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05.12 |
창작극 <꿈꾸는 나라> - 휴머니스트에 대한 우리의 태도
관리자(2005-12-09 16:19:46)
글 | 홍석찬 전주연극협회장 전라북도 무대공연 제작지원사업의 일환으로 극단 ‘황토’ 레퍼토리시스템에서 공연한 제105회 정기공연 「꿈꾸는 나라」(김정수/작, 정두영/연출)는 1982년 창단하여 그동안 대통령상을 두 차례에 걸쳐 수상한 저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작품이다. 작년 러시아 한인 이야기를 다룬 「카레이스키」, 이춘풍전을 새롭게 각색한 「추월야몽」등을 공연하였으며, 그 여세를 몰아 계속되는 작품으로 “역시, ‘황토’는 다르다”고 외칠 정도로 관객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 동안 시청각적 요소가 강한 작품들을 주로 공연했던 극단 ‘황토’가 낭만적 사실주의에 충실한 함세덕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연극공부를 한 사람이라면 함세덕이란 이름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동승」, 「무의도 기행」, 「고목」, 「산 허구리」는 도내에서도 공연한 적이 있다. 연출자들이 그의 작품을 선호하는 이유는 낭만적인 분위기와 삶의 진한 체취가 묻어있는 대사, 사실적인 장면, 궁금한 결말, 찰진 토속어에 있다. 관객들에게 낭만과 차원이동을 확실하게 보여주던 그가 이번에는 그를 선망하는 연극인들에 의해 무대에 등장한다. 「꿈꾸는 나라」를 쓴 김정수는 극작가 겸 연출가. ‘예술가는 늘 이상을 꿈꾸는 사람들 이지요’라고 말하는 그는 그동안 「종이새」, 「땅과새」 등, 새 시리즈를 통해 현실과 이상을 표류하는 인물을 그리고 있다. 「꿈꾸는 나라」는 새 시리즈의 3탄 격이 되지 않을까?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연극을 준비하는 극단에서 배우가 잠들어 꿈을 꾸는 것으로 극을 시작한다. 함세덕이 연극 활동을 했던 과거와 남 북쪽에 살고 있는 가족들의 현재 이야기가 진행되며 함세덕의 희곡을 공연하는 장면은 극중극의 형태를 띤다. 함세덕과 그의 친구 김창건, 이현모는 정치 환경이 변하면서 서로 적대적이 된다. 외압에 의해 함세덕은 일제를 옹호하는 공연을 하게 되고 친구들로부터 지탄을 받는다. 이후 해방정국에서는 자신의 혁신적인 사상에 따라 현희와 함께 월북하게 되지만 북쪽에서는 부르조아 희곡작가로 낙인찍힌다. 이후 6·25 전쟁이 발발하고 함세덕은 당의 명령에 따라 종군하다가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참상을 목도하고 수류탄으로 자폭한다.   희곡은 함세덕의 행적 등 객관적인 사실을 제외하고는 모두 픽션으로 구성되었는데 일제강점기, 해방공간, 6·25전쟁을 배경으로 한 예술가의 고뇌와 슬픔을 보여준다. 감당하지 못할 시련 속에서 작가로서 자신의 운명을 선택해야 했던 함세덕. 그에게 씌워진 친일과 월북 작가라는 멍에를 걷어내고 휴머니스트의 이름을 돌려줄 수 있을 것인가? 드라마틱한 그의 죽음은 우리에게 ‘예술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져주고 있는 듯하다. 이것이 작가가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작품을 서랍 속에서 꺼내어 이 시기에 던져진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가볍지 않은 내용을 무대화 하려면 참가자들이 희곡에 대해 천착해야 한다. 정두영(극단 황토 레퍼토리시스템 상임연출)연출자는 오래전 자신의 다른 연출작품 「보이체크」(G.뷔히너/작)를 통해 타인에 의해 자신의 운명이 정해지는 무력한 인간을 보여준 바 있는데, 이는 함세덕의 경우와 다르지 않다. 표절과 변절의 오명을 써야 했던 그가 35세의 나이로 요절하기까지 그의 인생은 강점과 분단의 현대사에 의해 운명 지어진 것일 테니까.   상당히 복잡한 구성을 가지고 있는 이 작품은 연출에 의해 무대 위에 이해하기 쉽게 표현되었다. 다층무대를 사용하여 과거와 현재, 남과 북, 이념의 대립 등을 명확하게 표현하고, 차별화된 조명과 음악 등 공연 코드를 효과적으로 사용하였다. 하지만 여러 장면을 표현하기 위하여 불가피하게 사용한 많은 부분조명과 조명효과를 더하기 위하여 사용한 포그는 전쟁장면 등 몇몇 장면에서는 경악할 만한 느낌을 자아냈지만, 어둡게 보이기도 해 아쉬운 점이 남았다.  