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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 |
장영애 금속공예전 - 흑백사진처럼 정겹고 아련한 작가의 삶과 정서
관리자(2005-12-09 16:26:26)
글 | 송수미 섬유미술가 깊은 가을날 도심 속 한 전시장에서 짙게 느껴지는 연 향의 의미는 무엇일까? 기다림과 설레임으로 찾아간 그곳엔 타임머신을 작동이나 한 듯 시간을 거꾸로 돌리고 있었다. 너무나 오랜만에 만나는 옛 학우들 그리고 화단의 선생님들,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한참을 20년 전으로 달려간다. 오늘이 아니었다면 그 누가 이 그리운 분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게 할 수 있을까… 그때의 그 모습들을 해후라도 하듯 우리는 연 향에 취해 한참을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그렇다, 오늘 이 전시의 주인공인 금속공예가 장영애님은 우리들에게 타임머신 같은 분이시다. 오래된 옛 추억의 앨범을 꺼내어 보듯 조심스럽게 작품 앞에 다가섰다. 그 앨범 가득히 채운 흑백사진처럼 정겹고 아련한 작가의 삶과 정서를 느낄 수 있는 바로 그 속으로 들어온 느낌이었다. 2005년 11월 11일 요즘 청소년들 사이에서 의미가 더욱 부각된 빼빼로데이(!)를 시작으로 일주일간 전북예술회관에서 장영애 금속공예전이 있었다. 전시일정을 마친 다음날 전주대학교 공예관 실습실에서 여전히 작업 삼매경에 빠져있는 선생님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오늘도 작업을 하시냐는 물음에 조심스럽게 꺼내시는 진솔한 이야기들 속에 잔잔한 감동이 밀려왔다. 70년대 유신정권의 현실 앞에 많은 제약과 모순 속에서 맞서 투쟁해야 했던 시대상황은 예외 없이 대학에까지 밀려왔다. 그 시대의 대학생들은 강압적인 통제로 인하여 등교조차 할 수 없었고 학업을 이어나갈 수조차 없을 정도로 삼엄한 분위기였었다. 그 시대 금속공예전공자들은 학교의 실습실이 아니고선 도저히 작업을 할 수 없는 작업상의 고충으로 인해 더욱 고심해야 했던 때였단다. 그렇게 대학을 다녔는데, 30년이 지난 후 대학원을 다니면서는 내 나이가 유신이었고 제약이었다. 대학원 첫 학기에 느껴야 했던 자신과의 싸움, 공부를 다시 시작하면서 부딪치는 것 들, 그 속에서 그녀가 견딜 수 있었던 건 다름 아닌 작업에 대한 생각이었다고 한다. 마치 멈추었던 시간들을 채우려 하듯.   그 시대의 열악한 상황에서도, 지금 느끼는 나이의 장벽에서도, 작업에 대한 집념은 더욱 크셨으리라 감히 짐작된다. 금속공예는 유연과 강직을 동시에 다뤄야 하는 작업이다. 불을 다루고 망치와 연장을 내 몸처럼 쓰는 숙고의 연마 없인 창조 해 낼 수 없는 힘든 노동이기도 하다. 1974년 홍익대학교를 졸업하고 십 년 동안을 미술교사로서 지내다 1984년 이리여고를 끝으로 육아를 위해 과감히 학교를 그만 두셔야 했다. 그로부터 이십여 년이 흐른 뒤 갖는 첫 개인전이 더욱 뜻 깊고 작품 한 점 한 점 속엔 인생과 철학이 있으며 보는 이로 하여금 그 어떤 귀금속보다 더욱 빛나는 걸 엿 볼 수 있으리라 전시회장은 천년 가람의 분위기가 가득했다. 불교신자일까? 라는 생각도 잠시, <부활>과<평화>라는 주제의 타이슬립이 보인다. 우리는 영적인 관심사에 대한 미술과 종교미술을 구분해야한다. 보통 종교미술은 신(神)성과의 관계 속에 존재하는 인간에 관한 집합적인 관념의 표현이다. 때때로 종교미술은 영적인 성질을 갖는다. 그러나 반면에 종교미술이 그 임무에 성공적일 때조차 그것은 주로 교육이나 역사로서 또는 시각적인 설교의 한 종류로서의 역할을 한다. 종교미술은 신성한 이야기를 말해주거나 올바른 행동을 요구하거나 진실함을 유지  하도록 노력한다. 그러나 영혼의 미술은 인간본성과 이 세상의 신선함을 드러내도록 노력한다. 다시 말해서 영혼의 미술은 종종 예기치 못한 장소에서 신성함을 발견하듯이 세상에는 신성함이 항상 내제 되어 있음을 말하려 한다. 이는 미술을 통한 궁극적 가치에 대한 개인적인 추구라 말 할 수 있다. 영혼의 미술을 실천하고 있는 장영애님의 작업 속엔 동양사상의 기저를 이루고 있는 음양오행사상에서 출발되어져 있다. 