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의 중심에 배우와 관객이 있다 글 | 류경호 전라북도 연극협회장 전북연극의 한 해를 결산하는 제13회 소극장 연극제가 11월 26일부터 12월 31일까지 도내 7개 연극전용 소극장에서 10개 작품이 연이어 공연되었다. 올해는 과거에 비하여 양적으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작품의 수와 도내 연극인 모두가 빠짐없이 공연에 참여할 정도로 분주한 날들이 되었다. 그야말로 연말에 앞서 공연을 준비하느라 가을부터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한 해를 마감했던 연극계가 아닌가 한다. 전라북도 연극협회는 올해 전국연극제 지역예선대회를 겸하는 전북연극제와 고등학생들의 특별활동을 지원하는 청소년연극제 그리고 영호남연극제 소극장연극제 등 4개의 연극축제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했다. 이 중에서 극단별로 연극전용공연장에서 매년 말에 치러지는 행사가 소극장 연극제인 것이다. 올해는 특히 전주시립극단의 소극 페스티발과 묶어서 소극장연극제를 진행하였는데 연극제의 품격을 한 차원 끌어올린 계기가 되었다. 이는 우리 도내의 중견 연극인 대다수가 모여 있는 곳으로 3개 작품이 동시에 출품되었고 공연에 대한 투자 또한 뒤따라서 무대와 기타 제작 전반에 질적, 양적인 후원과 인적자원도 풍부한 상황이었다. 우선 전반의 개요부터 살펴보면 11월 25일 남원 둥지 소극장에서 개막한 장진 작 이행원 연출의 ‘허탕’을 필두로 소극장연극제를 시작하였다. 연이어 전주 창작소극장에서는 전주 시립극단에서 김태수 작 김영주 연출의 ‘해가지면 달이뜨고’, 노병갑 작 전춘근 연출의 ‘길 위에 서다’, 창작극회의 ‘Mr. 막득이-원제: 막득이 실연 전말기’가 곽병창 작 홍석찬 연출로 공연되었고, 대미를 장식할 인형극단 까치동의 전춘근 작 연출 ‘울랄라 난장판’이 무대에 올랐다. 판소극장에서는 전주시립극단의 ‘늘근 도둑 이야기’가 이상우 작 고조영 연출로 무대화 되었으며, 새롭게 단장하여 개관한 아하 아트홀에서는 극단 명태의 ‘이등병의 편지’가, 김제 청소년 수련관에서는 달란트 마을의 최경식대표가 ‘재미있는 판토마임 이야기를, 익산에서는 솜리문화예술회관에서는 장선우 작 안빈 연출의 ‘싼타클로스는 있는가’가, 그리고 군산의 사람세상 소극장에서 바스콘 셀로스 작 최균 연출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가 12월 31일까지 연극무대를 장식하였다. 요즘 우리지역 연극계의 공연내용을 살펴보면 도둑과 관련한 내용의 작품이 많은 것 같다. 소재측면에서 세태를 풍자하는 내용을 끌어내기 쉽고 또 도둑을 통한 우리 서민들의 궁상스런 모습이 관객들의 공감대 형성에 적절한 테마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듯한 인상이다. 이는 시대성이 가미된 권력에 대한 ‘외침’과 서민들의 페이소스를 적절하게 배설하는 구조로서 서로 융합하는 연극적 ‘재료’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 소극장 무대에 올려진 ‘허탕’과 ‘늘근 도둑 이야기’도 이러한 구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보인다. ‘늘근…’의 경우 두 나이든 도둑들의 어설픈 도둑행각과 권위와 힘의 상징인 ‘대권’에 대한 비유가 냉소적으로 잘 드러나고 있는 작품으로 평가할 만 하다. 특히 두 도둑의 능청스런 연기에 ‘관’의 무기력함과 일면, 즉 게으른 조직의 폐부를 찌르는 풍자는 은근히 우리를 통쾌하게 한다. 아무리 팽팽한 긴장감이 있더라도 수비조직의 허를 단숨에 찌르면 일순간에 무너지는 조직의 와해를 보면서 느끼는 하나의 ‘쾌감’일 것이다. 소박한 연극 공연을 통하여 느낄 수 있는 연극의 행복감과 또 다른 쏠쏠한 흥미다. 더불어 ‘해가지면 달이 뜨고’라는 작품의 밑바닥에 깔린 이미지는 개과천선과 소시민의 행복은 어디에서부터 비롯되는가에 초점이 모아진다. 결국 꿈과 희망 그리고 단순한 생의 한가운데서 인간의 지향점은 과연 어디인가를 내밀하게 보여주었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섬세한 연출과 배우들의 농익은 연기로 잔잔한 감동을 선물했던 이 작품은 극사실주의적인 기법을 동원하여 관객들에게 대사의 재미와 연극적 구조를 잘 전달한 작품이라 할 만하다. 특히 날로 늘어나는 관객의 수효와 더불어 소극장무대의 특징을 잘 살렸다 하겠다. 창작극회의 ‘Mr. 막득이’는 모처럼 희곡을 써낸 곽병창 작가의 작품으로 창작 초연이다. 2인극의 형태를 홍석찬 연출이 다양한 실험으로 변주하여 관객들의 좋은 평가를 얻었다. 이 작품은 우리 시대에 있음직한 사건을 구술형태로 정리한 것을 상황극으로 풀어낸 연출의 독창성과 이를 뒷받침한 작곡과 배우들의 노래실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공연이라 하겠다. 