기를 하다가도 교육이야기를 하고 문화 이야기를 하다가도 교육이야기를 한다. 경제 이야기를 할 때도 그렇고 정치 이야기를 할 때도 그렇다. 지나친 교육 환원주의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43년 동안 일선 현장에서 온몸으로 뛰어 다녔던 그가 세상을 바꾸는 방법으로서 선택한 교육의 이야기는 그래서 가슴 뭉클하고 감동적이다. 읽는 이로 하여금 부끄럽게 만들고 새로운 결심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교육의 말석에서 선생입네 하며 서성거리고 있는 나에게도 성찰의 기회를 주는 것이다. “내가 무슨 선생 노릇을 했다고.” 너무 광범위하고, 너무 다양하고, 너무 뿌리깊어서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몰라 교육의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우리들에게 이 책은 외친다. “불감증을 치료하고 새롭게 시작하라.” 이오덕의 교육철학은 한마디로 <삶의 교육>이다. 그는 말한다. “아이들은 관념으로 자라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은 이른바 꿈으로 살아가는 것도 아니다. 아이들은 오직 삶으로, 삶의 행동으로 자라난다.” 우리는 그동안 삶이 없는 삶을 살면서 얼마나 외로워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