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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 |
장터에서 시장으로, 나무·생선·채소·소시장
관리자(2005-12-09 17:12:58)
글 | 홍성덕  전북대박물관 학예연구사 장날마다 열리던 장터가 상설적으로 열리는 시장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전주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패턴이 변화하였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유기전이나 은제품 등의 가내수공업 제품들의 상설점포가 조선시대에도 존재하였지만 일상적인 생필품은 장날 장터에서 거래되었다. 그러나 상설 시장이 만들어지면서 언제나 사고 팔수 있게 됨으로서 ‘장날에 사주겠다’는 엄마의 말에 손꼽아 기다리던 ‘장날의 기다림’은 없어져 버렸다. 무언가를 내다 팔아 생계를 유지하거나 먹을거리라도 장만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상설 시장은 언제라도 좌판을 벌일 수도 있었고 가게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 싼 값으로 넘겨 기다리는 수고로움을 벗을 수 있게 했다. 보통시장으로서 남부시장은 전주에서 최대의 시장이었음은 물론이다. 서문밖 시장이 통합되면서 시장의 응집력은 더욱 커졌으며, 적어도 중앙시장이 만들어지는 해방 이후까지 전주의 상권을 장악하고 있던 곳이었다. 당시 천변에 벌려져 있던 상설 점포들의 내부 모습을 살펴보도록 하자. <사진 1>은 천변에 늘어서 있는 나무시장의 모습이다. 물론 나무만을 팔던 곳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사진의 전면에 있는 나무 등짐은 남문시장 내에 거래되는 목재시장과는 달리 땔나무를 거래하던 그런 모습이다. 사람들 좌우로 늘어서 있는 점포들은 기둥 몇 개 땅에 박고 얽기 설기 짚을 이은 임시가옥(假屋)들이다. 때문에 상설시장이라 하기에 무리스럽긴 하지만 주거형의 가옥들이 있었던 점으로 보아 상설화 되는 장터의 모습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다. 이러한 형태의 장터가 서문밖으로부터 남문밖으로 이어지는 전주천 고수부지에 늘어서 있었던 듯하다. 일제시대 본격적으로 전주천의 제방이 쌓여질 때까지 전주사람들은 천변으로 나와 장터를 따라 걸으면서 필요한 물건들을 내다 팔거나 사면서 흥정을 벌이곤 했을 것이다. 남문시장이 상설점포로 개발되고 사용료를 받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장터의 모습은 바뀌게 된다. <사진 2>는 풍남문에 인접해 있던 남문시장이 모습이다. 커다란 가마솥이 널려 있고, 생활 소품을 담은 등걸이나, 지게를 진 짐꾼들이 손님을 찾는 풍경이다. 지붕을 견고히 한 시장 건물이 늘어서 있으며, 점포와 노점에 따라 각기 다른 물품들이 거래되고 있는 그야말로 요즘의 마트와 같은 곳이다. 『전주부사』에 실려 있는 <사진 3>은 성벽이 있던 자리 밖에 형성된 남문시장(전주보통시장)의 모습으로 멀리 전동성당과 그 너머 기린봉이 보이고 있다. 곧게 뻗은 도로의 양 옆으로 블록별로 길게 세워진 상가건물이 보이고 있다. 지금도 조그마한 시ㆍ군에 있는 시장은 이러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1968년 남문시장이 새로 세워질 때까지 남문시장의 모습도 이 틀을 기본적으로 유지하고 있었다. 전통시장에서 귀하게 취급된 먹거리 중의 하나는 생선이었다. 생선의 유통은 보관 상의 이유로 인해 염장하거나 말린 것이 아닌 신선한 생선을 내륙에서 구경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따라서 생선시장 요즘의 수산물시장이 전주에 들어선 것은 근대 이후의 일이다. 신선한 생선과 채소를 공급하는 전문시장이 전주에 세워진 것은 1931년의 일이다. 자본금 3만8천엔으로 설립된 전주어채주식회사가 고사동에 처음으로 어채시장을 만든 것이다. 이 시장에서는 매일 매일 전주사람들에게 생선과 야채 그리고 기타 식료품을 공급하는 한편, 그 경매관리를 대행하였다. 이 어채시장은 1936년 남부시장 구내로 이전되었다. 농도였던 전라도에서 중심적인 거래 품목으로는 소를 빼 놓을 수 없다. 조선후기 일본에 수출한 소가죽의 상당 부분을 충당했던 전라도는 농사를 위한 소시장뿐만 아니라 소가죽의 매매에 있어서도 중요한 상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소시장은 매곡교를 중심으로 하천 부지에서 전통적으로 거래되었으나, 1915년 전주축산조합이 설립되면서 중개수수료 명목으로  큰 소 1마리당 2엔식을 징수하기 시작하였다. 징수가 시작된 1915년에 약 2천3두의 소가 거래되었으며 거래액은 4만4천9백52엔이었다. 소시장의 규모가 확대되자 조합은 1925년 현 서학동 일대 2천7백평의 부지를 매수하여 소시장을 이전하였다. 이보다 조금 앞서 1924년 사대부속초등학교 뒷 편 8백19평의 부지에 도축장을 세워 전주면에서 운영하였으며, 그서쪽편에는 우피건조장이 있었다. 1937년 당시 도축장에서는 소 1천90두, 돼지 2천993도, 말 5두 등 총 4천89마리가 도축되었고 건피의 경우 1천5마리분 소와 돼지 가죽이 건조되었다. <사진 4>와 <사진 5>는 1940년 전후의 소시장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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