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1 |
[자치잔체의 문화와 전략 | 장수] “도깨비 잔치를 벌려보자”
관리자(2005-11-12 14:38:20)
글 | 고태봉 장안문화예술촌 촌장
장수에서는 매년 여름 도깨비축제가 열린다. 비록 타 축제에 비해 예산도 쥐꼬리만 하고 작은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평가단이라는 대학교수 누구누구나 여타 문화예술에 관련된 소위 이름깨나 있는 사람들에게는 돈 안 나오니 관심이 없는 행사이긴 하지만 농사일 거들며 어려운 처지에 치루는 우리끼리에게는 그저 성은이 망극할 일이다.
농작물 중에서 도깨비는 메밀을 좋아한다. 메밀은 7~10월에 하얀 꽃이 피는 한해살이 풀이다. 주식은 아니지만 가뭄에도 강하고 생육기간이 짧아 보릿고개를 같이 하기에 좋은 곡식이었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 농사짓기도 유리해서 서민들의 친근한 양식이 되었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사람들의 생각과 생활양식도 많이 변했다. 20~30년 전만해도 직접 경험한 실제 이야기들이 까마득한 옛날이야기로 바뀌었다. 먹고살기도 우선해지고 생활도 편리해 졌으며 동동 겨울에도 얼음 깨고 빨래하던 시절에 비하면 특히 여자들의 일거리가 많이 편해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요즘의 생활이 부럽지가 않다. 오히려 옛날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이상하다. 막내딸도 가끔 옛날에서 살고 싶단다. 우리가족만이 느끼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기야 욕심 부려 가졌어도 그 욕심 때문에 더 욕심을 부려야 하는 현실과 복잡해진 것이 많은 만큼 이상 현상이 자꾸 일어나니 틀린 말이 아니지만 돈 벌어야 해결된다는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현실도피적일 수도 있다.
도깨비 축제는 농촌에 남아있는 한국의 정신문화적인 뿌리에 배경을 두고 문화산업적인 목표를 가지고 출발한 축제이다. 따라서 한국의 독특한 문화적 성격을 도깨비라는 주제를 가지고 풀어야 하며 축제가 반복 될수록 연극, 영화, 춤, 문학, 문자예술 등 다양한 측면에서 공연, 체험, 전시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행위들이 한국 및 세계무대에서 맹위를 떨침으로서 부가가치와 연계되어야 하고 결국은 다양한 형태로 지역의 부가가치와 연계를 가져야 한다. ‘장안산 도깨비 축제’가 가지는 의미와 배경, 행위 등을 두고 그 가치를 분석하여 전체 전략을 이해하여 보자.
도깨비는 그 실체를 알 수 없고 형상도 없으며 어디서 유래되었는지도 정확히 알 수 없으나 2~30년 전만 해도 우리의 생활 속에 흔히 존재했던, 없지만 있는 정신체이며 사실체이다. 도깨비에 대한 이야기도 매우 많아 여기에서 언급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지만 한단고기의 ‘치우는 처음으로 갑옷과 투구를 만들었는데……’라는 기록에서 도깨비의 유래를 찾는 것이 가장 지배적이다.
