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2 |
겨울 김치찌개의 맛
관리자(2005-12-09 15:50:50)
겨울철의 김치찌개는 나풀나풀 날리는 눈발처럼 향수에 젖게 한다. 김치찌개는 어린시절 고향의 겨울철 밥상에서 대할 때마다 감식이었다. 어려운 세상이었으니, 먹고 싶다고 자주 어머니를 졸라댈 수는 없었다.
지금이야 식당에 따라서는 계절에 관계없이 김치찌개를 식단에 내어걸고 있다. 떠먹어도 매옴·구수하고, 아예 밥그릇에 적당히 떠 옮겨 착착 비벼 먹어도 입안이 얼얼 구수하여 숟가락질이 빨라지게 된다. 석양녘 술안주로도 그만이다.
그러나 김치찌개는 겨울철이어야 제 맛이다. 원래 찌개는 끓이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치찌개에 쇠고기나 편육도 못 쓸 것은 없으나, 돼지고기래야 제 맛이 돋는다. 돼지고기 또한 지난날엔 겨울철 먹거리로 꼽았던 것이다.
김치찌개는 궁중의 수라상에도 올랐던 것인가. 궁중에서는 찌개라는 말 대신 조치라는 말을 써서 ‘김치조치’라 일컬었다. 그러고 보면, 김치찌개는 옛날로부터 신분의 귀·천 없이 즐겨온 음식의 하나였다는 생각이다.
하긴, 김치찌개의 김치 자체가 우리겨레의 슬기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던가. 또한 김치에 빠져서는 안 되는 고춧가루를 조선조 중기 이후 고추의 유입으로부터 일반적으로 사용하게 되었으니, 김치찌개는 이때로부터 조리되어 온 것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김치찌개는 김장김치보다도 묵은지여야 맛이 돋는다. 돼지고기도 생고기가 아닌 삶아낸 고기를 써야 맛이 더한다. 적당량의 물을 잡아 묵은지와 돼지고기를 넣어 바특하게 끓이면서 고추장도 풀고 파와 마늘도 다져 넣어 먹어야 제 맛이다.
최근에 즐긴 김치찌개로 자랑할만한 식당의 것을 들라면 「신(新) 시골밥상집」(전주시 완산구 경원동 3가 28-11, 전화 288-3978)의 것을 들고 싶다. 나의 입맛에 썩 아울러 들고, 어린시절 고향의 김치찌개 맛이 되살아나기도 한다.
「신시골밥상집」은 김치찌개(5,000원)만의 전문점은 아니다. 백반(3,500원)을 내세우고 있으나 갈비탕(5,000원), 생태탕(7,000원)도 내고 있다. 주인인 이성오씨는 백반을 찾는 손님에게 나의 어린시절 시골집 인심이다. 백반상에 기본적으로 나오는 풋고추찜 갈게볶음 무장아찌 당잡채볶음이나 장류 외에 요일에 따라 점심때만은 한 가지 탕을 아울러 내어 놓고 있다. 월요일엔 아구탕, 화요일엔 꽃게탕, 목요일엔 동태탕, 금요일엔 조기매운탕, 수요일엔 김치전이다.
물론, 이러한 탕이나 전은 몫몫의 것이 아니다. 하나의 탕그릇이나 전접시를 창차림의 복판에 놓고 일행이 함께 즐겨야 한다. 이 집에선 싼값으로 많은 것을 먹을 수 있어 좋다는 것이 아니다. 주인의 손님들에 대한 마음씀이 아름다워 재미있다.
주인의 마음씀이 아름답다 하여 그 집의 음식이 꼭 맛이 있는 것도 아니다. 상차림의 반찬들이 시골집 음식처럼 소박한 맛이 있다. 잡박(雜駁)한 데가 없다. 이 집 음식에 입맛이 끌리는 것도 이 점에 있다.
이 집의 김치찌개는 삶아놓은 돼지고기를 덩이로 넣어 끓이다가 묵은지도 포기를 몇 등분한 가닥채 넣는다. 고추장이나 된장 풀이를 한 국물은 파·마늘 등 양념까지를 하여 미리 마련한 것이다. 돼지고기는 진안의 것을 대어 쓰고, 묵은지는 김제 시골집의 땅에 묻은 김칫독에서 그날그날 내어다가 쓴다는 주인의 말이다.
식당이름 「신시골밥상」과도 어울리는 김치찌개의 맛이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