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정경식 전북정농회 회장 급조 당하는 농업 보름 넘게 계속해서 눈이 내립니다. 사이에 잠깐 비쳐온 햇살에 눈이 부십니다. 눈을 보는 밝고 맑은 미소를 느끼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에 도취되기도 하지만 폭설로 인해 피해당하는 농민의 고통소리에 걱정만 앞서게 됩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만 하는 농민은 자연에 의해 은혜를 받지만 또 자연에 의해 버림을 받는 일을 겪어야 합니다. 봄 가뭄에 목말랐고 여름 장마엔 폭우로 떨어야 했지요. 가을에는 벼멸구로 폭탄세례를 받아야 했던 기억 또한 잊을 수 없답니다. 농민으로서는 자연 재해로 인해 일어나는 적지 않은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랍니다. 하지만 그 고통은 아무것도 아닌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WTO라는 최악의 급조로 인해 한국 농업의 근본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단군 이래 반만년의 역사와 문화요, 근본인 쌀마저도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죽음으로 맞아 싸우는 농민 자급, 자족하며 농사를 주업으로 살았던 우리나라가 언제부터인가 잘 살아보자고 새마을운동을 하면서 공업사회로 바꿔졌습니다. 그래서 공산품수출, 농산물수입이라는 시장개방으로 밀, 보리, 콩, 수수 등 우리의 주식이 사라져갔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남은 주식인 쌀만은 꼭 지키자고 대통령까지도 약속했지만 WTO 신자유주의 앞에는 물위에 거품인가 봅니다. 우리의 후손과 미래를 위해 쌀은 꼭 지켜야 된다고 목숨 걸고, 지금 이 추운 겨울에도 거리에 나와서 싸워야 하는 농민들의 현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쌀은 우리의 문화며, 생명이며, 주권이기 때문에 쌀은 꼭 지켜야 된다고 모든 국민들이 나서줘야 하는데도 국민들은 별 반응이 없습니다. 농업의 현실 잘 살아보자고 공업을 창출한 도시로 인해 대다수 사람들은 도시로 떠났습니다. 그래서 농촌에는 아이들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은지 오래되었지요. 후계자 없는 농촌에서는 어쩔 수 없이 노인네들만이 농사를 짓다 보니까 농약과 화학비료와 제초제와 기계로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지요. 그러다보니 농약이 농독으로 변하여 땅과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할 거미, 메뚜기, 지렁이 등 수많은 동, 식물들이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봄을 알리는 종달새, 가을 수확을 알리는 참새, 최근에는 우리와 가장 친숙한 제비조차도 우리 곁을 떠나가고 있습니다. 멀지 않아 흥부와 놀부에서 나오는 옛 이야기로 남을 것이겠지요. 우리의 희망 인적 없는 농촌의 허허들판, 소리 없는 침묵 속에서 눈 덮인 하얀 들판을 바라봅니다. WTO로 인해 쌀 시장이 개방된 뒤에 우리 농민이 안심하고 쌀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그리고 무분별하게 쏟아져 나오는 오염된 농산물로부터 우리의 생명들을 지켜낼 수 있을까. 오염된 먹을거리로 인해 고통당하지 않는, 아토피 없는 아이들의 건강한 모습을 볼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도시의 젊은이들이 고향인 농촌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그래서 아이들 울음소리도 나고 대를 이을 농민 후계자가 생길까. 그리고 생명농사를 하여 사라져 가는 수많은 생명들이 우리의 곁으로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을까. 그게 우리들의 희망인데…… 그 희망을 위해 농민의 자존심과 양심을 걸고 실천한 농업이 친환경 유기자연 농업이었습니다. 미래로 여는 친환경 유기 자연 농업 세계 미래 연구소 소장인 독일 아르님 베히만 교수는 앞으로 35년 내에 기존의 농업 전체를 친환경 유기농업으로 바꾸는 일이 기술적으로나 재정적으로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독일을 비롯하여 오스트리아, 스위스, 미국, 쿠바, 일본 등에서 부분적으로 추진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현재 3%의 수준에서 향후 10년 안에 10% 수준으로 친환경 농업을 끌어올릴 계획이며 2020~2030년 사이에는 매년 5~7% 농가가 기존의 농업 방식에서 탈피할 것이라 주장합니다. 2030년이면 전 세계의 농업 방식이 관행농업에서 친환경 농업으로 전환할 것이며 생명 있는 건강한 음식만이 존재할 것이라 결론짓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가와 행정가들 뿐 아니라 환경양심을 되찾는 사람들의 노력 또한 필요하다고 보여 집니다. 베히만 교수의 의견에 의하면 앞으로 농업보조금이 과거처럼 농산물의 양과 결부되는 것이 아니라 친환경적인 성과에 따라 책정될 것이라 합니다. 미래의 친환경 농사꾼은 수입의 1/3에 해당하는 보조금을 받아 그것으로 자연과 농경지를 돌보는데 사용할 것이라 합니다. 이것은 필요 이상의 보조금 정책에 비해 훨씬 합리적이고 사회적인 호소력이 있다고 합니다. 환경파괴로 인한 비용까지 감안한다면 친환경 농업은 지금도 기존의 농업경영보다도 돈이 덜 든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체 경제에서 자연 질서에 거스르는 생산 방식처럼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농약치고 비료하고 제초제 치는 농업방식과 생산방식 탓에 생명의 죽임, 농민의 죽임은 계속해서 이루어질 것이라 진단합니다. 그게 당분간 계속 될 것이겠지만 생태적이고 자연적인 친환경 유기농업으로 미래를 계획한다면 WTO로 인해 모든 생명이 죽임으로 내몰리는 독점자본의 시장 경쟁에서 탈피할 수 있을 것이라 보여 집니다. ----------------------------------------------------------------------------------------- 정경식 | 1979년 경기도 풀무원 농장에서 유기농업 공동체 회장을 지내고, 1984년 전북 부안 변산에서 유기농업을 시작했다. 현재, 전북정농회 회장과 전북정농영농조합 대표로 일하고 있으면서, 전북지역 학교급식 조례 준비위원장, 우리 쌀 지키기 100인 100일 걷기운동 조직위원장, 농업회생연대 집행위원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 『21세기 희망은 농에 있다』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