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1 |
뜨락음악회에 대한 몇 개의 단상
관리자(2005-11-12 14:42:21)
글 | 장춘실 (진안 부귀중 교사)
-뜨락음악회! 꼭 참석해주세요.
-전주 박물관
-10월 7일(금) 7시
핸드폰의 문자메시지를 확인하는 순간에도 비는 내리고 있었다. 아니 죽죽 쏟아졌다.
‘오늘 잔치는 글렀나보다. 여태 문화저널 행사에 날씨 하나는 맞춤이었는데… 딱 당해서 장소를 옮길 수도 없을 테고, 일 났네.’
쉬는 시간마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굵어지는 빗줄기에 운동장 여기저기 물이 고여 있다. 에이 참, 이번 비는 백해무익이다. 정수리가 벗겨질 만큼 쨍쨍해야 알곡이 여물고 과실도 단맛이 날 걸. 더구나 야외행사는 어쩌라고 하루만 참아주시지. 하필 오늘이야… 걱정깨나 하다가 이리저리 알아본다.
-어이, 오늘 음악회 어쩐대?
-한다네요.
-비는 어쩌고?
-걱정 말고 오시라 연락 왔어요.
그 날 밤, 음악회는 조촐했다. 서늘한 달빛은 없었어도 소슬한 가을밤의 정취는 그만이었다. 무대를 장식한 가을꽃과 갈대들이 분우기를 띄우고 조명은 은근해서 더욱 좋았다. 천막무대에서 연주하고 노래한 출연자들은 진짜 조촐했다. 저녁도 굶은 채 박수치고 앵콜을 외쳐댄 천막객석의 청중들 역시 조촐했다. 모처럼 차려입은 정장이 비에 젖는 것도 모른 책임감 센 사회자도 조촐했다. 그 넓은 무대와 객석을 깨끗하고 정갈한 천막으로 잘 가려놓아 질척거리리지 않고 보송보송한 상태를 유지한 주최측도 참 조촐했다. 모든 것이 다 조촐했다.
*조촐하다-(형용사) ㈀ 아주 아담하고 깨끗하다. ㈁ 행동이 난잡하지 않고 단정하다.
그 날 밤 음악회는 웅숭깊었다.
광복 60주년 기념,
문화저널 창간 18주년 기념,
평화와 통일을 부르는 가을날의 뜨락음악회!
문화저널이 기획하는 행사는 의미심장하다. 의미심장하다 못해 무게와 깊이가 지나칠 정도이다. 살펴보면 허투루 하는 말이 적고 냅뛰는 일이 없다. 무언가 커다랗고 넓으며 묵직한 무게감이 실려 있다. 당장은 그 성과가 겉으로 또렷하지 않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쌓여가는 것이 만만치 않다. 100회가 넘은 <백제기행>이 그렇고, 10년을 넘어 계속되는 <전라도의 춤, 전라도의 가락>이 또한 그러하다. <뜨락음악회> 역시 10여회를 채우는 동안 지역의 연주자와 우리음악을 소개하고 퍼뜨렸다. 물론 우리음악만 알린 것은 아니지만 주로 이 지역의 소장 연주자들을 초청하고 북돋아줌으로써 지역주민들과 함께 하는 예술로 기능하게 함은 주목할 만한 성과이다. 요번에 출연한 <플롯 앙상블 야시스>, <가야금 4중주단 정>, <전주남성합창단>, <대금 이항윤>, <테너 조창배 소프라노 고은영>도 이 지역문화를 이끌어 갈 음악인이다. 특히 <대금의 이항윤>과 비오시는 저녁 멋지게 차려입고 수십 명이 등장한 합창단의 잘 생긴 남성들은 단연 멋있었다. 웅숭깊지 않았더라면 쉽지 않은 일이다. 시간이 남아서나, 출연료가 만족스러운 것도 아닐 게다. 그저 문화저널이 한다니까, 벌써 10년을 끌고 오는 음악회라, 그것도 해마다 100여명의 후원자들의 성금이 주축된 시민을 위한 무료 음악회라니까 참여한 진정 웅숭깊은 이들이다. 준비한 이들이나 참여한 사람들 모두 매우 웅숭깊다. 정말 웅숭깊은 음악회였다.
*웅숭깊다-(형용사) ㉠ 도량이 크고 넓다. ㉡ 물건이 되바라지지 않고 깊숙하다. ㉢ 거죽에 또렷이 나타나지 않다.
그 날 밤 음악회는 어수룩했다. 어수룩하단 말은 칭찬이자 흉이다. 문화저널의 뜨락음악회는 숫되고 후하다. 객석이 차거나 비거나 불평 없이 끌고 오는 걸 보면 분명 어수룩하다. 한 번도 흑자 났단 소문을 못 들었건만 어김없이 가을이면 음악회를 연다. 후원금내라고 조르지도 않지만 크게 고맙단 말도 없다. 그저 덤덤하다. 때가 되면 알리고 주면 받는다. 별로 달라지지 않는 후원자 명단을 보면 딱 들어맞는다. 또한 되바라지지 아니하고 조금 어리석은 듯 하다란 측면 또한 어울리는 말이다. 해마다 같은 장소 같은 방식이다. 혹여 타성에 빠진 건 아닌지 염려스럽다. 원래 음악회란 게 별 뾰족한 방법이 없지 않느냐란 변명도 그럴 듯하지만 찾아보면 왜 없겠는가?
우선 장소가 너무 외지다. 넓고 쾌적한 박물관 뜨락은 더없이 멋지지만 접근성이 떨어진다. 퇴근 후 서둘러 와도 저녁 굶기 알맞다. 저녁식사 후 가족과 더불어 들를 만한 장소는 아니다. 시내 나왔다가 멋진 음악소리에 가던 길 멈추고 끼어드는 시민들까지 받아 줄 그런 장소는 어디 없을까?
또 한 가지는 변하지 않은 음악회의 스타일이다. 확 띄우거나 흥분할 만한 그 무언가가 없다. 안 오면 큰 손해를 보는 정말 아까운 프로그램은 아니란 뜻이다. 분위기가 좋았다 재미났다를 넘어 칭찬을 기대한다면 달라져 볼 일이다. 색깔이 분명한 개성 있는 음악회로 거듭날 방법을 모색했으면 싶다. 프로그램을 특성화하거나 청중을 구별해 보는 식으로 말이다. 가령 중고생만을 주 대상으로 삼거나, 시설아동들을 대거 초청하거나, 어느 지역의 주민들만을 특별 초정하는 방식, 아니면 찾아가는 음악회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 하여간 변화가 필요하단 생각이 내내 들었다.
*어리숙하다-(형용사) ㉠ 언행이 숫되고 후하다. ㉡ 되바라지지 않고 조금 어리석은 듯 하다.
뜨락음악회는 분명 문화저널의 중요한 사업이다. 그러나 해마다 해왔으니 올해도 해야 하는 연례행사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그저 후원자들과 문화저널의 구독자만을 위한 음악회가 아니라면 획기적인 방향전환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탄탄하면서도 기발한 형식에 알차고 신선한 내용으로 가득 찬 음악회. 한번 참여한 사람들이 입소문을 내고 다음을 기다리는 음악회. 무대와 객석이 하나 되어 가을밤을 열기로 데우는 뜨락음악회를 상상하며 진정 전주시민의 뜨거운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음악회로 거듭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