이러한 역사와 함께 더욱 관심이 가는 것은 건국이념인 홍익사상이다. 홍익은 인간을 이롭게 하고자 하는 깨달음의 문화이기도 하지만, 현대적인 개념에서는 세계평화사상과도 같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세계평화 활동에는 누구나 일반적 보편성을 인식하게 하면서 우리만이 가질 수 있는 자긍심의 역사로 활용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동시에 존재한다. 중국의 고구려 역사 왜곡과 일본의 독도 영유권, 가야문화역사의 왜곡 등에 비하면 우리는 우리의 기록을 가지고도 우리의 것을 찾지 못하는 너무나 안타까운 현실에 처해 있다. 우리의 전통문화를 통해서 도깨비라는 소재를 응용하면 서양의 “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 등을 능가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산업적 가치들을 생산할 수 있는 것이니 가벼이 취급 할 수 없다. 우리나라가 가진 가장 뿌리 깊은 사상은 “천부경”에서 이야기하는 천지인사상이다. 훈민정음도 천지인사상으로 만들어 졌다. 사상과 철학이 우수한 것은 정신문화를 연구하는 사람들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도깨비 제사를 지낼 때 메밀을 사용하는 것에서 이미 서민의 의식에 어떠한 형태로든 크게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삼신할매, 삼재, 삼족오 등과 함께 만인의 생활 속에 깊숙이 배여 있는 사실들이지만 다만 현대에 응용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장수의 대성리라는 곳에서는 50여 년째 도깨비 제사를 지내오고 있다. 축제가 펼쳐지는 장안골에도 서당도깨비, 부자를 만들어 준 도깨비, 홀리는 도깨비 등의 숱한 이야기들이 민간신앙과 함께 전해 오고 있다. 도깨비는 변신의 귀재이며, 복을 가져다주고, 종종 장난으로 해를 주기도 하지만 인간과 절친하기 때문에 문화?예술적 활용가치가 대단히 높다. 축제를 통해서 더욱 반가운 것은 지역의 동네 여러분들이 희망을 갖고 스스로 키워가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은 미흡한 점이 많지만 농촌과 농업에 대한 새로운 전략 전술의 적용이 시작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준비가 되어 있는 곳에 투자가 선행되기를 바라고 있지만 아직은 성숙하지 못한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것은 비단 지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장수는 물론 전라북도, 우리나라가 문화적인 요소를 가지고 발전할 수 있는 길은 매우 가까이 있다.
우리나라가 5천년의 역사를 가졌다고 얘기들을 하지만 5천 년 전에 살아본 사람도 없고 녹음된 것도 없으니 단지 기록되거나 증명할 만한 가치들을 주섬주섬 모아서 결론을 내릴 뿐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 역사에 대한 소리들이 높다. 중국은 엄연히 존재하는 우리의 역사를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고, 일본은 가야역사를 비롯한 불고기 문화까지 지들(?) 문화라고 우겨대고 있는 상황이니 정말 심각하고도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한단고기, 부도지, 천지인 사상의 천부경 갑골문이 발견되었고 비파형동검 등 수많은 유물에 의하여 만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기록과 유물들이 숱하게 발견되었는데도 우리 것을 우리 것이라 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미국은 우리의 우방이긴 하지만 세계의 강국으로서 기침만 해도 감기가 들 정도이니 어디 해볼 테면 해봐라! 라고 배짱을 부릴만한 힘과 묘수가 없다.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이미 비핵화 선언까지 해버렸으니 (안할 수도 없었겠지만) 똥배짱의 희망마저 없어졌다. 동북아의 중심 국가라는 말이 가엾게 들린다. 세상이 조금 편하게 살게 되었다고 해서 이렇게 버둥대며 돈, 명예, 출세, 진급, 아이들 교육, 이런 것에 전력을 투자하며 만족하는 것이 우리생활의 최선인 것일까? 국가가 건실하고 우리가 우리 안에서 자랑스러우며 세계적으로 일반적 보편성을 주장하고 살 수 있는 떳떳한 방법은 없는 것일까?
앞에서도 표현하였지만 우리의 건국이념은 홍익인간이다. 홍익사상은 이웃과 어울려 잘 살자는 것이니 우리만 잘 살 것이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와도 잘 살아야 하는, 유식하게 표현하면 ‘세계평화운동’이며 세계적으로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보편적 사상이다. 아울러 홍익사상은 천지인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으므로 철학적으로 접근하면 우주일체를 깨닫고자 하는 지극한 학문과 우주질서가 들어 있으니 이 얼마나 감동의 사상인가? 얼마나 좋았으면 (이치가 타당하면)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천지인 사상을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을까? 삼족오, 아리랑, 삼신할매, 삼신당(산신당), 굼실대며 는질거리는 태껸의 삼박자, 삼재, 등등 재미있고 활용할 만한 가치가 무한정 존재한다. 우리의 전북이, 장수가 세계평화를 목표로 두고 꿈을 펼칠 수는 없는 것일까?