한국문화의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한 가지가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이며 이러한 경향이 문화전반에 걸쳐 뿌리깊이 자리하고 있음은 누구도 부정 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이러한 요인들이 함께 작용하여 작품 <영겁회귀> <생성> <화합>등이 탄생되었고, 이는 기술적인 찬란함과 상업적인 열망 그리고 물질적인 위업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겸손의 덕, 고난의 중요성, 미의 본질을 연꽃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작품 <무념무상>은 적동과 칠보, 은을 이용하였다. 고풍스러운 테이블 위에 펼쳐진 60개의 유니트는 연이 지니고 있는 선의 아름다움과 한국적인 자연의 이미지를 부합시켜 전체적인 연화문양이 아닌 한 부분을 확대하거나 단순화 또는 상징화하였다. 연못에서 피어나는 연꽃은 잉어와 함께 극락세계를 연출하고 거기서 빚어지는 고결한 기품은 숭고하다는 상징성으로 비추어졌다.  이와 비슷한 형태로 조형된 <나비의 꿈>은 민화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나비들을 4방으로 둘러싼 옳은 의(義)라는 문자도형에는 붉은 연꽃이 피어난다.   연꽃 즉 연화문양은 윤회를 염원하는 종교적 열망이 담겨져 있어 불교를 상징하는 문양으로 회화, 조각, 건축, 공예분야에서 오늘날에도 각각재료의 특성을 살려 다양하게 응용되고 있다. 연화문양은 인간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여 왔고 독창적인 개발을 중시하여 상징적 의미를 두는 등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장식문양으로 재정립되었다. 따라서 각 나라와 민족과 종교에 구애받지 않고 널리 사용 될 수 있는 연화문양을 이번 전시에서 금속조형의 대공작업과 현대장신구 영역 속에서 재조명했다. 그리고 돋을새김기법을 이용하여 금속표면에서 손맛을 느끼게 하고 문양의 소재를 작품에 접목하는 장점을 창안해 친근한 문양으로서 거듭 났다. 이는 대공작업으로부터 출발해 점점 조형성을 함축한 장신구 작품으로 이어나가는 작업세계에서 시간을 정지시킨 듯한 세월의 흔적으로 작가의 작품 속에 고스란히 베어있었다. 이러한 작업의 과정들은 단순히 작품으로서만이 아니라 생활에서 보이는 단아한 결실들이 총체적으로 모여져 이루어낸 삶의 예술이라 생각해 본다.   이번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유달리 그리운 아버지, 여고시절 미대를 가겠다는 딸의 진로에 흔쾌히 서울행을 지원해주신 아버지를, 이제 아버지의 나이쯤이 되어 그 마음을 헤아리고 있다. 아버지께서는 기와공장을 하셨는데 손재주가 좋으셨던 지라 손수 형틀을 주물로 제작하고 새로운 형태를 개발하시려 항상 집에는 금속을 다루는 연장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녀는 말한다. “중풍으로 오랜 시간 고생하시다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를 생각하며 작업했던 <그리움> <향수><환희>등이 있다. 지금도 나는 새로운 연장이나 망치를 보면 설레고 기회가 되면 거금을 들여서래도 구입하고 싶어 한다. 이런 모습을 보며 가끔 아버지의 모습을 내게서 발견한다.” 잔잔하게 들려주시는 옛이야기들을 듣느라 밖은 벌써 땅거미가 내려앉고 든든한 후원자이자 남편인 김문철 교수님은 약속시간이 지나도 나오지 않는 아내를 미소로 기다려 주셨다.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이 아닌가!… 한국화와 금속공예의 작품이 한자리에 만나 부부전을  갖는 날을 기대하며 이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무엇이 되기’라는 능력은 이를 이루어 내는 욕망과 그것을 이룰 수 있는 힘에 의해 가능해진다고 생각하는 나는 장영애 선생님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송수미 | 원광대학교대학원 조형미술학과 섬유공예전공을 수료했다. 전라북도미술대전 초대작가로, 현재 전주대학교에 출강하면서 한국미협 한국공예가협회 한국섬유미술가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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