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1 |
‘당신의 삶은 군대화 되지 않았나요?’ 『대한민국은 군대다』 (권인숙 지음, 청년사 펴냄)
관리자(2005-11-12 15:07:35)
글 | 송경숙 전북성매매여성인권지원센터장
여성에게 평화란 무엇인가? 지금까지의 전쟁 반대 개념으로서의 평화, 힘의 논리에 의해 유지되는 국가주의 틀안에서 군사주의로 무장한 평화는 이 물음에 답을 주지 못한다. 가부장적 남성성이 지배하는 군사주의, 군사화는 여성을 주변화하고 무력화하는 성차별구조와 문화를 강화, 재생산하여 여성의 일상을 전쟁터로 만들고 오히려 여성에게서 평화를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서구 근대담론인 ‘보편적 인권’속에 여성의 인권은 배제되어 있듯이 ‘국가주의적 평화’가 여성에게 평화를 주기보다는 더 억압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여성주의적 자각은 그동안 너무나 당연시 되어왔던 군사화 된 평화 논리를 향해 많은 질문을 하게 한다. 이 질문에 명쾌한 답을 기대하면서 반갑게 이 책을 들었다. 책 표지에서 필자의 관심과 시선을 끌어당긴 것은 저자 자신이 다소 도발적이랄 수 있는 제목이라고 표현한 『대한민국은 군대다』 사이에 놓인 부제 ‘여성학적 시각에서 본 평화, 군사주의, 남성성’ 이었다.
저자 권인숙은 ‘386세대’들에게 ‘1980년대의 학생운동가’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이 책은 지난 2000년에 발표한 저자 자신이 경험한 80년대 학생운동의 군사화와 성별성을 여성주의 시각에서 비판적으로 성찰한 여성학 박사논문을 하나의 장으로(2장) 구성하면서 같은 맥락에서 한국사회의 국가주의적 평화와 군사화(1장), 군대와 징병제(4장), 군대내 남성간 성폭력의 현실(5장)과 그 속에 내재되어 있는 성별성/남성중심성을 분석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작업이 1980년대 학생운동의 성과를 훼손하거나 희생정신을 폄하하고 싶어서가 아닌 오히려 당시 철저히 눌려져 있던 여성의 관점에서 새롭게 우리는 누구였고 누구인지를 알아봄으로써 변화와 극복지점을 보다 분명히 찾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식민지를 겪고 전쟁을 겪으며 북한이나 주변국과의 군사적 위협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온 국가에서 물리적 힘의 근간으로서 국가 안보를 위한 핵심기관으로서의 군대와 55년간 제도 자체의 존폐에 대한 논란 없이 지속되어 온 남성 징병제도는 한국 사회 모든 사람과 어떤 식으로든 연결된 주요 기관이고 제도이다. 따라서 이 경험의 의미를 분석한다는 것은 한국의 성별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주요 열쇠가 될 수 있다고 하는 저자의 입장에 동의한다.
저자는 반공이념과 같이 대중적인 동의 속에 정치, 사회, 경제, 교육 등 전 사회적으로 군사화가 진행되기 시작한 1960년대에 태어나 군사화의 진행이 가장 활발했던 1970-198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내고 국가 중심교육의 주 대상이 되었던 1980년대 운동가로서의 삶을 통과하였다. “권인숙 씨의 삶이 군사화 되었던 것 아닌가요?”라는 타인의 질문으로 시작된 자신의 삶에 던지는 성찰적 질문과 대답들이 이 책을 끌고 가는 주요한 힘이었으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3장을 구성하고 있는 ‘한 여성활동가 이야기’의 김상인 역시도 저자와 동일한 시대적 배경을 살았다.
김상인은 새마을 운동과 반공주의 교육이 한창이던 초등학교시절에 이미 국가, 집단의 이익을 위해 자신을 적극적으로 복무시키고자 했다. 마을 어린이모임을 조직하여 마을 청소 등에 앞장섰던 김상인의 집단주의 의식은 80년대 학생운동과 90년대의 노동운동 속에서 한번도 도전받지 않았고 더 큰 단위를 위해 개인은 희생해야 한다는 집단주의의 아름다움으로 체화되어 성별적인 조직위계 안에서 스스로 남성화되거나 모성성을 발휘한다. 군사화 된 사회에서 시위대에서 앞에서 싸울 수 없는 육체적 약함, 샌들을 사고 립스틱을 바르는 것을 원하는 정신적 약함, 그리고 민족이나 운동의 일반적 요구가 있음에도 개인의 문제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거나 개인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개인주의로 인식되는 여성성은 젠더적 위계가 강한 가부장적 질서에서 활동가 김상인에게는 명백하게 남자는 권력을 인정할 만한 주체였고 여성은 혐오스러운 타자였다.
그 타자 의식 속에서 억눌렸던 여성으로서의 삶에 대한 고민이 역시 대의에 충실하여 선택한 결혼 관계에서 아픔을 겪은 후에야 처음으로 자신의 개인성을 돌보지 않은 삶의 허망함을 되돌아보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러한 김상인의 이야기는 한국의 국가주의와 군사화, 집단주의가 한 여성 개인의 삶에 어떻게 내면화되어 영향을 미치는가를 현실감있게 느끼고 생각해보도록 도와준다.
군대 관련 최근 핵심 쟁점이었던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기피 사건과 이중국적자들의 한국 국적 포기사건, 군가산점 폐지 논란, 양심적 병역거부 등의 논란을 다루며 55년간 지속되어온 징병제가 어떻게 한국사회에서 군대 가는 남성의 희생과 사회적 약자라는 측면을 강조하면서 병역거부와 기피확산의 두려움을 내포한 법 제도적, 문화적 판단들을 하고 있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또한 군대내에서 발생하고 있는 남성간 성폭력은 계급적 우열 관계, 남성성의 경쟁 속에서 진정한 남자를 만들려고 하는 군대라는 공간에서 이를 위한 수단으로서 쉽게 동원되는 것으로 해석하고 성폭력에 대한 피해, 가해의 경험이 일반 사회에서 약자를 주로 구성하는 여성에게 어떤 형태로 전환될 것인지, 남성성의 경쟁에서 여성화가 가지는 의미가 폭행의 대상으로서 또는 극복의 대상으로서 보이는 부분이 차별화된 성별문화의 확대 재생산에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통찰한다.
식민지 경험과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강제적 전쟁참여, 미국의 일본에 대한 공격과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력에 의한 해방, 이후 강대국에 의한 국토분할, 한국전쟁과 강대국들의 개입과 휴전을 겪어온 과정에서 강한 국가만이 평화를 선택할 수 있다는 힘의 논리가 남성성이 중심이 되는 국민 정체성을 구성하고 여성은 보조적이고 보호받는 존재로 규정하는 군사화가 지속되는 한 ‘진정한 평화는 없다’고 저자는 책 전체를 통해 용감하게 말하고 있다. 한국사회의 진보와 평화를 꿈꾸는 이들이 반드시 한번은 성찰해 보아야 할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