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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 |
기획연재_자치단체의 문화와 전략 | 전주
관리자(2006-01-06 11:00:32)

“오늘의 문화로 활력을 찾는 도시를 만들자” 공공작업소 심심에서 보낸 1년 6개월은 사람 및 지역과 만난 시간이었다. 지역과 유리된 채로 내 생활과 상관없는 지식을 늘려나가는 것에서 벗어나 내 자신이 몸담고 살고 있는 지역 현실에 대해 배우고 생활하면서 발언하고 행동할 수 있었다. “보이저 2호는 동력이 떨어지면서 화성 앞에 멈추게 되고 꽁꽁 얼어서 얼음덩어리 사이로 우주를 바라보고 있을 거야.” “왜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고 했을까?” “여기 지구가 있어 그리고 여기에 금성이 있어 그리고 여기에 화성이 있어. 금성은 비너스… , 화성은…” “누나 너무 건조한 거 아냐. 내 생각에는 말이야, 화성에…” 이 친구와 지난여름 사건 하나를 만들었다. 한옥마을 표지판 중 하나에 ‘벌어진 떡잎이 가득한 언덕 속에서 별을 들고 사다리에 올라앉은 사람’이 있는 조형물을 설치했다. 한옥마을 골목마다에 십여 개쯤 되는 표지판이 전통을 얹은 디자인으로 골목마다 같은 얼굴을 불쑥 들이대고 서 있다. 우리 감성은 어느새 꽃으로, 물내음으로, 경기전 담으로, 자갈길로, 모퉁이 점방으로, 제장소를 지니던 길들을 기억해 낼 여유로움과 자유로움을 공격 받으며 불쑥 들이미는 표지판들로 갑갑해져버렸다. 도시 속 가구들이 패턴화 되면서 장소의 세밀한 느낌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한옥마을만의 얘기는 아닌 듯하다. 같은 모습으로 전주역부터 남전주전화국을 지나 평화동 넘어까지 전주의 한길을 늘어선 볼라드들, 숨 쉬는 걸 누르기라도 할 듯 가로수 위를 덮고 있는 철판들. 크게 다르지 않은 가로등 길. ‘전통문화중심도시 전주’ 가 걸어가는 길 또한 이처럼 갑갑한 모습은 아닐지 생각하게 된다. 한옥마을이 앞으로 품어야 할 내용들이 전통만은 아니었으면 한다. 천 년 전이 백 년 전이 전통일 수 있다면 오늘도 전통일 수 있다. 한옥마을을 가꿔가는데 있어 어느 부분엔가는 오늘이 자리할 수 있어 한옥마을이 자유롭고 다양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04년 가을 민간단체 공공작업소 심심은 구도심 빈 점포 활용방안의 하나로 작가유치프로젝트 <스튜디오 東門>을 제안했었다. 오랜 기간 건축주, 상가상민, 지역작가, 각계 전문가 등 여러 층위의 노력을 결집해 오면서 그 결실을 보는 듯 했으나 <전주시구도심활성화지원조례>의 지원범위와 관련해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었다. 그 후 서명운동 등을 통해 구도심 활성화 위원회에 <보조금 지원범위 및 특화거리 지정범위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하는 등 시민들의 요구를 시에 전달했으나 그 뜻을 관철할 수 없었다. 지역에 대한 이해와 고민에 바탕해서 구체적인 로드맵을 설계해 가는 민간단체의 활동이 공허한 외침으로 사라질 때 오늘의 문화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일까? 한옥마을은 계속적으로 대규모 전통건물을 생산해 가며 일주일에 한번 이곳을 찾는 외부 관광객을 중심에 두고 분주하게 변화해 가는 듯하다. 이러한 상업논리에 발 맞춰 늘어나는 음식점 수만 해도 상당하다. 우리는 관광객을 주인으로 둔 도시들이 한계를 드러내는 것을 보아왔다. 전주는 서울을 옆에 둔 용인과 상황이 같을 수 없으며 다른 관광도시들 또한 휑해진 채로 수학여행지로 기능할 뿐이다. 9만 2000평이 넘는 부지에 건립된 국립중앙박물관에 대해, 15일 만에 100만 관객 돌파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고 저간 방송이 요란했다. 개관 초기 관심을 지나 내년에도 그러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여러 세대가 공유할 장소조차 갖지 못한 도시에서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놓아 버린 허탈감에 빠져 버린다. ‘나는 있었던가?, 전주는 어디인가?’ 싶은 상실감은 우리 삶이 맹목적 성장에 휘둘린 채 놓아 버린 정체성의 위기를 떠올리게 한다. 가파르게 번져나가는 유행의 장소가 아니라 우리 삶을 명징하게 보여줄 도시에 살고 싶다. 시대 흐름이 그런 거 아니냐고 주억거리기 전에 우리가 한 시대의 흐름을 만들어 나갈 작은 실천의 주체가 되고 싶다. 오늘과 이어지지 못하는 전통에 대한 과다한 집착 대신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지역의 문제를 파고들어 가면서 거기서 형성될 수 있는 우리만의, 다른 지역과 차별화 되는 지점을 찾아야 한다. ---------------------------------------------------------------------------------------------- 박진희 | 전북대학교 대학원 건축공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는 공공작업소 심심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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