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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 |
희노애락 그리고 중용
관리자(2005-12-09 17:09:24)
글 | 송정모  우석대한방병원 원장 요즈음 사상체질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 사상의학을 전공한 필자의 입장에서 보면 흐뭇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상의학의 본질이 왜곡되거나 잘못 전달되고 있는 경우가 많아 걱정되는 면도 많이 있다. 체질을 알아보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대부분은 체질에 맞는 음식을 알기 위해서 자기 체질을 알고 싶어 왔다고 대답한다. 사람들은 체질별 식이요법이 마치 만병통치라도 되는 양 생각하는 것 같다. 식이요법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지나치면 좋지 않다는 것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사상의학 본질의 왜곡은 기실 한의사들의 책임일 수 있다. 일부 한의사들이 환자들의 요구에 부응하려다 보니 옅은 지식으로 인해 사상의학의 극히 일면만을 강조하다가 그렇게 된 측면도 있고, 한편으로는 팔체질침법(사상체질과는 전혀 다름)을 사용하는 한의사들이 체질에 따른 식이요법을 권장, 내지는 강요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보니 그렇게 된 측면도 없지 않다고 본다. 이는 사상의학의 기본 정신을 모른 채 마치 체질만 알면 음식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잘못된 지식으로 인한 것이다. 사상의학의 가장 중요한 정신은 ‘중용(中庸)’에 있다. 독자들은 왜 의학에 철학적 용어인 중용이라는 말이 나오는지 의아할 것이다. 그러나 사상의학을 이 땅에 내어 놓은 동무 이제마 선생의 말을 조금만 들여다보아도 그가 사상의학을 내놓게 된 이유가 단지 의학적 차원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철학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실천적 방법으로 사상의학을 내놓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철학적 방법과 의학적 방법으로 동시에 관찰(통찰)한 사람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몇이 안 되는데 그 중에 이제마는 거의 독보적 존재라고 나는 확신한다. 인간의 내면과 외면, 그리고 사회성에 이르기까지 그만큼 깊이 있게 천착한 사람도 없으며 그것은 사상의학이라는 실용적 도구를 통해 증명해 놓고 있는 것이다. 중용이란 중간을 따라간다는 말이 아니라 마음의 중심을 잡고 과불급이 없이 치우치지 않는 것을 말할 것이다. 마음의 중심을 어떻게 잡는가? 이는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이제마는 이렇게 마음의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을 성인(聖人)의 범주에 놓는다. 우리와 같은 일반인은 도저히 성인의 경지에 들 수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중용』이란 책에 “喜怒哀樂未發 謂之中, 發而皆中節 謂之和”란 말이 있다. 희노애락은 인간의 본성 속에 깃들어 있는 감정 중 대표적인 네 가지에 해당하는데, 이러한 감정이 마음의 중심을 잡은 상태에서 컨트롤되는 것을 중(中)이라 한다면 이미 감정이 밖으로 드러났으되 적당히 균형을 이루는 것을 화(和)라고 한다는 말이다. 이제마는 여기서의 희노애락이라는 네 가지 감정이 세상을 어지럽히는 주범이라고 인식하였다. 이 감정들이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지배하는 원동력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몸을 망가지게 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 된다고 생각하였다. 이제마는 희노애락을 각기 성(性)의 차원과 정(情)의 차원으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정의 차원에서 희노애락은 드러나는 감정 그자체이다. 그리고 성의 차원에서의 희노애락은 사람의 성격을 형성하는 근본적인 성향 같은 것이다. 