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2 |
제32회 전북도립국악관혁악단 정기연주회 - 우리 음악의 정감이 그립다
관리자(2005-12-09 16:13:42)
우리 음악의 정감이 그립다
글 | 황미연 전주예술고등학교 교사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란 말은 무미건조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보다는 실제로 한번 보고 경험하는 것이 낫다는 말이다. 이 말을 국악에 대해 적용해 본다면 이론적인 지식의 앎보다도 한번이라도 가슴 뭉클한 감동과 느낌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 일게다. 즉 우리음악을 모름에서 오는 편견을 없앨 수 있는 기회를 갖기 때문이며, 정서적으로 ‘향유’하는 예술의 특성상 특히 그렇다.
만추의 계절에 참 맛과 길을 따라 음악애호가를 찾아 나선 11월 8일과 9일 양일간의 전북도립국악관현악단의 정기공연은 국악을 머리로 이해하기보다는 가슴으로 터득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배려하는 공연이었다. 전통예술의 계승과 창조적 문화창달이라는 목표아래 운영되는 전북도립국악관현악단의 정기공연은 지난 1년간 연주활동의 마무리라는 의미와 한국음악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공연으로 짜여졌다.
전통과의 대화로 관현악단과 하모니를 맞춰보는 협연곡들과, 국내에서 주목받고 있는 젊은 작곡가들의 위촉곡이 단풍으로 곱게 물든 가을밤을 수놓았다. 쉽게 접하기 어려운 중요무형문화재들과 송화자 교수의 협연, 인간과 자연의 소통·평화와 상생을 주제로 곡을 내어준 젊은 작곡가 강상구, 지원석의 초연곡들 그리고 단원들의 성숙한 예술적 역량에서 이 정기공연이 주는 무게를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연주자의 건강상태에 따른 불만족은 이해할 수 있지만, 공연 전날 위촉곡이 도착하는 기획이나 작곡자의 뜻이 반영이 되지 않은 초연은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프로라고는 하지만 작곡자의 의도가 제대로 반영된 연주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광야의 숨결’은 전라도의 넓은 평야처럼 웅장하고 기개 엄치고 온화하고 푸근한 마음의 평야를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처음은 굉장히 뭔가를 품어낼 것 같은 기개가 보였으나, 더 이상의 발전이 없는 똑같은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어 아쉬움을 갖게 했다. 건강상의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급하게 마무리 했다는 모습이 보인다.
‘나의 조국, 한반도’는 남북한의 음악적 통일과 화합을 위한 곡으로 친숙한 민요를 모티브로 하여 낯선 문화의 화합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곡은 작곡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다른 음악으로 포장이 되어 버렸다. 그냥 단순하게 민요를 반복하는 지루한 곡이 되어 버렸다. 작곡가와 지휘자 혹은 연주자와의 교감은 좋은 연주의 기본이다. 이 기본이 잘 지켜졌는지 의심스럽다.
숨가삐 달려온 우리네 세월이나 정기연주회 34회라는 전북도립국악관현악단의 변화는 분명 오늘을 위해 달려왔을 것이다. 오늘이 무얼 말하는지는 각각이 다 다르겠지만, 오늘의 공연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어야 하고 제시하여야 하는가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는 공연이었다.
공연장을 갈 때 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무엇이 현대화이고 대중화인지 혼돈스러울 때가 많다. 또한 많은 관현악단이 표방하는 음악이 무엇인지, 무엇을 보여주고자 함인지 차별성이 없고, 뚜렷한 음악목표가 없다는 점도 아쉽다. 단지 전통과 현대라는 두 가지를 양손에 갈라쥐고 ‘대중화’ 혹은 ‘재창조’라는 명목아래 엮어내고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러한 음악들이 내세우는 소통의 재료는 거의가 타악기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물론 1980년대 사물놀이 탄생에서부터 현재까지도 우리나라 사람이든 외국사람들이든 간에 우리음악으로의 관심을 끌어내는데 많은 역할을 한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러하더라도 타악이 아니면 음악의 성공(?)을 이룰 수 없다는 식의 논리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타악에 의해 음악이 주도되고, 관악기와 현악기는 마치 반주를 하는 듯한 음악들. 물론 타악기가 주도되는 음악도 필요하지만, 관·현악기가 음량에 눌려 제 음빛깔을 찾지 못하는 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번뜩이는 섬광이 있는 신명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가슴처럼 따뜻한 정감이 있는 것을 잊어버린 것일까? 우리 음악은 하나라는 큰 묶음 안에 개체별 포용이 이루어지는 공동체적이면서도 개별적인 조화에 바탕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선 안된다.
