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2 |
화투놀이 대 상육치기
관리자(2005-12-09 17:07:45)
응? 쌌어? 쌌다 이거지. 치고 받기 한 판이믄 양박에 쓰리고?’
‘그려, 니가 시에미 돈 따먹고 잘 살겄다아.’
‘어머니, 고스톱 판에 인정사정이 어디 있어요. 못 먹어도 고.’
‘너는 멘날 고스톱만 쳤냐?’
‘어머니는 그렇게 연습을 허고도 왜 맨날 잃는대요?’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고스톱 한 판에 목숨 건다. ‘현찰박치기’ 앞에서는 말 그대로 ‘우아래’도 인정사정도 없다. 시어머니는 싸고 며느리는 까서, ‘광박’, ‘피바가지’에 ‘쓰리고’를 씌워댄다. 21세기 대한민국의 풍속도, ‘양 광박’에 ‘쓰리고’ 한 판. 설마, 이렇게 말하는 고부간이 있을까마는 요즈음처럼 추운 날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시기면 어느 집에서나 으레 볼 수 있는 풍속도 가운데 하나가 ‘화투놀이’다.
본래 놀이라는 것이 경쟁심이 있어야 재미가 있는 법이지만, 각자 자기 돈 놓고 남의 돈 따먹기 식은 자칫 공동체로서의 기본적인 인간관계마저도 위협할 수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놀이인 데다가 ‘치고 받고 까고 싸고’ 하는 식으로 말하며 논다는 것은 어떻게 해도 보기도 듣기도 민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딱히 할 일이 없다고 반문할 수 있겠으나, 정말 우리에게는 즐길 만한 놀이가 그다지도 없는 것일까. 이번 글에서는 일찍이 비운의 낭군 도미가 백제의 미추왕과 벌였다던 바로 그 놀이로서 오랜 동안 민가에서 향유되어 왔던 놀이인 ‘상육치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상육치기’는 대체로 양반댁 안방에서 즐겨온 놀이이다. 지금도 집안에 따라서는 ‘상육치기’를 하는 경우도 있을 법한데, 이 글에서는 임실군 둔덕 마을의 삼계댁에 남아 있는 ‘상육’과 그분들이 즐겨왔던 ‘상육치기’를 소개한다.
‘상육’을 치기 위해서는 사람 수에 관계없이 두 패로 편을 나눈 다음, ‘분판, 삿짝, 말’을 준비해야 한다. ‘분판’은 유약을 칠 해 놓은 나무판인데, 이것은 ‘조히(종이)’가 귀할 적에 붓으로 글씨를 썼다가 물로 지우고 다시 글씨를 쓰곤 하는 판이다. 이 판에 한자로 一二三四五六六五四三二一을 두 줄 쓴다. 상육이라는 말의 의미도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항상 육이 된다는 말인 셈이다. 그리고 굳이 분판이 아니라도 적당한 종이 위에 그렇게 쓰면 상육판이 되는 셈이다.
상육판의 왼쪽 일에서 육까지를 ‘안육냥’, 오른쪽 일에서 육까지를 ‘배깥육냥’이라 부른다. 그 위에 ‘말’을 놓는데, ‘말’은 ‘청말’과 ‘홍말’ 각각 15개씩이다. 말은 나무를 깎아 만든다. 말의 모양은 언뜻 보면 사람을 단순하게 상형한 모양이다. 손잡이는 사람의 머리처럼 작고 둥글며, 아래 쪽은 치마를 입은 것처럼 둥글게 퍼져 있어 안정된 모습이다. 말은 붉은 칠을 한 것 15개와 초록색 칠을 한 것 15개를 준비한다. ‘청말’은 나이가 많은 편이 쓰고, ‘홍말’은 젊은 편이 사용한다. 모양새 하나에도 기품이 있으면 더 좋겠지만 설령 바둑알이면 또 어떻겠는가.
말을 놓는 방식은 자기편 왼쪽 일 자리에 두 개, 상대편 왼쪽 육 자리에 다섯 개, 오른쪽 오 자리에 세 개, 자기편 오른쪽 일 자리에 다섯 개의 말을 놓는다. 그러니까 ‘청말’과 ‘홍말’은 같은 방식으로 놓인다. 자기편 왼쪽 일 자리에 놓은 두 개의 말은 ‘괴양말’이라 한다.