음악은 기성품을 사용하지 않고 대중가요 ‘열애’의 작곡자인 최종혁씨가 직접 작곡을 맡아 함으로써 현장감과 장면의 적절성이 유지되었다. 김영주(함세덕/역)와 정경림(김현희/역)이 부르는 노래 ‘한 걸음에 삼십년, 두 걸음에 육십년’은 헤어짐과 그리움의 심정을 제대로 전달하여 관객의 눈물을 자아냈다. 노래 숫자가 적었던 것이 흠이 될 정도로 더 많은 노래가 삽입되었으면 하는 생각도 갖게 했다. 이번 공연에는 전북의 굵직굵직한 중견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였다. 전국연극제 연기상을 수상한 적이 있는 김영주는 이번 공연에서 색다른 연기를 펼쳤다. 순수를 열망하는 함세덕의 고뇌를 떨리는 가슴으로 연기하였으며, 정경림의 연기는 차분하고 성숙미가 돋보였다. 전북의 스타 배우 권오춘(유선생/역)과 이덕형(함선식/역)은 천연덕스럽게 무대에서 놀듯하며, 무대 위에 올라가면 순식간에 그 인물이 되어버리는 김준(극중극배우/역), 무대제작, 출연자로까지 불타는 투지를 보여준 공동규(김창건/역), 그리고 너무나 반가운 얼굴 장제혁과 안동철(일본형사들/역).   배우의 카리스마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생활의 연륜이 그대로 묻어있는 장제혁과 안동철 콤비의 연기를 보고 있자니 가슴부터 아려왔다. 생활에 쫓겨 무대를 떠나야 했던 그들이 다시 무대에 서게 된 것이다. 마치 그동안 쉼 없이 무대에서 살았던 사람 마냥 편하고 자연스러웠다. 분장실에서 행복한 웃음으로 ‘연극만 했으면 쓰겄다’ 한다. 그들이 연극만 하면서 살았으면 한다. 무대경험이 풍부한 배우들과 경험이 적은 신입배우들 간에 연기의 부조화가 눈에 띄기도 했지만 작품에 크게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작품제작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작품의도를 공유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따로따로 독립되어 자신의 것만 보고 자기 몫만 열심히 한다면 무대 위에서 거대한 에너지의 움직임은 기대하지 못한다. 위인이나 인물을 작품화 시킬 때 조심해야 할 사항은 작가가 창작한 인물의 사상이 관객의 동의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곳 관객에게 진부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런 느낌을 주지 않으려면 새롭게, 시대에 맞게 창조해야 한다. 극작가와 연출자, 스텝, 배우가 얼굴을 맞대고 토론하여 작품의 통일성을 유지해야한다. 통일해야 소통할 수 있다. 순수, 친일, 공산주의 등 그의 인생의 변주곡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함세덕이 꿈꿨던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참혹한 운명의 화살을 맞고도 참아야 하느냐, 아니면 노도처럼 밀려오는 고난과 맞서 용감히 그것을 물리쳐야 하느냐, 어느 쪽이 더 고귀한 일일까. 죽는 일은 잠드는 일. 아마 꿈을 꾸겠지. 그래 꿈을…’ 너무나 인간적인 꿈을 꿨던 한 휴머니스트의 죽음을 보며 모든 분단의 장막이 걷혀야 한다. 그의 꿈이 현재진행형이 될 수 있도록… 어느 때 보다도 많은 작품이 공연되고 있다. 전북 소극장 연극제가 시작되었으며, 지원기금을 받는 극단의 공연들이 후반부에 밀려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공연이 많고 관객이 많고 여부가 연극의 성공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연극의 본질적인 의미가 진지하게 탐색되고 그 환경 안에서 우리가 자유로워질 수 있을 때 발전된 전북연극발전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홍석찬 | 전북대 독문과를 졸업하고 1988년 입단, 연기를 시작했다. ‘정으래비’, ‘상봉’, ‘서울로 가는 전봉준’ 등 수많은 연극에 출연했으며, ‘밤비내리는 영동교를 홀로 걷는 이 마음’, ‘삽 아니면 도끼’, ‘콩쥐야 훨훨’등을 연출했다. 현재는 창작극회 대표와 전주연극협회장으로 활동하면서 남원국악정보고에 출강하고 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