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1 |
숫자 song과 글자 song1)
관리자(2005-11-12 14:55:30)
1 일초라도 안 보이면 2 이렇게 초조한데 3 삼초는 어떻게 기다려(이야이야이야이야) 4 사랑해 널 사랑해 5 오늘은 말할 거야 6 육십억 지구에서 널 만난 건. 7 lucky야. 사랑해, 요기조기 한 눈 팔지 말고 나를 봐. 좋아해, 나를 향해 웃는 미소. 매일매일 보여줘. 8 팔딱팔딱 뛰는 가슴. 9 구해줘, 오 내 마음. 10 십년이 가도 너를 사랑해. 언제나 이맘 변치 않을게.
앙증맞다고 해야 옳다. 숫자 송을 비롯하여 당근 송, 라면 송 등을 거침없이 불러대는 아이들의 낭랑하고 자신감 넘치는 목청 앞에서, 영문도 말문도 막히는 구세대들은 거대한 물결에 휩쓸려 시대의 툇마루로 밀려가는 것을 실감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시대의 변화가 예전이라고 별반 달랐을까 싶은 글자 송이 있다. 물론 숫자 송과의 연계를 염두에 두고 계보로 따지자면 ‘일자나 한 장 들고나 보면’의 각설이 타령이 먼저일 테지만 그 계보 중 어디쯤에 있었음 직한 글자 송도 지금의 숫자 송처럼 한때 당시의 앞 세대를 뒷전으로 몰아세우던 시절이 있었을 듯하다.
기억니은디귿리을 기억 사이다2) 집을 짓고 지긋지긋허드락3) 사잤더니.
가갸거겨 가이없는 이 내 몸이 거지4) 없이도 되 네5)
고교구규 고생하시는 우리낭군 구완하기6) 짝이 없네.7)
나냐너녀 나귀등을 손질하여 조선십삼동 유람을 가세.
노뇨누뉴 노류장화 진계유지 처처마다 있건마는
마먀머며 마자마자 허였더니 임에 생각이 또 다시 나네.
모묘무뮤 모지도다 모지도다 한양의 낭군이 모지도다.
바뱌버벼 밥을 먹자 허였더니 님 생각에 목이 메여서 못 먹겄네.
보뵤부뷰 보고지고 보고지고 한양의 낭군을 보고지고
사샤서셔 사신행차 나쁜 질이 중화참이 늦어졌네.
소쇼수슈 소슬 단풍 찬바람에 울고 가는 저 기러기 이내 소식을 전코 가소.
아야어여 아가 담쑥 안었던 손이 인정 없이 멀어지네.
오요우유 오동곳간에 거문고를 새 줄 매어서 타노나니
백학이 벌떡 진작허고8) 우쭐우쭐이 춤을 춘다.
자쟈저져 자주종종 오시던 님 소식조차 돈절허네.
조죠주쥬 조별낭군이 내 낭군인디 편지조차 아니 오네.
차챠처쳐 차라리 이내몸이 죽었더면 이런 꼴을 아니 볼걸.
초쵸추츄 초당 안에 깊이든 잠 학의 소래 놀래 깼네.
그 학 소리는 간 곳이 없고 흐르나니 물소래라9).
카캬커켜 용전도10) 드는 칼로 요내 목을 비어주오.
코쿄쿠큐 클클이 슬픈 한을 그 누래서 알아주나.
타탸터텨 타도타도 월타도에 그 누구를 바래고 내가 여그11)를 왔는가.
토툐투튜 토지지신12)이 감동하야 임을 보게 와주오.
파퍄퍼펴 파요파요 보고 어요13) 임의 화용을 보고 어요.
포표푸퓨 폭포수 흐르난 물에 풍덩 빠져 죽어나볼까.
하햐허혀 한양낭군이 내 낭군인디 어이하여서 못 오시요.
호효후휴 호헙허게14) 먹은 마음 단 사흘이 못다 돼서 임에 생각이 또 다시 나네.
한글을 배우던 시기가 늦어도 처녀 시절 이전일 것으로 추정한다면 이 노래로 글자를 배우던 대상의 연령층은 지금의 숫자 송 세대나 얼추 비슷하지 않았을까. 아이들이 사랑을 주제로 노래를 하고 있으며 사랑을 노래하는 방식이 어른들 뺨치듯 구체적이고 사실적이라는 점에서 두 노래는 비슷한 정도로 파격적이고 흥미롭다.