인간의 문명에서 처음은 의사소통에 필요한 다양한 소리에 있었을 것으로 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만이 갖는 소리를 예술로 만들어 냈다. 좌도풍물이 그렇고 판소리가 그렇다. 그뿐이겠는가 만은 소리에서 발전한 것이 문자였을 것이고 우리는 이를 문자예술이라 한다. 문자에서 발전한 것이 문학이고 문학에서 발전한 것이 철학이나 종교로 진전되었거나 유사하게 발전하였을 것 같다. 어찌하였든 생각이 있으면 실천에 이르는 법, 우리의 생활에 녹아 있는 수많은 전통문화가 살아 있었는데 우리는 60년대 이후 산업화에 매달려 너무나 훌륭한 것들을 한꺼번에 잃었다. 전통문화가 중요한 것은 그 민족이나 국가가 가지는 자부심 내지는 정체성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며 일방적인 우파적, 민족적 자부심이 아니라 세계적인 일반적 보편성이 마련된 긍지심일 수 있기에 더욱 소중하다.
최근에 들어 우리는 우리의 것을 찾고자 하지만 우리의 전통문화는 그동안 현대화라는 개척적인 그늘에 가려 제대로 연구되어 있지 않아 객관적이거나 논리적인 근거를 갖추지 못하였다. 우리의 것을 독특한 유일의 문화로 가꾸면서 보편적 세계관에 접목하는 것은 우리의 국력으로 연결될 것이고 세계인의 긍정적 관심으로 유도하는 유일한 방법이기에 더욱 애절하며 깊이 있는 연구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생각이 부족한 한류문화는 생명력에 한계가 있음을 우려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내친김에 우리의 문화가 어떻게 연구되고 발전하면 정신문화로 승화되어 수출로 연결할 수 있을 것인가를 몇 가지 제안의 성격을 띠고 서술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농사는 천하의 근본이라 하였으므로 농사에 자연과 철학을 담는 기법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김치 등의 발효식품은 조류독감과 암에 효능이 있으므로 미생물을 활용하는 곳에 연구 투자를 해야 할 것이고 드넓은 호남평야는 약초를 활용한 의술과 함께 신약을 개발하는 농법에 치중해야하며 도시인은 생물공학 등과 함께 일자리를 창출하여 농촌으로 회귀해야할 것이고 삼신신앙과 함께 마을에 유래되는 여러 가지 설화와 음식 등은 도시인들을 끌어들여 우리의 정신을 설명하고 우리의 참생활을 제공하는 곳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며 이를 국제화할 수 있는 사전의 계획도 갖추어야 할 것이다. 말은 쉬운데 농촌을 이끌어 줄 수 있는 진정어린 생각과 사람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둘째, 재밌는 이야기로 풀어보고자 한다. 우리사회에 그림자의 하나인 성매매와 룸살롱의 문화는 서양문화의 성격이 많다. 우리문화에는 기생문화가 있었다. 차라리 그늘에 가려진 여성에게 성매매를 단절하고 우리의 철학, 소리, 서화, 시, 춤 등의 우리문화를 중심으로 교육하고 가르쳐 공공기관의 책임 하에 적극적인 추진과 일정기간의 생활을 보장한다면 이는 성공할 수 없을까? 세계화할 수 없을까? 그뿐이랴. 온돌문화와 지열의 아파트활용, 황토방의 오행건축, 철학이 담긴 한복의 패션화, 견뢰도를 향상한 천연염색의 산업화 등등 무지하게 많을 것 같다.
셋째, 문화?예술이다. 대중적인 현재의 한류문화는 한국적 철학이 부족한 상태로 판단된다. 유명한 국내 작가가 우리의 예술을 가지고 해외전시를 한다면 그 속에는 우리의 철학이 얼마나 있을까? 한국의 서예는 철학이 빈곤한 글씨의 쟁이 만을 키우는 것은 아닐까? 왜 서예는 전통적인 사회를 향해 가르치는 기와 도의 학문을 버리고 예술이라 할까? 풍수지리와 사주는 학문으로 승화시킬 수 없는 것인가? 의문이 꼬리를 물고 있다.
도깨비라는 소재를 통해서 장수의 이야기를 언급했지만 결국은 우리나라 전체의 과제로 생각한다. 따라서 도깨비 같은 생각도 종종 필요할 것 같다. 도깨비는 상고사에 있었던 치우천왕의 행적에서 유래되었지만 역사 이래 한번도 그 진가를 발휘하지 못하였다. 재미있고, 복을 주며, 친근한 대상인 우리의 도깨비가 철학을 가지고 세계평화와 문화산업으로 거듭나길 간절히 바라고 노력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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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태봉 | 1997년부터 장수에서 벼루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현재는 장안문화예술촌 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