현재의 음악구도는 국악을 대중화 시켜야 한다는 미명아래 관객의 취향만을 쫓아 따라가는 것 같다. 어쩌다 한 번 발검음한 관객에게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기회인만큼 한 번에 강하게 심어주어 계속 국악에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해서는 타악 만큼 좋은 것은 없으리라고 믿어왔다.
큰 음량에, 가장 원초적인 리듬악기이며 신명을 줄 수 있는 것이기에, 또한 이러한 민속악적인 선율과 리듬만이 전통적인 작품이라고 평가할 때의 기준이 되고 있는 시각에서는 말이다.
그러나 전북도립관현악단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국악의 여러 음악을 차별 없이 음악 속에 들여놓고 해체와 조합이라는 과정을 거쳐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음악을 다양하게 내어주고 골라 먹을 수 있게 하여 명곡의 탄생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기분 좋은 리듬만을 편식하고 있다. 음식도 편식하면 안 되듯이 음악을 편중하지 않도록 골고루 맛을 보고 음악 소비자의 인식을 누가 이끌어야 하는 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전북도립국악관현악단은 전북을 대표하는 관현악단이다. 이번 연주회를 보면서 기획력 부재를 들고 싶다. 예를 들어 전북을 대표한 관현악단이면 전북의 문화유산을 음악으로 이끌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즉 전라삼현육각이나 이리향제줄풍류 등 새롭게 표현해서 21세기 음악언어로 풀어내야한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들이 정기공연에 올려져야 하지만 전라도적인 것들의 부재를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전북도립국악관현악단은 전문적인 관현악단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이런 기대치가 충분하게 요구될 수 있다. 전북의 음악색체를 이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문화란 시대와의 대화 속에서 새롭게 재창조되는 것이고 좋은 문화란 익숙한 것(전통)과 새로운 것(현재)의 적절한 조화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현재의 우리음악의 미래는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음악의 방향 설정을 관객의 취향에 따라야 할 것인가, 아니면 음악인이 제시해야 하는가?
이러한 역할은 작곡자와 관현악단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듣기를 강요해서 산뜻한 느낌으로 청중을 사로잡겠다는 강박관념에 쌓인 음악이 아닌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아도 좋을, 각 특징을 살린 악기간의 호흡이 있고 농현의 곡선이 살아 있는 음악 또한 듣고 싶다는 것이다.
전북도립국악관현악단이 무수히 많은 공연을 하고 있다. 공연장을 찾아올 수 없는 분들을 위해 찾아가는 무료봉사공연, 신춘음악회, 목요상설무대, 대학생협연의 밤, 청소년 협연의 밤, 도내 연주인 초청협연의 무대 등 다양한 기획으로 도민을 찾고 국악을 저변확대 하는데 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 이렇게 대중을 위한 공연이 있지만 정작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연주회는 없다. 이 점을 정기연주회에서 담당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나름대로의 새로운 기획으로 무대를 일으키고 있지만 전북도립만이 내세울 수 있으며 실험성 있는 음악을 애써 외면하지 말고 모두 똑같은 모양으로 흘러가는 타 관현악단을 리드할 수 있기를 바란다. 즐김을 통한 우리음악의 앎으로의 연계가 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다음을 기대한다.
우리의 문화 속에 호흡에 관한 양식척(量息尺)이란 말이 있다. 숨을 한 번 내쉬고 들이마시는 동안을 하나의 시간 단위로 설정하여 일식간(一息間)이니 혹은 이식간(二食間)이니 하는 말이다. 타악으로 몰아가는 신명난 음악몰입도 좋지만 유연하고 매끄러운 호흡이 있는 그런 음악이 조금 그립다. 이 계절에…
황미연 | 전주대 사회교육과와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전주대 겸임교수와 원광대, 서해대학 강사로 일했고, 제 7차 교과서 검정위원(음악)을 지냈다. 현재 전주예술고등학교 교사 및 전북대 강사, 전라북도 문화재 전문위원, 전라북도 어린이 국악관현악단 운영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신관용 가야금산조 연구』, 『전북국악사』, 『우리의 소리, 세계의 소리 판소리』 등이 있고, 3인음악회, KBS국악관현악단 기획공연 가야금 협연, 2002 전주시립교향악단 가야금 협연 등의 연주활동을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