그래서  희노애락이 성으로서 움직일 때는 우리 몸에 급격한 영향을 끼치지 않으나 정으로서 움직일 때는 우리 몸에 심각하고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부정적 영향을 좀 더 자세히 보면, 슬픔과 화냄은 우리 몸에서 양기를 급격하게 움직이고 흥분시키는 것이 마치 교감신경이 흥분하는 것 같이 되고, 기쁨과 즐거움은 우리 몸에서 음기를 움직이므로 부교감신경이 강화되듯이 우리의 몸을 이완시키게 된다. 이렇게 감정이 어느 쪽으로든 급격히 움직일 때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이 지속적이고 반복적일 때 우리 몸은 치명적인 질병의 상태로 빠진다는 것이 이제마의 설명이다. 이제 체질 이야기를 좀 해보자. 사상체질은 폐비간신이라는 네 개 장기의 상대적 대소관계에 따라 나뉜다. 즉 태양인은 폐대간소, 태음인은 간대폐소, 소양인은 비대신소, 그리고 소음인은 신대비소한 특성을 갖는다. 이 상대적 불균형이 작을수록 건강한 사람이고 불균형이 클수록 건강하지 못하다. 사상의학에서는 질병의 가장 큰 원인을 이 불균형에 있다고 본다. 그래서 치료의 목표는 결국 이 불균형을 최소화시키는데 있다. 이제 사상의학에서 왜 중용의 정신이 중요한지 알 것이다. 장기의 편재된 기운을 조절하여 균형을 맞추는 것, 말하자면 한쪽으로 기울어져 움직이지 않는 천칭저울에서 약간의 힘을 어느 한쪽에 주어 균형이 맞도록 해주는 것이 사상의학적 치료의 원칙이고, 이것은 중용적 조절정신이다. 이렇게 균형을 맞추기 위해 약물치료, 침구치료 등을 체질에 맞게 시행한다. 물론 체질에 맞는 음식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사상의학에서는 약이나 음식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희노애락 성정의 조절이다. 장기의 불균형과 더불어 사람은 성정의 발현 양상에 체질별로 불균형을 가지고 있다. 태양인은 애성(哀性)과 노정(怒情)이 강하다. 애성이 크기 때문에 사명의식, 일에 대한 열정, 목적 지향주의, 진취성, 적극성, 과감성, 개혁성 등이 태양인 성격의 특질이 되고 노정이 많아서 화를 매우 잘 낸다. 소양인은 노성(怒性)과 애정(哀情)이 강하다. 노성이 크기 때문에 의분이 많고 의리감, 외향성, 강직성, 활달함, 날카로움, 시끄러움, 스타기질 등이 소양인 성격의 특질이 되고 애정이 많아서 내면적 슬픔을 자주 갖는다. 태음인은 희성(喜性)과 락정(樂情)이 강하다. 희성이 크기 때문에 보수성, 내향성, 저장성, 저축성, 무게감, 듬직함, 엄숙함, 실속 있음, 점잖음 등의 성격 특질을 갖게 되며 락정이 강하므로 즐거움에 탐닉하는 경우가 많다. 소음인은 락성(樂性)과 희정(喜情)이 강하다. 락성이 크므로 내향성, 소극성, 보수성, 타협적임, 유연함, 부드러움, 여성적임, 침착성, 조용함, 은폐성 등의 특질을 갖게 되며 희정이 크므로 웃음이 지나치다. 이와 같이 사상의학에서 희노애락의 성정은 가장 중요한 원리적 개념이다. 이제마는 이를 통하여 인간의 불균형을 체질적으로 조절하고자 하였다. 말하자면 성정의 조절은 곧 장기 불균형의 조절에 직접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태양인은 무엇보다도 화를 내지 않도록 노력하고 속도를 늦추기 위해 한발자국 뒤로 물러서는 훈련을 하라고 한다. 이것이 태양인에게서는 약이나 음식이나 운동하는 것보다 가장 중요한 조절방법이란다. 소양인은 무엇보다도 지나친 슬픔을 내지 않도록 노력하고 잡다하게 일을 만들지만 말고 내면적 수양과 내공을 쌓는 훈련을 하라고 한다. 태음인은 무엇보다도 지나치게 즐거움에 빠지지 말고 매사에 호기심을 가지고 진취성과 창의성을 길러나가는 훈련을 하라고 한다. 소음인은 무엇보다도 지나친 기쁨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하고 매사에 적극성을 갖고 속도를 내기 위해 한발자국 앞으로 나아가는 훈련을 하라고 한다. 마음의 중심을 잡고 희노애락의 감정을 조절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각 체질별로 한가지씩만, 자기 특질에 따라 한가지씩만 하면 조금은 쉬운 길이라는 것을 위와 같이 이제마는 사상의학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비록 성인만이 할 수 있는 중용의 도에 이르지는 못할지라도 희노애락을 항상 조절하려 노력하는 것이 성인의 길로 나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길이요, 그것이 바로 건강을 지키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이제마는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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