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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 |
‘망우리’의 전사들
관리자(2006-01-06 11:36:13)

시간의 화살을 돌려, 과거 어느 순간으로 되돌아 갈 수 있다면, 나는 주저없이 유년의 한 때를 선택할 것이다. 저녁상 물리기 무섭게 방문을 열면, ‘달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 달이 둥더덩 떠오르고, 까만 장막 같은 어둠 속에서는 차마 하얀빛마저 감도는 그 샛노란 불꽃들이 여기저기 둥근 원으로 떠돌고 있다. 아, 가슴 설레게 찬란한 그 대보름 ‘망우리’가 이미 시작된 것이다. ‘말캉 ’ 밑에 고이 숨겨두었던 ‘불 깡통’의 철사 줄이 손에 잡히기 무섭게 헛간으로 달려가 관솔 다발에 ‘지푸락’ 한 다발까지 아름 터지게 부둥켜안고 뛴다. 눈도 참 많이 왔고 얼음도 퍽 두껍게 얼던 그 겨울의 한복판에서도 우리는 결코 온돌방에 이불 덮고 앉아 있을 새가 없었다. 눈만 떴다하면 산으로 들로 어떤 때는 읍내 장터까지 샅샅이 뒤지고 다녀야만, ‘뺑이 ’ 만들기, 연 만들기, ‘스케트 ’ 만들기, 굴렁쇠 만들기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어렵게 구한 재료들을 모아 이것저것 만들다 보면 서툰 연장 다루기 덕에 손등 깨지고 발등 터지기 일쑤였지만 그 일들은 너나할 것 없이 ‘망우리’ 전사들의 겨울나기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문화적 도구이었기 때문에, ‘자치기, 못치기’까지 연원을 알 수 없는 그 다채롭던 또래 문화를 ‘성아’들로부터 계승·향유하기 위해 우리는 그저 경건한 자세로 그 일에 몰두할 따름이었다. 망우리 전사들은 그 날도 ‘또랑가상’에다 장작불을 피우고 놀았다. 스케이트 타다가 손발이 시려오면 장작불로 모여들어 뻘겋게 언 손발을 불에 녹이곤 하였다. 그 ‘시망시란 ’ 친구들이 스케이트를 그냥 탈 리 있는가. 대여섯 줄로 늘어서 누가 빨리 달리는지 시합을 하기도 하고, 수심이 깊고 물이 솟아나 얼음이 낭창낭창한 곳을 골라 ‘기언시 ’ 통과해야 직성이 풀리고, 밀고 당기고 품앗이로 놀다 보면 얼음 위에서 뒹글고 자빠지기가 그저 밥 먹는 일만큼 흔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방한복이라고 해야 ‘나이롱’ 양말에 ‘개바지, 개샤쓰’에다 털신 한 ‘커리 ’가 전부인 그들에게 장작불은 구원의 빛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것도 찰나, 손발이 좀 녹녹하게 녹아들어 젖은 양말 옷가지에 모락모락 김이 피어나는가 싶은 순간, 나이론 소재의 양말과 옷은 불에 녹아 뻣뻣하게 딱딱해져 버리고 급기야 구멍이 나곤 하였다. 어렵게 마련한 그 방한복들을 허망하게 불로 태워 놓았으니, 집에 돌아가 어머니께 당해야 할 된서리 매운 맛을 돌려가며 다 본 까닭에 너나 할 것 없이 ‘어어, 큰일 났네’를 주술처럼 되뇌고 급기야 한 편에서는 울음을 참지 못하곤 하였다. 꼭, 밥 때가 되면 집집마다 아이들 부르는 소리가 동구 밖까지 들렸다. ‘아무개야 아무개야 밥 먹어라.’ 그게 신호다. 아이들은 너나할 것 없이 집으로 들어가고 점심상 물린 후에는 다시 팽이채 하나씩 들고 다시 고샅 공터로 모인다. ‘뺑이치기’도 성질대로 한다. 어떤 녀석은 ‘뺑이’ 가장자리에 자전거 체인을 거는 톱니바퀴를 끼워서 치기도 하였는데, 이게 한번 나타나면 다른 집 아이들도 어떻게든 그걸 구해다가 쳐대니 여기저기서 불이 튀곤 하였다. 동네 고샅고샅을 ‘도롱태’ ‘궁글리며’ 뛰어 다니는 치, 훅 트인 ‘논두덕’에 서서 연을 날리는 치, 겨울 볕 따사로운 점동이네 ‘담우락’에 붙어서 ‘못 치기’ 하는 치들이 그렇게 낮 시간을 보내고 오늘 이 밤 내내 현란한 ‘망우리’의 전사가 되어 일전을 불사하는 날이 바로 정월 대보름 전야이다. 