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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 |
안이영노의 문화비평 - 전통이 미래다
관리자(2005-11-12 14:51:02)
왜 현대인들은 전통으로 미래를 빚는가 21세기에 이르러 현대인들이 전통문화를 주목하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각박한 시대가 될 수록, 빠른 것을 추구하는 시절이 될 수록, 사람들은 정서적인 위로를 원하기 때문이다. 전통문화는 조상님의 이야기이자, 지혜로운 어머니의 숨결, 모든 답을 알고 계셨던 돌아가신 할머니의 편안함이다. 조상님은 어떤 존재인가, 살아계시다면 내 삶의 스타일을 받아들일 리 없고 나 역시 그 당시의 가치관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조상님의 이야기는 왠지 삶의 지혜를 품은 것 같고, 조상님의 숨결이 닿아있는 생활기기며 예술작품은 한번 더 나자신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의지할 만한 믿음이 된다. 따라서 현대인들은 전통으로 미래를 빚기를 원한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고 했다. 첨단기술과 차가운 미디어가 범람할수록, 사람들은 이른바 고감성의 것을 가치있는 문화로 여긴다. 기술조차 고감도의 것으로 첨단화하는 시대에, 당연히 감성을 자극하고 나의 세밀한 정서까지 사려해주는 문화적 서비스는 희소가치가 높다. 문화상품도 디지털이든 아날로그든 감성적인 것일수록, 작고 섬세한 감정을 자극하면서 ‘맞다 내 마음이 그래’, ‘딱 내 이야기네’ 하는 것일수록 비싸고 귀해진다. 광고며, 영화의 주제, 카페의 서비스와 호텔, 심지어는 자동차의 디자인과 인터넷까지 그럴진대, 다소 낡았지만 있는 그대로 우리 가슴에 전달되던 고루하면서도 털털한 생활의 흔적이나 옛 예술작품은 어찌할까. 회색 콩크리트와 반짝이는 디지털화면 사이로 사막같던 내 마음에 물줄기라 여긴다. 존 네이스비트가 말 한 그대로, 이제는 ‘하이테크(hi-tech)가 아니라 하이터치(hi-touch)’다. 전통문화는 현대인에게 골동품이나 교훈서가 아니라, 고귀한 영혼의 샘이 될 수 있는 게다. 전통은 낡은 것이지만 버릴 것이 아니다. 늙은 존재일수록 존중할 지혜가 묻어나는 법- 인류 보편의 가족사 교훈처럼 전통 속에는 그 시대의 문제해결을 엿보며 오늘날에 비유하는 지혜가 숨어있다. 전통이라고 부르는 삶의 흔적들은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느 시대의 것이든 간에, 오래된 것이기에 진부하기도 하지만 풍성해 보인다. 또 전통은 절대 하나로 통합될 수 없는 질문을 던진다. 답이 나오지는 않지만 그 질문을 화두로 가짐으로써, 우리들이 서로를 돌아보고 가족과 씨족, 부족, 그리고 민족을 챙기는 공동체적 존재로 잠시라도 생각하게끔 만든다. 전통은 우리가 누구냐, 물음을 던지는데, 이것은 시대에 따라 변경과 국경, 핏줄조차 뒤섞였던 대부분의 문명들에게 있어 그리 답이 쉽지 않은 질문이다. 민족이 ‘상상의 공동체’라고 했듯, 우리는 우리 민족이 거기서 지금 여기까지다, 하고 묶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은 자라나는 아기들에게까지 충분히 의미가 있다. 우리가 나 자신을 넘어 가족을 돌아보면서 생존과 번영을 더 잘 도모하기 때문. 이렇게 바라보는 전통을 탐미하고 추적하는 것은  한마디로, '옛것이라기보다 우리 것'을 알아가는 게다. 현재를 전통으로 가꾸는 지혜도 있어야 한다 현대인들은 수많은 정보 속에서 산다. 미디어의 물결을 보라. 우리들이 갈 길을 제시하기 위해 쏟아져오는 정보의 홍수는, 우리가 갈 곳이 어딘지, 또 내 거처가 어디였는지 혼돈스럽게 만든다. 정보들은 당장의 안위, 생활의 편익, 차별없이 누구나 얻을 수 있는 지식, 나를 키우는 학습 등을 뜻한다. 하지만 정보들이 손을 내밀 때, 하나같이 우리는 비싼 정보, 돈으로 환원되는 정보, 누구나 쓰기를 원하는 ‘잘 나가는’ 정보들이다. 예쁜 치장을 한 이런 정보들 사이에서 우리는 숨돌릴 곳을 찾는다. 전통을 돌아보는 길은, 현대인이 쓰는 배움과 정보가 모두 더 많은 비교를 요하는 불완전한 것임을 인정하는 길 아닌가. 