내용을 살펴보면 막득이라는 청년이 살아가면서 겪는 애환, 즉 사랑과 삶의 뒤안길에서 겪어야 하는 생의 고난을 소재로 하였으며, 결국 자살이라는 최후의 선택을 앞에 둔 인간의 심리를 유효적절한 코믹을 곁들여 무겁지 않게 표출하고 있다. 더불어 나이든 중견 배우들의 묵직함과 가벼움의 경계를 일신하는 연기역량과 일인다역의 신선함을 백미로 꼽을 수 있겠다. 여기에 ‘어리버리’ 악단과 산받이가 이끌어가는 전통미를 접목한 공연형식이 관객들을 편안하게 하는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이와함께 전주 시립극단의 ‘길 위에 서다’는 현대여성의 가정과 일상생활의 편린에 대한 삽화를 그렸다. 한 직장에 다니는 세 여자의 일과와 한 인물과 인물의 상관관계와 개인의 과거 그리고 현재를 적절하게 혼합한 양식과 페미니즘적 요소를 잘 드러낸 작품으로 여성계의 주목을 받았던 공연이다. 또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기획공연으로 초대되어 호평을 받았던 이 작품은 앞으로 전국 순회공연을 기획하고 있어 그 결과가 주목된다. 익산에서 펼쳐진 ‘싼타클로스는 있는가’는 연말연시를 맞아 따뜻한 정과 종교적 믿음을 통해서 얻어진 행복에 대한 소중한 추억을 세 넝마주이를 동원하여 보여주었던 작품이다. 극단 작은소동에서 준비한 이 공연은 전주에서 초빙한 안빈연출로 무대화 되었는데 모처럼 소담하고 욕심 없이 꾸민 무대상의 절제를 통하여 극의 특성과 연기를 돋보이게 하는데 유효했다고 본다. 더욱이 크리스마스 시즌에 올려져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으며 한동안 무대를 떠났던 배우들의 안정감 있는 연기와 밑바닥 인생의 정감 있는 호소력, 그리고 우스꽝스런 연기의 모멘텀을 유효하게 담아냈다. 극단 명태는 이번에 아예 소극장 ‘아하 아트홀’개관과 더불어 창작뮤지컬 ‘이등병의 편지’를 준비하였는데 최정 작 초경성 연출로 우리민족의 애환을 그렸다. 현대를 사는 젊은 뮤지컬지망생과 역사의 어두운 뒤안길에서 위안부 할머니를 둔 집안의 내력이 세대간의 화합으로 표출되는 작품이다. 국적포기신청시한이 닥쳐오자 위안부 할머니들의 행정적 뒷바라지와 가족사 이면의 안타까운 사실을 발견하는 주인공의 삶에 대한 긍정적 시각이 주를 이루며 초연의 부담을 없애고 극구성과 치밀한 인과관계를 형성한 기대이상의 완성된 작품을 선보였다. 그밖에 ‘판토마임 이야기’를 비롯한 인형극‘울랄라 난장판’의 경우 문화예술과 인연이 적은 우리 지역의 소외된 이웃에게 연극과 이와 관련한 소품을 준비하여 연극의 재미를 소개하는 자리가 되기도 했다. 이상과 같이 전북연극의 현주소를 실험하였던 전북 소극장연극제가 성황리에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전북연극인의 단합된 힘의 상징으로 집결된다. 물론 일정에 밀리어 세심한 마무리와 꼼꼼함이 요구된다 하겠다. 이번 소극장연극제를 통하여 창작초연 작품이 2개나 무대화 되었던 점은 우리 연극계의 현실을 되짚어 볼 때 대단히 고무적인 현상이며 연극을 사랑하는 관객들에 대한 보답이라는 생각이다. 더불어 이번 연극제가 안고 있는 전북 도민들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거울삼아 진실한 연극정신의 발현을 기대해 본다. 각각의 작품이 나름의 인정과 성가를 드높일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연극적 기술이라는 경험치가 아니라 오히려 도민들의 성원과 더불어 성장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던 기폭제가 아닌가 한다. 연극이 이 세상에 나갈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관객이 있음으로 해서이다. 이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기성 극단과 연극인들의 자세에 있음은 두 말 할 일이 아니다. 항상 경제논리에 밀려 열악한 연극환경을 탓하기 이전에 질적으로 연극의 수준을 높이고 이 시대에 앞서는 진취적 기상을 기대해 본다. ---------------------------------------------------------------------------------------------- 류경호 | 전북연극협회장. 1962년 전북 완주출생. 조선대학교를 졸업하고 전북대학교에서 대학원을 마쳤다. 현재 전라북도 연극협회 회장과 한국연극협회 이사로 활동 중이다. 주요경력으로 창작극회 대표를 역임하고 전국연극제에서 ‘상봉’으로 대통령상과, 두 번의 연출상(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상 1995, 2002), 전북 계원연극상(1995), 전주시예술상(2002), 전라북도지사 공로패(2002), 전북예총회장 공로패(2002) 등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