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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 |
[시장2] 전주남부시장의 ‘희망가’, 그 변화상
관리자(2005-11-12 15:03:03)
글 | 홍성덕 전북대박물관 학예연구사 5일장으로 열리던 조선시대 전주의 장터는 일본의 시장지배에 따라 정기시장으로 바뀌어 가게 된다. 1914년 일본의 시장규칙에 의해 재편되는 장터는 보통시장, 공설시장, 어시장·야채시장, 곡물·유가증권의 현물시장 등 각각 1호~4호로 구분되었다. 상설시장으로서 장터가 변하였고, 현대화한 마트 등이 생겨나면서 이제는 재래시장으로 불리운다. 최근 재래시장 활성화가 구도심 살리기 만큼이나 중요한 화두이고 보니 명절이 되면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으로 시장으로 몰려들곤 한다. 시장의 점포가 동네 슈퍼로 대형마트로 변화하면서 재래시장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이 안쓰러워 보일 정도이지만, 그렇다고 경제논리에만 맡겨 놓기에 재래시장은 우리들의 삶과 역사, 그리고 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남부시장은 1923년 서문시장과 통합된 이래, 전주사람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재래시장의 상징이다. 2일, 7일 5일장이 섰던 남문밖 시장과 서문밖 시장의 통합은 일제의 시장규칙 뿐만이 아니라 강점이후 도시 상권을 장악해 나가는 일본의 경제정책에 의해 인위적으로 변질되었다. 전주의 남문밖ㆍ서문밖 시장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완산칠봉과 유연대를 잇는 능선에서 쏘아대던 관군의 대포로 철저히 파괴되었던 터라, 일본이 전주를 강점하고 식민지배를 시행했을 당시 시장의 점포라 해야 천변에 세워진 임시 가설점포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서문밖 성벽 밑에 자리잡은 일본인들은 성벽이 헐려지면서 성벽이 있던 길을 따라 서쪽에서 남문방향으로 상권을 확장하게 되면서 1920년대 무렵에 이르러서는 다이쇼마치(현 웨딩거리)를 중심으로 전주의 상권을 장악하였다. 이 즈음에 바로 서문밖 시장을 폐지하고 남문밖 시장으로 통합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1931년 전주읍이 시행되면서 시장에 사무소를 두고 읍이 직접 관리를 담당하였고, 1935년 전주읍이 전주부로 승격되자, 남부시장에 대한 대대적인 확장사업이 벌어졌다. 1936년 10월 드디어 8동 36호의 시장건물이 증축되었고, 1937년에는 5천8백26평의 면적에 1등 상설점포 25호 225평, 2등 상설점포 11호 82평, 보통상설점포 44동 813평, 어채시장 1동 63명 기타 사무소, 화장실 등이 세워졌고, 노점 1300평의 공간이 마련되었다. 우리들이 흔히 보는 <사진 1>은 바로 일제에 의해 근대화된 건물로 다시 탈바꿈한 남부시장의 모습이다. 남부시장을 대대적으로 증개축한 일본은 1등점포 25엔20전, 2등점포 22엔50전, 보통점포 19엔80전을 거두었으며, 노점 사용료는 1년간 1만889엔11전에 달하였다. <사진 1>의 모습에서 알 수 있듯이 남문밖 시장이 확장되면서 천변 다리를 따라 형성된 각종 장터들이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남문밖 시장에서만 물품 거래된 것은 아니었다. 사진에 보이는 나무시장의 경우 건축용 목재시장이 남문밖 시장의 주류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일반 서민들을 위한 땔나무는 남문밖시장 이외에도 초록바위 밑 즉 남부시장 건너편에 장날이면 줄지어 나무 등짐이 놓여있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천변 시장 물품은 남부시장에서 거래되기 시작했지만, 매곡교 밑 우시장처럼 별도의 도장(屠場)이 세워지기도 했다. 건물과 상거래가 근대화되었다고 하지만 시장 속의 문화는 여전했다. “솥 뚜껑만 한 유성기 나발대에서 울려오는 화중선의 노래가락에 장단 가락이나 치다가 만병수 한병을 사 가지고 집에 돌아가는” 곳이며, “남루한 옷을 입은 중국 사람이 곰이나 원숭이, 뱀 따위를 가지고 와서 여러 가지 재롱을 떠는” “품바타령”이 들리는 그런 민중의 삶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이런 남문밖장과 천변의 풍경은 해방 이후에도 한참 동안 지속된 듯하다. 이런 모습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1968년에 시작된 남부시장 근대화 사업이다. <사진 2>는 엄병건 당시 전주시장이 1968년 11월 30일 남부시작 근대화 시설 제1차 공사 기공식을 하는 장면이다. 남부시장 근대화는 시유지 6,051평, 민유지 1,652평, 협동사 토지 597평 등 총 8천3백여평에 점포 11동(2,347개), 소요자금 6억1천2백만원이 소요되었다. 최근 남부시장 현대화 사업은 바로 이 당시에 세워진 건물들을 다시 리모델링하는 것이다. 68년 근대화 사업이후 시장의 풍경은 다시 한 번 바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70년대 새마을운동과 더불어 천변의 민중 문화가 점차 사라지게 됨에 따라, 재래시장에 남은 우리들의 상거래 문화는 그저 흥정만이 있는 것은 아닐까?  수백년 우리들이 이어온 장터와 장터문화를 부활시키는 것이 곧 재래시장의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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