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시장 25시 매일 아침 9시까지 출근하는 월급쟁이가 새벽 네시에 일어나는 일은 보통일이 아니다. 큰 맘 먹고 나서는 길에 주책도 없이, 눈치도 없이 내린 눈이 원망스럽다. 평소 입지도 쓰지도 않던 내복과 모자에 두 겹 양말로 단단히 무장하고 나섰다. 멀리서 매곡교 밝은 불빛이 반짝거린다. 지난 여름 팔고 사는 사람들과 물건들, 나르는 차량으로 분주하던 매곡교가 기억난다. 그런데 겨울 새벽의 매곡교는 여느 다리와 다를 바 없이 가로등만 빛나고 있었다. 매곡교의 낯선 모습이다. 시장 안으로 들어서자 두부에서 하얀 김이 포근하게 솟아오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왜 또오?” 눈 때문에 장사치들도 못나오는 이 새벽, 뭘 찍겠다고 나왔냐며 불이나 쬐고 가라신다. 저 큰 두부 한 모에 천원이란다. “국산 콩으로 만들었어요?” 라고 도저히 물어볼 수가 없었다. “몇 시에 일어나세요?” “두시. 내가 남문시장 문 다 연당게.” “그럼 이 두부는 언제 만드시나요?” “엊저녁에 만들었지.” “왜 이렇게 이른 새벽부터 가게 문을 여세요?” “단골들이 있응게 열어야 혀.” “그럼 언제 들어가세요?” “단골들 다 왔다 가면, 아침 10시쯤 아저씨하고 교대하지.” “들어가서 잠 한 소금 자고, 볼일도 보고, 저녁에 또 두부 만들고.” 갑자기 뒤에서 검은 콩나물 통을 가득 실은 트럭이 가게 앞에 서더니 한 통씩 가게 안으로 들여놓기 시작했다. 근 40년간 매일 이른 새벽부터 이곳에서 두부와 콩나물을 파셨다는 주인아주머니의 피부는 의외로 하얗고 핏줄이 보일만큼 투명하고 얇았다.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인상이다. “노점상인들은 안보이네요?” “눈이 이렇게 많이 왔는디, 꼼짝 못허지.” 워낙 눈이 많이 와서 야채 노점상인들은 며칠째 나오지 못한다고 한다. “많이 파세요.” “아이고, 자네도 애쓰네.” 등산복 차림의 아저씨가 트럭을 몰고 장보기를 나오셨다. 열심히 물건을 싣고 계신다. 할머니네 대파 값을 묻는다. 싱싱해 보이는 파 한 단에 4천5백원. 아저씨는 새벽인데 할머니 아침이나 하고 들어가시라고 깎지도 않는다. 할머니는 거스름돈에서 천원을 더 내주신다. 효자동에서 오셨다는데 송천동 공판장에 물건이 다 팔리고 없어서 바로 여기로 오셨다고 한다. 송천동 공판장에 없는 냉이 같은 것도 여기 오면 살 수 있다며 뒤늦게 온 한 아저씨는 효자동 아저씨보다 한 발 늦어서 발을 동동 구르신다. 요즘 같은 때는 물건이 없어서 못 판다는 할머니는 늦게까지 찬바람 안 쏘이고 바로 들어가시게 됐다. 주머니도 두둑하게 말이다. 야채가게 앞에는 송천동 공판장에서 경매로 사왔다는 야채가 한 트럭이다. 여주인의 아들이 내려놓는다. 아직 어린 아들은 말을 붙이려니 슬슬 다른 곳으로 가버린다. 쑥스러운가 보다. 35년을 새벽 3시에 일어나 공판장에 가서 물건을 사오고 저녁 9시가 되어야 들어가신다고 한다. 어제 저녁에 광주 도매시장으로 물건을 사러간 이웃 상인은 눈 때문에 고속도로가 막혀 못 오고 있다고 걱정이시다. 시장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전주시내에서 작은 식당들을 하고 계시는 분들이 많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게 문을 여는 소리가 늘어난다. 그래봐야 6시도 안된 시간, 주택가는 아직도 한밤중이다. “이렇게 이른 새벽에도 손님들이 있나요? 왜 이렇게 일찍 문을 여세요?” 대나무 소쿠리와 발 같은 수공예품 가게가 문을 열어서 의아했다. “성당에서 새벽미사 드리고 와서, 그냥 일찍 열어.” 남부시장의 시계는 몇 시간이 빠른 모양이다. 새벽을 건너뛰고 바로 아침이 되어 버린다. “새벽미사까지 드리고 오세요? 피곤하지 않으세요?” “몇 십 년을 그렇게 살아왔는데, 피곤할 게 뭐 있나?” “뭐라고 기도하셨어요?” “건강하게, 복 받고, 선하게 사는 거, 뭐 그런 거야.” 내년엔 주인아저씨가 칠순이라 뭘 할까 고민이라신다. 이럴 때 뭐라고 근사한 말을 하고 싶은데.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네, 그래요.” 가게 안으로, 시장 안으로, 2006년 새날이 밝아온다. 누가 그러더라 ‘새벽기도 가는 남자’와 결혼하면 손해는 안 볼 거라고. 덧붙이고 싶다. 새벽시장에 나오는 여자도 괜찮을 것 같다고... 시장 상인들에게는 일상인 것을, 내게는 25시간을 여는 뿌듯한 새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