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2 |
조선 소나무 반다지를 그리워하며
관리자(2005-12-09 15:57:33)
글 | 권오표 완산고 교사
좀 생뚱맞은 얘기 하나 하겠습니다. 오랫동안 골동품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친구 덕에 옛 가구 몇 점을 갖게 된 호사를 누리고 있습니다. 호사라고 했지만 20년 넘게 귀동냥과 발품을 통해 얻은 것이니 괜한 오해는 마십시오. 고상한 취미를 자랑하자는 게 아닙니다.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하는 것이지요.
옛 가구인 반다지나 이층장을 집안에 처음 들여 놓으면 그야말로 촌스럽기가 그지없습니다.
특히 현대 가구와 함께 배치해 놓으면 영락없이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됩니다. 오랫동안 주인 눈치나 보며 서름서름 굴러먹은 늙은 머슴 꼴입니다. 쓰인 재료래야 우리 산야에 흔하디 흔한 느티나무며 소나무, 더해봐야 오동나무나 배나무, 먹감나무 정도지요. 모양도 투박하긴 매 한가집니다.
특히 오래된 반다지는 거무튀튀한 빛깔에, 생긴 것은 꼭 시집 갈 처녀가 그믐밤에 숭덕숭덕 썰어 놓은 깍두기 모양입니다. 붙어있는 장석도 마찬가지입니다. 놀부 동냥 주듯 마지못해 얼기설기 달아놓은 거머리쇠가 전부입니다. 잘 해봤자 이층장에 붙은 주석 장석 정도가 호사지요. 날아갈 듯한 디자인에 온갖 치장을 한 현대 가구와는 감히 견줄 바가 못 됩니다. 그래서인지, 제 친구 이야긴 즉, 신세대 부부들이 부모님이 물려주신 이것들을 신혼방 분위기와 영 맞지 않는다며 종종 가지고 온답니다. 꼭 귀신 나올 것 같다나요? 이런 것들이 운 좋게 가끔 제 차지가 되곤 합니다.
이쯤에서 아마 제게 물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보잘 것 없는 것을 왜 은근히 자랑삼아 이야기하느냐고 말입니다. 맞습니다. 분명 투박하고 촌스럽고 보잘 것 없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조금만 인내하십시오. 기다려 보십시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현대 가구에 비해 작고 보잘 것 없는 이 반다지며 이층장들이 조금씩 제 자리를 잡아가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오랜 세월의 흐름 속에 거무튀튀한 원목의 색감들이 은은한 빛을 발하면서, 안방을 차지한 채 천박하게 번쩍이는 현대 가구를 서서히 밀어내며 당신의 시선을 잡아 맬 것입니다. 단순하기만 한 거머리쇠 장석들은 안온함과 고졸한 멋을 더하게 된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반드시 그곳에 있어야 할 필연적 공간을 연출할 것입니다. 그것을 직접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한번 그 반다지와 이층장이 있던 공간을 다른 것으로 바꿔보거나 비워 보십시오. 그러면 그곳을 그 어떤 다른 것으로도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옛 가구들은 규격화 된 현대 가구와 달리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른 독특한 지방색을 지니고 있습니다. 남원 먹감 이층장이 풍기는 단아하고 세련된 대칭미는 보면 볼수록 사대부 부녀자의 기품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고흥 반다지의 옹골찬 안정감, 소나무 반다지의 자연스런 결무늬와 소박한 멋은 오래 전 이것을 만든 이의 성품까지도 엿볼 수 있어 저절로 미소를 머금게 합니다.
같은 지역에서 만들어진 것이면서도 각기 다른 개성과 품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 우리 선조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옛 가구의 미감입니다. 그렇다고 단순한 장식품으로만 보시면 안됩니다. 이것들은 지금도 살림 수납장으로의 역할 또한 톡톡히 해내는 집안의 소중한 생활가구이기도 합니다.
한가하게 옛 가구 찬사나 하자는 건 아닙니다. 이것을 이 지역의 축제에 한번 대입시켜 보면 어떨까요. 지방마다 많은 축제가 잇달아 열리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온 나라 안이 축제로 한해를 시작하고 한해를 보낸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입니다. 축제가 많다는 건 분명 축복받을 일이지요. 그만큼 흥겹고 즐거운 일들이 많다는 증거일 테니까요.
우리 지역도 예외는 아닙니다. 이름도 갈수록 거창해 집니다. 무슨무슨 축제 앞에 ‘국제’니 ‘세계’를 붙이지 않으면 이젠 명함도 못 내밀 지경입니다. 국제화 시대에 이걸 시비 걸자는 건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이 지역 주민들조차 고개를 갸웃거리는 축제에 굳이 ‘세계’를 끌어와야 축제의 체면이 서는 건지 아무래도 좀 민망합니다.
축제의 참된 의미는 삶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어 줌으로써 더 나은 삶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상호 소통을 통해 세대와 계층을 아우르는 흥성한 마당을 연출하는 것이 아닐는지요.
하지만 그 많은 축제 중에서 이런 진정한 의미를 살린 축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지역 문화의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성찰도 없이 세계화를 빌미로 이름도 낮선 다른 나라의 단체나 예술가(?)를 모셔오는 것만을 축제의 성과인 양 앞세우는 것을 보면 씁쓸하기만 합니다. 내실보다는 보여주기에만 집착하여 지역 주민들은 구경꾼으로 밀어내고 난장이나 기웃거리게 하는 ‘그들만의’ 축제는 아니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이웃에서 하는데 우리라고 못할 게 뭐냐는 식의 안이한 발상으로 적당히 ‘건수’ 만들어 급조한 그렇고 그런 비빔밥 식의 축제는 이제 막을 내려야 합니다. 과감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때입니다.
거리마다 덕지덕지 붙어 있는 프랭카드나 현수막이 없어도 입소문만으로도 손꼽아 기다려지는 정겨운 축제. 우리네 조선 소나무 반다지처럼,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함께 만들어가는 정겨운 어린 시절 고향 동네의 운동회 같은 그런 축제는 어디 없을까요?
또 한해가 저물어갑니다.
이 해가 가기 전 교동 어느 외진 찻집에서 당신과 차 한 잔 나누는 즐거움을 간직하고 싶습니다.
권오표 | 전라북도 순창에서 태어났다. 현재, 완산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면서, 문화저널 상임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1992년 『시와 시학』으로 등단, 작품활동을 해오고 있다. 시집으로는 『여수일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