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바라는대로 다행히 눈은 그쳤다. 눈이 온다고 여기서 얼마나 더 춥겠냐만은 옷과 머리에 차곡차곡 쌓이는 눈을 털어내는 일은 의외로 귀찮다. 눈가루가 무거워서가 아니라 추위에 잔뜩 움츠려든 몸은 가벼운 눈조차 부담스러워 한다. 대체 하늘에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 며칠동안 불만 가득한 몸짓으로 사정없이 내려오던 눈이 웬일로 가만히 쌓여 있다. 거의 발목까지 쌓였지만 가만히 있으니 그게 어딘가! 감사하며 골목길을 빠져나오는데 어느새 택시가 대기하고 있다. 발걸음이 빨라진다. “기다리셨죠? 전동성당이요~” “으응, 택시가 별로 없지? 지금 기사들 아침 먹는 시간이라 그래.” “아침을 벌써 드세요? 4시 반 밖에 안됐는데…….” “우리는 계속 일해야 하니까, 지금 먹어야 돼. 근데 눈이 너무 많이 와. 며칠째 이렇게 오니 짜증나 죽겄어…….” “네에.” ‘새벽을 여는 사람들’을 찾아보려는 지령을 받고, 막막했다. 특별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나, 인파로 왁자지껄 붐비는 공간을 찾아야 ‘새벽’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희망과 신비로움을 볼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건 어린 생각이었다. 타고 있던 택시의 기사분도, 창문 밖에서 종이 폐지를 모아 차 위로 옮기던 환경미화원 아저씨도, 넓은 널빤지로 바닥에 수북이 쌓인 눈을 밀어내던 나이 드신 할아버지도 저마다 새벽을 열고 하루를 맞이하고 있었다. 자못 경건해졌다. 어디론가 바삐 움직이는 자동차들의 행렬이 새벽녘의 푸르름에 겹쳐져 다른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불쑥 택시 안에서 벗어나 그 공간에 합류하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다행이다. 전동성당이 바로 눈앞에 서 있다. 성탄절이 얼마 남지 않아서일까? 성당 앞에 전구들이 트리 모양으로 눈부시게 반짝인다. 저렇게 꾸며지기 전에는 낡은 듯 하면서도 쉽게 근접할 수 없는 위엄이 있었는데 화려한 것도 제법 그럴 듯하게 어울린다. 가로등과 전구의 불빛에 하얀 눈이 주홍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불빛마저 없었다면 너무나도 황량해보였을 성당, 그 안으로 사람들이 하나둘씩 들어온다. 마치 불빛에 인도되어 온 것처럼 환한 표정으로 걸어와 곧바로 성호를 긋는다. 정원에 있는 성모마리아 상 앞에서 허리를 굽히며 또 한번, 성당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성당을 보고 다시 한번, 성당 내부로 들어가서 십자가를 보고 경건하게 역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다섯시 삼십분, 새벽미사가 시작되었다. 안으로 들어와 보니 외관에서 느껴지던 엄숙함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숙연해진다. 하나둘씩 모인 신자들의 수는 50명에 달했다. 적은 수가 아니다. 거의가 중장년층이지만 매일 이 정도의 인원은 꼭 온다고 하였다. 생전 처음 성당에 들어와서 무턱대고 그들과 함께 새벽미사를 드리고 있자니 못내 어색하다. 성경책도 찬송가도 없이 가만히 앉아있는데 옆자리에 계시던 황금순(68)씨가 먼저 말을 건넨다. 이름을 확인하려고 다시 물었더니 “나? 미카엘라.” 세례명이 미카엘라라며 자랑스러운 표정을 짓는 황 할머니. 콧등에 방울방울 맺힌 땀이 의아하다. 오시는 길이 더웠던 것일까? “우리 집이 동완산동인데 매일 걸어와. 한 30분 걸리는데 그래도 와야지. 이렇게 축복 받을 수 있는 게 얼마나 영광이야.” 동완산동이면 전동성당에서 그리 먼 거리는 아니다. 그러나 굽으신 허리로 지팡이를 짚고 오셔야 하는 할머니에게는 꽤 멀고 힘든 길이다. 게다가 요즘처럼 길이 꽁꽁 언 날에는 지팡이도 별 도움이 안 된다. 