현대인들에게 전통을 알고 음미하는 일은 정보의 물결 속에서 대안적인 삶,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보는 더 잘 사는 지혜를 주는 책 구실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오늘날 전통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는 이유에 대해 범인들은 말한다, 전통문화야말로 경쟁력 있는 산업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현대인이 전통을 사랑하고 주목하게 됨으로써 빚어낼 하나의 결과지, 우리가 전통을 음미하고 되돌아보는 이유 그 자체는 아니다. 혹자는 전통이 희소가치가 있기 때문에 관심을 갖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골동품상이 아닌 한, 단순히 시장가치 때문에 전통문화와 조상의 숨결을 사랑하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 그 사람의 직업이나 사업적 관심이 그렇다 할지라도, 그것만으로는 자신의 마음이 내키지 않는 것이 이치다. 전통문화는 문화재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지혜와 기술로 전수되어 현대의 후손에게까지 이르러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무형문화의 가치든, 우리가 보지 못 했던 과거의 것을 형상화하는 문화원형이든 간에 전통문화는 박제처럼 그 자리에 꽂힌듯 아프게 놓여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를 야단치듯 조상님의 준엄하게 부릅뜬 눈으로 우리를 지켜보는 것도 아니듯 말이다. 전통문화는 우리 모두가 마음 속에서 다 알 듯, 오늘날에도 쓰이거나 쓰일 준비를 하거나 쓰일 가능성이 있는 무엇이다. 전해 내려온 것 중에 일부는 지금 우리의 삶에 맞지 않아 할아버지의 사진이 들어있는 앨범과 함께 장 속 깊이 들어가지만, 그것 역시 우리는 버리지 않고 가지고 이사들을 다니지 않는가. 전해 내려오는 것 중에 일부는 우리의 삶에 유머러스하게 맞추어져 계속 쓰인다. 비닐우산이나 배삼룡의 코미디나 번데기, 그리고 요강처럼 이러한 전통은 조금은 낡은 듯 하지만 우리 옆에서 천연덕스럽게 웃고 있다. 할아버지의 웃음처럼 웃는 것이다. 이렇게 전통문화는 우리가 선택하여 여전히 쓰는 것이다. 공예의 도시를 표방하는 청주에서는 공예를 우리를 유혹하는 것으로 정의내리기도 하고, 쓰임의 미학이라고도 한다. 좋은 전통문화 역시 그런 것이다. 벽에 거는 어려운 예술이 아니라 실용적인 아름다움, 그것이 전하여 지금도 통하는 것, 우리의 관습과 습관 속에 아직도 중요한 윗목을 차지하는 전통문화다. 전통문화는 거칠고 소박한 것이 많지만, 정교하고 고급스러운 것도 많다. 우리가 그것을 존중하는 순간, 그것은 요즘 젊은이들 말대로 ‘럭저리(luxury)'하고 ’엘레강스(elegance)‘가 된다. 하지만 그것은 부릅뜬 조상의 눈도, 아프게 못 밖힌 박물관의 도자기도 아니다. 작고 소박하지만 고귀한 도시 전주에서 한옥마을이 연극무대 같은 관광촌이기보다는 삶의 터전이라 놀랍기 그지없듯, 좋은 전통문화는 지금 당장 쉽게 쓰기에는 불편해도 여전히 현대적 삶에서 사라지기 아까운 좋은 삶(well-being)이요, 복지(welfare)의 상징이 된다, 그리고 100층짜리 빌딩의 숲에 사는 아이들과 또다른 의미로, 유적의 기왓장이나 희소 고귀한 한옥을 구름처럼 쉽게 보는 동네에 사는 아이들은 촌놈이 아니라 첨단이 될지이다. 잘 생각해보면 현재를 전통으로 가꾸는 지혜가, 그래서 필요하다. 지혜로운 조상님의 지혜로운 후손이라면 동시대 역시 첨단의 초현대가 아니라 어느날 우리들의 사랑스러운 아이들의 전통으로 ‘전락’해버릴 낡고 품위 있는 지혜라는 점을 앞서 알아야 한다. 전통으로 미래를 짓는다고 말하자. 과거에 미래로 갈 지혜가 있다. 하지만, 더불어 현재의 가치있는 생활문화 역시 덜 떨어진 것, 젊고 건방진 것, 세태에 물든 것, 불가피한 불행(ill-being)의 것만은 아니다. 조금만 앞서 살자, 자식들을 위해 문화의 보험을 들어두자. 현재의 가치있는 생활문화를 보존하고 채취하는 노하우를 갖지 않는다면, 옛것을 발굴하고 복원만 하는 지식만으로는 미래를 물려줄 수 없다. 전통으로 미래를 지으려는 전주사람들일수록, 한옥마을이 아니라 ·1960년대 건물이 조화를 이룬 지금의 전주동네를 사랑해야 한다. 한복은 누구나 입지만 1960년대는 점점 아쉬워질 것이다. 내가 걷어찬 오늘의 플라스틱조각 역시 조상의 삶의 편린, 생활의 지혜가 될 것이므로 지금 우리들 것 중에서 무엇을 키우고 무엇을 다듬고 무엇을 잘 남길지, 정갈하게 고르자. 미래의 트렌드를 읽는 사람이라면 모를 리 없다, 전통이 살아가는 시간 고리의 섭리를. (기분좋은트렌드하우스 QX 대표, 한겨레문화기획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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