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에서 순창으로 가는 길에 운암대교가 있다. 산줄기 사이 길게 뻗은 계곡의 바닥을 따라 헐떡이며 길을 오르다 운암대교를 건너면 갑자기 눈앞에 펼쳐지는 운암호를 볼 수 있다. 그 모습은 자체로 한 폭의 수채화다. 문화공간 하루는 운암호가 시원스럽게 펼쳐진 산기슭에 고즈넉하게 자리하고 있다. ‘하루’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담겨 있다. 날짜를 세는 하루와 노을(霞)이 아름다운 누각(樓)이라는 뜻이 그것이다. 주변의 풍광도 멋있지만, 문화공간 하루는 이름처럼 한옥 건물 자체가 갖는 아름다움도 빼어나다. 때문에 문을 연지 5개월 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입소문을 타고 이곳을 찾아오는 손님이 많다. 문화공간 하루에서 손님을 먼저 반기는 것은 돌담길이다. 기와를 얹은 낮은 돌담길을 따라 들어가 입구에 다다르니 소복이 눈 쌓인 넓은 마당 너머로 펼쳐진 운암호가 가슴을 탁 트이게 한다. 마당 아래 반쯤 눈에 파묻힌 차밭도 운치를 더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운암호에 머물러 있던 시선은 곧바로 마당 안쪽에 자리한 한옥으로 이끌린다. 규모가 있으면서도 단아한 아름다움을 내뿜는 그 한옥에는 ‘송하정’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송하정은 본래 전북 고창의 해리에 있던 정자인 ‘송계정’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송계정은 조선말의 학자 송계 송영덕이 1919년 고향인 고창 해리면 상송에 낙향해 지은 정자이다. 그는 송계정을 인근 선배들과 함께 사랑방으로 이용했다. 지금의 건물은 그의 아들이 1933년 다시 크게 중건한 것이다. 앞 5칸 옆 3칸의 규모에 팔작지붕 겹처마를 얹은 송계정은 ‘2고주 5량의 소로 수장집’이라는 구조로 만들어졌다. 구조도 독특하지만, 단아한 기품이 느껴지는 아름다움은 정자를 옮겨 지은 대목장이 감탄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모두 송하정의 아름다움에 매료된다고 한다. 송하정 옆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소정은 행랑채와 문간채를 합쳐서 만든 별채다. 겉으로 보기엔 소박해 보이지만, 들어가 보니 한쪽 벽 전체를 통유리로 만들어 전망을 확보했다. 창호지로 스며드는 햇살도 따뜻하게 느껴진다. 문화공간 하루를 운영하는 이동이 씨는 “이곳에서 보는 저녁노을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고 말했다. 기다란 앉은뱅이책상 위 투박한 옹기에 화초가 자라고 있고, 한쪽엔 다기와 녹차 그리고 구절초 차가 미리 준비되어 있다. 이곳에는 언제나 차가 있다고 한다. 손님들이 와서 주문할 필요도 없이 준비되어 있는 녹차를 마시면 된다. 주문이 없으니 따로 계산도 하는 일도 없다. 그냥 와서 차를 마시다가, 갈 때에는 대청마루 위에 있는 궤짝에 사람 수대로 5천 원씩 넣고 가면 된다. 다도를 모르는 이를 위해 방 한쪽엔 매뉴얼도 비치해 놓았다. 구절초 차는 덤이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계절에 맞는 꽃차를 준비해 둔다. 녹차도 맛있지만, 통유리 너머로 운암호를 보며 마시는 구절초 차의 향기는 참 특별했다. 정자를 옮기면서 정말 좋은 일에 쓰겠다고 마음먹었다는 이동이 씨는 “내년 봄이 오면 옛날 ‘정자’에서 했던 일들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동양 철학을 주제로 한 다양한 강연이나 ‘선비차 시연’ 등을 염두에 두고 있단다. 방에서 나오니 서쪽 하늘로 막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노을에 물든 송하정과 소정이 빨갛게 빛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