좋은 길로 30분 걷는 것도 질색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새삼 존경스럽다. “다리 아프지는 않으세요?” “하나도 안 그래. 옛날에는 무릎이 아파서 잘 일어나지도 못했는데 이거 다니면서 조금씩 나아지더라구. 하나님은 좋은 것만 주시니까……. 학생도 계속 다녀서 축복 받아.” 콧등의 땀이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앙심이 무릎의 통증을 덜어 빙판길도 무리 없이 걷게 만든 것일까. 이야기를 더 나눌 새 없이 신부님의 말씀을 따라 기도에 빠지신 미카엘라 할머니와 함께 두 손을 모았다. 달리 할 일도 없었거니와 성당에서 기도를 하지 않는 건 이불을 덮지 않고 잠에 드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낀다. 예수님의 몸이라고 할 수 있는 영성체(밀떡)를 받음으로서 35분 정도의 새벽미사는 끝이 났다. 50여명의 신자들이 하나둘씩 성당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데 나가지 않고 남아있는 분이 있다. 천천히 다가가 말을 걸어 본다. 중화산동에 사시는 이상섭(47)씨, 그는 지난 4월 3일부터 꾸준히 새벽미사에 참석하고 있다고 했다. 존경하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돌아가신 다음 날부터 그를 위한 백일기도를 하고자 다짐했던 것이 백일기도가 끝난 후에도 습관으로 굳어져 계속 다니고 있다고 한다. 습관의 힘이 이런 것인가. 오래전부터 절실한 가톨릭 신자였다는 이상섭씨는 6개월 동안 새벽미사를 다니면서 삼일도 채 빠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도 30~40분 이상 걸어서 다니는 길, 근래에는 눈이 많이 내려서 그보다 더 걸린다는데 생각만 해도 까마득하다. 떠올려보니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는 차를 보지 못했다. 모두 다 걸어 다니는 모양이다. 성당까지 오던 길의 바람을 생각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내게 이상섭씨가 말했다. “저도 사람인데 처음에는 귀찮기도 했지요. 그런데 몇 달 다니다보니까 아침 4시면 눈이 떠지는 걸 어떻게 해요. 의무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나오게 됐어요. 덕분에 운동도 되고 좋아요. 뱃살도 많이 들어갔어요. (웃음)” 어디 그것이 운동 때문이겠는가. 미사가 끝나고 사람들이 다 나갔는데도 홀로 남아서 못 다한 기도와 메모를 마저 하고 있던 그의 뒷모습에서 절대자를 향한 투철한 믿음을 보았다. 자신의 믿음과 성실이 이뤄놓은 성과를 습관 때문이었다고 말하는 이성섭씨의 겸손한 자세에서 ‘지금까지 너무 자만하며 살지는 않았나?’ 하는 반성적 의문이 생겼다. 깊은 곳에서 들리는 이어진 ‘그랬다'라는 대답. 무섭다.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의 재인식. 그러나 고쳐나가야 할 것들이 그대로 있는 까닭은 온전히 깨닫지 못해서가 아니라 실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번엔 며칠이나 갈까.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이 생애 가장 게으른 날이 되도록 부지런히 살겠다는 다짐은 매년 초마다 해오고 있었지만, 1월 한 달도 채워본 적은 없었다. 어두운 새벽, 성당 앞을 서성대며 사진을 찍는 낯선 사람 곁으로 서슴없이 다가와 “축복 받으세요.”라고 말해주시던 새벽미사 온 사람들의 선한 웃음이 보인다. 축복은 원한다고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진실된 마음으로 내가 가진 행복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자 하는 것이 축복이라면 2006년 몫의 축복은 이미 다 받았다. 받았으면 다시 베푸는 게 인지상정. 어떻게 나누어야 할까? 작은 것부터 시작이다. 내일 새벽기도는 그들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