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2 |
신명식 개인전 - 현상에 대한 이분법적 언어
관리자(2005-12-09 16:24:54)
글 | 구혜경 문화저널 객원기자
전시장을 돌아다니는 일은 끊임없이 부여되는 숙제처럼 받아들여지지만 그 것은 타의적이기 보다 스스로 던져주는 숙제를 검열도 없이 풀어내는 것과 같은 것이다. 오늘도 한 전시장을 찾아가면서 조금은 떨리는 설레임과 기대감, 불안감을 안고 찾아 나섰다. 전시장에 들어서는 나를 환한 미소를 맞아주는 것은 작가와 또 그의 가까운 사람이었다. 작가는 아이처럼 쑥스럽게 웃어대며 차 한 잔을 건네고 미리 약속이 되어있던 터라 바로 전시장으로 안내해버린다. 이미 자료를 통해 대략적으로 알고는 있었지만 현실감이 떨어지는 인쇄매체와 실제 작품은 분명히 차이가 있었다. 전시장을 한 바퀴 둘러볼 때 쯤 문득 몇 해 전의 전시를 통해 작가와 내가 인연을 맺은 것이 기억났다. 이제 막 젊은 작가로 나서고 있을 때 본인이 기획하는 전시에 초대된 적이 있다. 그것도 지금의 전시장에서 말이다. 젊은 작가를 발굴해보겠다는 나의 의지와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작가의 작업을 보면서 의욕적으로 작품을 보여주던 그가 생각난다. 그 뒤로도 여러 전시에서 관심 있게 보아왔지만 자기만의 세계를 보여주기 위해 그 전시장 가득 자신을 드러낸 개인전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것이 전시장을 찾는 나의 발걸음을 설레게 한 이유이기도 하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여러 모양의 창(窓)을 통해 바깥세상을 바라보는 듯하다. 마치 창호지에 여러 가지 모양을 내고 창문에 붙여서 햇빛이 들면 바닥에 여러 모양의 그림자가 생기듯이 그 모양 너머로 보이는 풍경들 말이다. 작품 속에서 보이는 풍경들의 일부는 잘려지고 일부는 확대되어 보이는 등 모양을 집중해서 보면 그 안에 담겨진 풍경이 문양처럼 보이고 풍경을 중심으로 보면 외곽 모양은 어느새 사라져서 시선 밖으로 나가있게 된다. 이 이분법적인 현상 구조를 작가는 드러내고 싶었던 모양이다. 두 개의 눈이 동시에 한 현상을 바라보면서 두 개의 상을 만들어 놓고 두 시각의 흔들림으로 인한 미적 율동감에 대한 감흥을 감상자로부터 얻어내고 싶었을 것이다. 이 시각적 율동감은 외형의 형태와 그 속의 풍경이 아주 다르지 않은 관계성을 가지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어서 개별적이지 않게 하나의 율동으로 묶어져 있다. 이러한 시선 때문에 외형과 내형은 같은 무게를 가지고 있어서 더욱 긴밀해 보이기도 한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면서 내뱉은 첫마디가 ‘공간에 대한 관심’이었다. 그 공간은 외형 너머에 있는 풍경에 대한 공간이기도 하고 이 현상세계의 모든 공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작가는 그 공간을 재해석하여 보이는 것뿐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것까지 공간을 통해 말하고 싶었단다. 그래서 현상에 대한 이분법적인 시각 구도를 통해 공간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사물의 다중적 시각구도는 그 이전에 보여주었던 시각의 착시현상을 이용한 설치작업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미지가 상실된 인식의 부재를 고민하고 그것이 현상으로서 어떻게 보이는가에 대한 인식적인 문제를 말해주었다.
작가가 고민하는 인식적인 문제. 이것은 20세기 미술철학의 담론인 현상학과의 관계를 통해 경험으로부터 얻어지는 모든 지식으로 인해 인식이 방해받는다는 것과 일맥상통하고 있다. 즉 우리가 경험한 모든 것이 지식이고, 그 지식을 토대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있어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신이 보여주고 있는 이 작품들 또한 그 지식에 의해서 각자가 주관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현상이다. 그래서 모든 것은 인식의 부재로 인해 다른 현상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얘기하면서 어려운 미술철학의 구조를 통해 설명하고 있지만 정작 작품들은 부드러운 편안함이 배어있다. 그것은 외형에서의 형상성이 아니라 그 속에 담겨있는 차분한 색 톤과 부드러운 표현법, 자연에 대한 소재 등이 머리 아프게 해석하려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마음으로 이해되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이것도 작가와 작품사이에서 이분법적인 현상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작가가 선택하고 있는 풍경들은 자신의 내면에서 얻어진 감흥을 직접적인 사생으로 꼼꼼하게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자연이 좋다는 작가의 말에서 그는 진정으로 자연을 좋아한다는 진지함을 보게 되었고, 그의 감성처럼 자신과 잘 맞는 표현을 찾은 듯하다. 작품 중 하나는 외형에서 보이는 도식화된 사과의 형상으로 표현하고 있어서 자칫 작가의 의도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물었더니 작가는 그 속에 담겨있는 풍경을 보는 순간 촉촉이 비에 젖은 숲의 나무 이끼들이 싱그러운 청사과 같은 느낌을 받았단다. 이처럼 작가의 감흥에서 비롯된 자연 소재들은 그 외형이 도식적이든, 문양적이든 관계없이 그 속에 담겨있는 작가의 내면을 통해 이해되기를 바란다. 예술에 있어서 내용이 중요하다느니 또는 형식도 중요하다느니 하면서 분분한 의견들을 가지고 표현하지만 그 두 가지는 어느 것도 소홀히 할 수 없는 함께 공존해야 되는 중요한 문제이다. 이 작가에게도 내용은 내용대로의 의미가 있고, 형식은 형식대로 내용과 함께 현상에 대해서 이분법적인 언어로 진솔하게 드러내고 있다.
작가는 이 전시를 시작으로 인식적인 문제를 본격적으로 드러낸다고 하였다. 하지만 첫 개인전이어서 강하게 드러내고 싶을 법한데 형상과 내용과의 관계에 있어서 부드럽게 표현하고 있다. 이는 작가의 장기적인 계획의 첫 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으로 점점 그 강도를 높여서 자신의 강한 이미지를 드러낼 계획이라는 다부진 마음을 가지고 있다. 어떤 형식과 내용으로 그 인식에 대한 강도를 높일지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