기억 사이에 집을 짓고 지긋지긋할 정도로 오래 살자던 태도나, 일초라도 떨어질 수 없이 온통 서로 따뜻하고 행복한 사랑을 나누며 십 년이 지나도록 사랑하자는 태도는 서로 다를 바가 없다. 문제는, 한 편은 육십 억 사람 가운데 만난 행운 같은 사랑을 달콤하게 즐기며 살아가는 행복한 정서와 발랄한 리듬으로 일관되어 있는 반면, 감감 무소식인 낭군을 처절하게 기다리다가 지치고 지쳐서 차라리 잘 드는 칼로 자신의 목을 베어 달라고 말하며 폭포수에 몸을 던져 처절한 기다림의 고통을 잊어나 버리겠다는 슬프고 고통스러운 사랑의 애절함이 심각하게 서로 대조를 이룬다는 점이다.
보통 우리의 전통적인 정서를 한의 정서라고 말한다. 이것은 곧 죽음과도 같은 절망과 슬픔을 끝끝내 견디며 원망스러움과 그리움이 가슴에 앙금으로 갈아 앉히며 살아가는 태도를 말하며 글자 송에서의 정서 또한 죽을 듯이 절망하면서도 사흘도 못 되어서 다시 임 생각을 한다는 점에서 그와 같다. 우리는 보통 사랑은 자신을 희생할수록 아름답다고 여겼으며 오래 기다려 간절해진 사랑의 깊이를 사모하며 자라났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자신의 삶 전체를 걸고 애끓게 그리워하며 평생을 한 사랑으로 일관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겨왔다. 핸드폰과 컴퓨터가 생겨서 통신이 자유로워진 세대들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잠시라도 기다리게 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태도거나 변심의 징표다. 천년의 방언과 문화도 그리고 그 정서도 이제는 매스미디어로 무장한 신인류가 외치는 ‘이야이야이야’ 소리에 떠밀려 레테의 강을 건너가야 하는 것이리라. | 언어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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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노래는, 군산시 소룡동 수심양로원에서 원광대 박순호 선생이 김순엽 할머니(1982년 조사 당시 74세)로부터 녹취하여 한국구비문학대계 5-4에 채록해 놓은 것이다. 이 책에서 이 노래의 제목은 언문풀이로 되어 있다.
2. ‘사이다’는 ‘사이에다’의 구어적 표현
3. ‘드락’은 표준어 ‘도록’에 대응하는 방언형이며 ‘저물도록’에 대응하는 ‘점드락’이 우리 고장 말에서 부사로 굳어져 재미있게 쓰이고 있다.
4. ‘거지’는 ‘거처(居處)’ 혹은 ‘거처지(居處地)’의 의미를 가진 한자어.
5. 우리 지역에서 ‘되-’는 ‘아, 오’와 함께 양성모음으로 기능하여 어미가 ‘-아’가 결합되는 게 보통이었다.
6. 이 지역에서는 ‘구원(救援)하다’를 보통 ‘병구완, 병구완하다’로 써 왔다.
7. ‘구원할 방법이 없네’의 의미
8. 진작(振作)하다 : 떨쳐 일어나다.
9. ‘물소리로구나’의 방언형.
10. 용전도(勇戰刀): 용감하게 싸우는 용사들의 칼.
11. 이전 시기 ‘여기’는 ‘여긔’였는데 ‘긔’의 ‘ㅢ’가 중부지역에서는 ‘ㅣ’로 우리 지역에서는 ‘ㅡ’로 변화해 왔다.
12. 토지지신(土地之神)
13. 원본에는 ‘싶어요’로 되어 있는 것을 필자가 의도적으로 방언형 ‘ ’윤색하였다. ‘ 다’형은 의도 혹은 목적을 나타내는 ‘-고자’의 ‘-자’와 ‘싶-’의 ‘ㅍ’이 섞여서 만들어진 혼효어의 일종이다.
14. 호협(豪俠)하게 : 호방하고 의협심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