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1 |
2005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에 대한 소고(小考)
관리자(2005-11-12 14:44:30)
현재 예향(藝鄕의) 도시 전주에서는 다양한 문화 행사들이 열리고 있다. 이 문화 행사들 중 <2005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는 2005년 10월 1일부터 31일까지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전북도립미술관, 전북예술회관, 국립전주박물관 등 전주 지역을 대표하는 대형 문화 공간에서 관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전라북도가 주최하고 사단법인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조직위원회가 주관하고 있는 <2005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는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전북 서예의 전통을 계승 발전시켜 아시아뿐만이 아니라 세계 서예 예술 창조의 중심지로서, 그리고 현대예술 속에서 서예의 발전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다양한 서예 예술세계를 대중들에게 직접 선보임으로써 대중들에게 보다 친근하고 가깝게 다가서면서 아울러 서예에 대한 대중들의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도모하고자 기획된 것이다. 올해로 벌써 5회째. 10년이라는 긴 시간이 공들여졌다. ‘만남’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열리고 있는 이번 <2005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에서 표방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경계 허물기’를 통한 ‘서예의 세계화’와 ‘서예의 대중화’이다. ‘문자 회화전’, ‘문자 입체 조형전’, ‘서예술(書藝術)의 실용화전’, ‘문자 영상전’ 등에서 엿볼 수 있는 것처럼, 서예도 다른 장르의 다양한 예술들과 만남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예술로 탈바꿈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현대 예술에서는 예술장르가 서로 구분될 수는 있지만 결국에는 서로 경계 지을 필요가 없는 하나의 예술임을 보여주고 있고 이것은 작품과 관객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본 소고에서 필자는 작품들에 대한 개별적인 의미 분석이나 평가보다는 전시 자체에 대한 전반적인 느낌과 성과 및 문제점을 피력해보고자 한다.
먼저 <2005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의 기획의도에 대하여 살펴보자. 필자가 서두에서 이미 언급했던 것처럼, 이번 <2005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에서 의도하였던 것은 바로 다양한 ‘만남’을 통한 ‘경계 허물기’였다. 뫼비우스 띠에서 안과 밖, 시작과 끝의 이분법적 경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뫼비우스 띠에서 안은 밖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밖이 안이 될 수도 있다. 시작과 끝도 마찬가지이다. 마찬가지로 서로 다른 영역으로 여겨져 왔던 음악과 미술, 문학, 춤, 연극, 마임 등은 예술 혹은 삶이라는 커다란 만남에 의해 그 경계가 허물어지게 된다. 서로의 감성을 넘나들며 음악이 춤이 되고 연극이 삶이 되고, 삶이 예술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현대예술에서는 모든 예술이 그 경계가 허물어져 총체예술(Total Art)의 형태를 지향하고 있다. 서예 또한 마찬가지이다. <2005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에서는 ‘실용화전’, ‘문자를 위한 축제’, ‘서화 동행전’, ‘문자 회화전’, ‘문자 입체 조형전’, ‘주제가 있는 병풍전’, ‘아름다운 한국전’, ‘ 명사 서예전’, ‘깃발 서예전’ 등 전통 서예와 현대 서예, 서예와 회화, 서예와 입체조각, 서예와 영상 등 ‘만남’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서로 어우러지는 장(場)을 마련하려고 시도한 기획자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2005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가 의도했던 것이 ‘만남을 통한 경계 허물기’였다면 필자는 이번 비엔날레가 전반적으로는 성공적이고 고무적이었다는 평가를 하고 싶다. 특히 작품과 관객과의 거리를 좁히고 관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하여 마련된 각종 체험 프로그램과 ‘국제서예학술대회’, ‘동아시아 문화포럼’ 등이 좋은 사례들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몇몇 미흡했던 측면들이 엿보이는 것은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는다. 먼저 이번 비엔날레는 외형적으로 기획전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만남들이 성공적으로 시도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전시의 질적인 부분을 들여다보면, 앞에서 열거했던 대부분의 기획전들이 여전히 서예와 이미 깊이 연결되어 있었던 혹은 연결되고 있는 장르에만 국한되어 있었고 몇몇 기획전은 비슷한 규모의 다른 전시와 비교해 볼 때 질(質)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마치 ‘맛 뵈기’만을 보여주고 있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예술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와의 만남, ‘세계서예비엔날레’라는 타이틀에 부합하는 조금 더 진보적이고 실험적인 전시 방식은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필자가 무엇보다도 이번 <2005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에서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턱없이 부족한 예산과 지역축제로서의 한계를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산의 부족은 작품과 작가의 선정, 프로그램의 기획 및 홍보 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현장에서 전시기획자로 일하고 있는 필자는 예산의 중요성을 어느 누구보다도 절실히 알고 있다. 벌써 5회째, 10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서예비엔날레 조직위원회 사무실이나 상설 전시관이 없다는 것은 역으로 <2005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의 정체성을 뒤흔들 정도로 심각한 문제이다. <2005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는 일회성 행사나 단기성 행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 옆 동네인 광주의 <광주비엔날레>와 자꾸만 비교되는 것은 필자만의 편협한 생각일까? 어쨌든 기획자는 정해진 예산 안에서 가능한 최선의 프로그램과 최선의 방법을 고민하였을 것이다. 예산의 부족이라는 악재는 설상가상으로 홍보적인 면에서 많은 문제점들을 양산하였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이번 <2005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가 수준 높은 전시였음에도 불구하고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의 적극적인 관심이나 각종 언론매체에서 집중적으로 다루어지지 못했던 주요 원인이 되었다. 실제로 타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전주에서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다. <2005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는 행사를 주최하고 주관하는 전라북도 시민들과 이에 초대된 몇몇 작가들만의 축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 벌써 5회째인데도 여전히 전북도민들만의 축제로 끝난다면 그동안 공들인 시간과 노력이 너무 허무하지 않은가!
필자가 이처럼 <2005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의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조목조목 지적하는 것은 <2005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를 폄하해서 평가하거나 비하하기 위한 것이 절대로 아님을 밝혀두고 싶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필자의 고향은 전주이다. 부모님들도 여전히 전주에서 생활하고 계시기 때문에 전주에 대한 필자의 깊은 애정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10월 문화의 달 행사의 일환으로 국립전주박물관에서 열렸던 <광복60주년 기념 평화와 통일 염원전: 베를린에서 DMZ까지>를 직접 진행하면서 <2005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가 좀더 발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좋은 비엔날레로 거듭날 수 있도록 바라는 마음과 그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23개국 3,000여명의 작가들이 참여해서 만들어진 <2005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는 많은 사람들의 적극적인 후원과 노력 그리고 성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현대예술의 흐름 속에서 그 흐름에 맞게 발 빠르게 대응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필자가 생각할 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만의 차별성, 즉 정체성을 확립하고 지켜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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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호 |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갤러리 이즘 큐레이터, 예화랑 수석 큐레이터, 갤러리 세줄 수석 큐레이터, 종이미술박물관 수석 큐레이터 등으로 일했다. 현재 ‘2005서계박물관문화관람회’ 총감독, 사단법인 문화우리 운영위원, 한국미술평론가협회 회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