말이 다 놓이면 ‘삿짝’을 던져 놀이를 시작하는데, ‘삿짝’을 던지는 것을 ‘삿짝을 논다’고 한다. ‘삿짝’은 주사위 두 개를 말하는데, 정육면체의 작은 곱돌에 구멍을 파고 그 위에 밀가루를 발랐다가 닦아내면 검정색 곱돌에 구멍이 파인 부분에 밀가루가 채워져서 선명하게 보인다고 한다. 지금 아이들이야 책상서랍에 쉬고 있는 주사위 한두 개쯤은 다 있으니 이것도 별 문제가 없다. 이렇게 하면 상육치기 준비는 다 된 셈이다.
‘삿짝’은 두 개를 한꺼번에 던진다. 이 때 어느 하나가 1이 나오면 ‘백’, 2가 나오면 ‘아’, 나머지는 ‘3, 4, 5, 6’을 먼저 부르고 나머지 숫자를 덧붙여 부른다. 예를 들어 모두 1이 나오면 ‘백백이’, 1과 2가 나오면 ‘백아’, 1과 3이 나오면 ‘백삼’ 등으로 부른다. 그러니까, ‘백사’는 1과 4, ‘백오’는 1과 5, ‘백육’은 1과 6이 나온 것을 부르는 방식이다. 삿짝이 2와 2인 경우는 ‘찐찐이’, 2와 3은 ‘아삼’, 그 다음은 ‘아사’, ‘아오’, ‘아육’ 순이다. 3과 3이 나오면 ‘장쌈, 준삼’이라고 부른다. 3과 4는 ‘삼사’, 그 다음은 ‘삼오’, ‘삼육’, 모두 4가 나오면 ‘준사, 모두 5면, ‘준오’, 모두 6이면 ‘준육’ 이라고 한다. 다소 어려운 듯하지만 한두 번만 해 보면 금방 익숙해질 것이다. 연습 삼아, 삿짝이 2와 6이 나왔으면 뭐라 부르는가? 답은 ‘아육’이다.
분판에 놓인 말은 ‘삿짝’의 수만큼 움직이는데, 말 하나를 가지고 삿짝 두 개를 합한 수만큼 움직일 수도 있고, 삿짝 각각의 수 만큼, 말 두 개를 각각 나누어 움직일 수도 있다. 분판에 놓인 말 가운데 어떤 말을 움직여도 된다. ‘삿짝’의 수대로 움직였을 때 상대편 말이 하나뿐인 곳에 이르는 경우는 그 말을 치고 그 자리에 자기편 말을 놓을 수 있다. 그러나 상대의 말이 둘 이상일 때는 그 자리에 자기편의 말을 놓을 수 없다. 따라서 자기편 말은 될 수 있는 한, 하나 이상이 되게 놓아야 안전한 셈이지만, 수가 맞지 않아 하나밖에 놓을 수 없는 경우는 하나만 놓아야 한다. 상대가 쳐낸 자기편 말은 상육판 밖에 두었다가 ‘안육냥’의 일부터 시작한다.
처음에 놓인 말이 상대의 ‘안육냥’ 안에 모이게 되면, ‘삿짝’에 나온 숫자에 해당하는 말만 하나씩 빼야 한다. ‘안육냥’의 2에 두 개의 말이 있는데, ‘삿짝’이 ‘백삼’으로 나오면 이 말은 뺄 수 없다. 다만, ‘백아’면 하나, ‘찐찐이’면 두 개, ‘아삼, 아사, 아오, 아육’이면 하나의 말만 뺄 수 있다. 그렇게 해서 ‘분판’의 말을 먼저 빼는 쪽이 이긴다.
이 놀이가 얼마나 재미있었던지 예전에는 밥 먹는 것도 잊을 정도이었다고 한다. 두 패로 나뉘어 노니, 같은 편에 든 사람끼리 서로 기대고 합심하며 조정하고 화합하는 슬기를 나눌 수 있어 좋고, 차린 음식 나누며 사람 느낌 나서 좋고, 말로만 양반하지 않고 사는 것도 양반다워 좋지 않은가.
| 언어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