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1 |
듣는 예술이 보이는 예술로
관리자(2005-11-12 14:46:16)
글 | 심홍섭 전북도립국악원 공연기획실
2005 문화의 달 행사를 치르는 전주는 분주한 10월을 보냈다. “전통이 미래다”라는 주제와 함께 10월 13일부터 15일까지 경기전 및 전주시내는 여러 행사들이 가득했다. 그 하나의 일원으로 ‘미술로 보는 판소리 다섯 바탕’이 경기전에 자리를 잡았다. 이번 전시회는 ‘음악’적 요소로만 가능하던 판소리를 대중적 이해와 접근을 돕는 ‘미술’적 형식으로 해석하고자 기획되었다.
음악은 ‘음을 재료로 해서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는 시간적 예술’ 이라고 정의한다면 미술은 ‘공간 및 시각의 미를 표현하는 예술’이라 정의 할 수 있다. 판소리는 시간적인 음악예술로, 소리꾼과 고수 그리고 청중이 함께 호흡하는 현장성이 강하고 진한 음악이다. 이러한 음악적 요소의 판소리가 청각이 아닌 시각적인 미술이라는 예술장르로 해석이 된다면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 것인가 궁금증을 포함한 여러 생각들을 품고 경기전을 찾았다.
판소리의 미술적 접근을 생각하면서 헌종 때 평양감사의 초청을 받아 연광정(練光亭)에서 소리하는 모습을 담은 명창 모흥갑의 풍속도를 떠 올려 본다. 판소리관련 홍보물에 많이 삽입되기도 하는 모흥갑의 풍속도는 판소리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고마움을 느낄 정도로 당시의 공연모습을 생생하게 기록해 주고 있다. 나는 이 시대의 또 다른 모흥갑을 만날 수 있을까?
경기전 내에 자리잡은 이번 전시회는 전북지역 미술가들이 준비한 회화, 조각, 영상, 설치 등 다양한 기법의 시각이미지를 보여주는 자리이다. 나는 경기전을 들어서서 낮은 담 너머로 보이는 미술품이 있는 곳으로 기대에 찬 발걸음을 옮겼다. 넓은 뜨락에 세워진 조형물을 비롯해 벽에 걸려있는 회화작품, 그리고 한옥 안에 설치된 여러 작품들을 보면서 많은 작가들이 판소리라는 소리예술인 음악장르를 그림판 위에 붓으로써 표현을 한다는 것이 쉽진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작품 하나하나를 스치며 지나칠 때 마다 작가들의 많은 애정과 노력을 엿보는 듯하였다.
경기전의 작품들은 작가가 소리꾼이 되어 각자의 해석으로 판소리 한 대목씩을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판소리 다섯 바탕(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의 소리가 목소리가 아닌 손에 쥔 붓으로 작가 자신의 색을 담은 소리를 여기저기서 부르고 있는 것이다. 작가들은 춘향가의 사랑가 대목과 적벽가의 적벽대전, 흥보가의 박타는 대목 등 모두 판소리의 눈 대목이라 할 만한 한 부분들을 회화, 조각, 판화 등으로 묘사하고 있었다.
춘향이의 눈물너머로 이 도령이 말을 타고 떠가가는 모습의 춘향가와 치열한 전쟁을 연상케 하는 붉은 색감위의 많은 새(죽은 병사들의 영혼을 표현한 듯)들을 그려 넣은 유화 적벽대전, 목판으로 제작된 인당수에서 연꽃을 건지는 것을 표현한 심청가가 인상적이다. 다양하게 표현된 여러 작품들은 판소리를 듣는 일반 사람들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상황이나 상상, 느낌들을 작가의 예술적인 색감과 창의적 발상, 표현력으로 대신 옮겨 그려놓은 것과 같았다.
판소리는 창과 아니리, 발림으로 창자가 전하는 이야기이다. 판소리 창본을 음의 높낮이 없이 읽어내면 하나의 소설이 된다. 다섯바탕 모두 고전소설로 판소리가 만들어 지기 이전부터 잘 다듬어지고 사랑받았던 소재들로 구성된 이야기인 것이다. 전시된 작품들은 모두 판소리를 표현하고는 있지만 고전소설이나 전래 동화의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번 전시회의 소개하는 팜플렛 내용에 “판소리 다섯 바탕(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 내용을 다양한 기법으로 표현하는 전북지역 미술가들의 공동전시회”라 적혀 있다. 판소리의 형태가 소재가 되어 만들어진 작품들도 있지만 대부분 판소리 사설을 옮겨놓은 작품들이 많았다.
기획의도에서 ‘판소리’라고 말하는 부분이 판을 구성하는 형태인지? 아니면 전래 동화 같은 이야기를 취하는 것인지? 의문을 가져본다. 분명 판소리는 이야기를 전하는 하나의 표현일수도 있지만 소리꾼, 고수, 청중이 하나가 되는 흥겨운 판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미술로 보는 판소리”의 아쉬운 점은 사람들과의 즉흥적 대화가 없다는 것이다. 판소리 공연처럼 소리꾼의 재담에 바로 대답하는 관객들의 참여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청중은 중요한 판의 구성요소이다. 판소리의 현장성 또한 청중의 추임새에게 나오는 것이다. 판소리다운 전시회는 분명 관람하는 관객들이 목소리를 어떻게 모아서 더 흥겨운 판을 만들 수 있느냐를 생각할 때 더 좋은 기획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전통 문화유산과 예술의 현대적 계승과 발전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다양한 예술장르의 교류와 통합으로 새로운 문화감성을 개발하는 이번 전시회에서 전주가 가지고 있는 무한한 창의력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경기전의 가을은 소리작품들과 함께 더욱 넉넉하게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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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홍섭 | 전북대학교 한국음악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을 수료했다. 현재 전북도립국악원 공연기획실에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