허허벌판 가운데 자리를 잡기도 하고 미리 봐둔 둔덕 위에 자리를 잡기도 하여 마을마을마다 온통 ‘망우리’가 한창이다. 쉭쉭 소리를 내며 깡통에 뚫어 놓은 구멍 사이로 흠뻑 바람 먹은 불들이 뿜어져 나오고 그러다 흥에 겨운 몇몇은 하늘 높이 그 불 깡통을 날리곤 한다. 삼백예순날 가운데 이 날만큼 화려하고 흥겨운 밤이 또 있을까. 이 날 달이 그렇게 커다랗게 뜨는 까닭도 하늘에 계신 수많은 혼백들이 그 장관을 즐기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망우리’로 한창 흥이 돋아지고 불 깡통의 불티만큼이나 힘이 솟아날 무렵 ‘우아랫’ 동네의 ‘망우리’ 전사들은 불 깡통의 남은 불씨를 잘 추슬러 일전을 대비한다. 해서 불 깡통의 원을 아껴 돌려가며 시나브로 방천길을 따라 다가선다. 깡통을 던져 상대편에 닿을 만큼의 거리에 오면 누구누구 할 것 없이 이짝 저짝의 공중에 불 깡통과 돌맹이들이 불량하게 날린다.  불똥이 튀어 옷가지에 구멍이 나고 돌맹이에 맞아 머리가 깨지는 경우도 있지만 그게 전부다. 간혹 다시 더 패싸움을 벌이는 경우도 있지만 그저 서로 봐 줄 만큼 때리고 맞는 게 고작이다. 누가 시켜서 그런 것도 아니요, 특별히 그 동네가 미워서도 아니다. 우리의 할아버지들이 그랬고 아버지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도 그저 그렇게 해 왔던 것이다. 말하자면, 망우리 전사들이 누렸던 수많은 놀이들은 수천 년 동안 면면히 이어왔던 우리의 놀이 문화요, 한국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가장 그리운 유년의 정서였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방언들도 그저 그러한 행위들을 누리면서 체득해 온 그 많은 것들에 대한 명명 방식인 셈이다. ‘망우리’라는 말은 ‘望月’ 그러니까 보름달 달맞이라는 뜻을 가진 한자어의 전라도식 발음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망우리’라는 말은 대보름 달맞이를 의미하며 논두렁 밭두렁에 불을 놓거나 깡통에 불을 담아 가지고 노는 행위는 쥐불놀이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통상 ‘망우리’라는 말이 곧 달맞이며 쥐불놀이이었다. 게다가, ‘뺑이, 뺑이채, 연자새, 도롱태, 칼 스케트’ 등등은 서너 살 많은 형들이 노는 방식을 ‘구사리’ 먹어가며 배운 결과이며 동생들 또한 그러한 방식으로 말과 행위를 동시에 체득해 왔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우리 아이들은 그 유장한 우리의 놀이 문화마저 사장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얼음판에서 뒹글고 들과 숲을 뛰놀며 건강한 삶을 몸으로 배워온 유년의 놀이 문화들을 컴퓨터에 빼앗기고 어줍잖은 공부에 밀려, 몸만 커지고 머리만 약삭빨라진 아이들로 키우는 것은 아닌가 그리하여 우리 아이들이 또 우리만큼 나이를 먹은 후에 그들이 가지고 있을 유년의 정서는 과연 무엇일까를 한 번 쯤 생각해 볼 일이다. 이번 명절에도 고향에 돌아가면 세월의 때는 조금 묻었을망정 나와 같은 정서를 가진 ‘꾀복쟁이’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을 이어주는 가장 중요한 끈은 그 때 그 ‘망우릿날’ 아랫동네 아무개와 한판 붙었던 이야기이고, 줄 끊어진 연 아까워 어디까지 쫓아갔던 이야기이다. 올 명절에도 마을마다 사랑에 모여 밤이 이슥하도록 술잔 기울이며 자연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정취가 이야기꽃으로 다시 피어날 것을 상상하며, 나이 듦의 안타까움을 말하던 분들의 얼굴을 그려본다. | 언어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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