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1 |
[전주세계소리축제] 뒤섞여 있음의 기쁨
관리자(2005-11-12 14:29:40)
글 | 고드 셀러 전주대학교 교수
2005 전주소리축제의 공연을 거의 모두 관람할 기회를 얻었으니 운이 참 좋았다. 축제에 대해 의견을 말해 달라고 요청 받을 때마다 내 마음 속에 같은 말이 지나갔다. "도시의 불빛"이라는 캐나다 시인 루 보슨의 시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저마다 한꺼번에 지껄이는 버스에 올라타서
세어보니 여덟 가지 다른 언어, 아는 말 하나도 없네.
당혹스럽게, 압도적으로, 뒤섞여 있음의 기쁨이 아마도 내가 이 공연에서 저 공연으로 옮겨가면서 느낀 가장 깊은 감정일 것이다. 한 번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민요, 다음에는 가믈란, 그리고 옥외 공연장에서 들리는 둥둥 북소리와 유쾌하게 번들거리는 취주악단. 하루 저녁에는 듀크 엘링턴을 연주하는 재즈 합창, 이튿날에는 광적으로 전위적인 일탈 속에 파아노, 첼로, 드럼과 혼합된 비파와 얼후. 나는 쿠르드 사람들의 노래를 들었고,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북한의 악기에 맞추어 국경을 통해 밀반출한 기법으로 연주하는 가락을 들었다. 관람하면서 마음이 뿌듯했던 일종의 국제적인 절정이었다.
축제에 대해 다시 글을 쓰려니 내 마음이 넘치는 소리와 기억으로 가득 찬다. 챠트웰 듀티로의 음비라 소리가 들린다. 예비 워매드(WOMAD)에서 연주하던 모습이며 짐바브웨의 토속적인 가락을 노래하는 목소리가 내 머릿속에 분명히 떠오른다. 나는 내 아버지가 젊은 시절 말라위 (탈식민지화 이후 짐바브웨라고 불리우게 된다.) 근처에서 밤에 울리는 그 가락을 들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나는 너무나도 켈트적이어서 나에게 친숙하게 느껴지는 곡조로 카라 딜론의 목청이 솟구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나는 기타와 목소리 만으로 공연장을 완전히 장악했던 서로 전혀 다른 두 사람, 제프리 오례마와 리오르을 다시 생각한다.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소리축제가 전주에서도 흔치 않은 탁월한 수준의 잘 짜인 판소리와 여타 전통 한국 음악을 들을 기회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분명히 그런 경우였다. 나는 세 번의 다른 판소리 공연을 관람했는데, 각기 다른 방식으로 나를 매혹시켰다. 현대 판소리인 "대 고구려"는 대부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어떤 시대정신을 전달하기 위하여 현대적인 텍스트와 또 무술과 혼합한 인상적인 춤에 의지하는 것이었다. 내가 보기에 중대한 전투와 역사적 위업이 청중을 즐겁게 하는 방식으로 풀려나오고 있었다. 나는 오히려 염경애의 수궁가를 훨씬 더 즐겼다. 실제로 내가 대부분 따라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이전에 토끼의 긴 수난사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송희와 제자들의 흥보가는, 이것도 내가 잘 아는 것인데, 정말 나에게는 계시였다. 끝 부분에 가서 즐거운 몸짓, 희롱, 정말 우스꽝스러운 춤과 더불어 김선영이 부른 대목이 공연의 하이라이트였다. 그날 밤 나는 판소리에 홀딱 빠져버렸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가엾은 내 여자친구는 판소리의 창법을 색소폰에 접목시키겠다는 나의 헛소리를 내내 참고 들어야 할 지경이었다.
함께 공연에 갔던 다른 외국인 친구도 판소리에 대한 나의 들뜬 첫인상을 공유했다. "한국식 오페라"라는 전단의 안내에도 불구하고 내 친구와 나는 미국의 흑인 블루스/재즈 가수인 베시 스미스와 먼저 비교하여 토론하였다. 무엇보다도, 판소리 공연에 대한 청중의 반응과 훌륭한 청중이 재즈 공연에 반응하는 방식이 유사하다. 미국에서는 "얼씨구!"라는 소리가 다르게 나오지만, 똑 같다. 사람들이 당연히 그러는 줄 알고 고무하고 확인하는 말들을 공연자에게 외친다. 내 옆에 앉은 젊은 여자가 갑자기 "응!"하는 소리의 충격에서 벗어난 뒤, 나는 한국의 전통 속에 재즈와 같은 어떤 것이 있음을 발견하고 무척 기뻤다. 판소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것은 좋은 청중의 표증이다. 또한 노래하는 사람이 반주자, 청중, 그리고 음악적 소재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이 베시 스미스를 생각나게 했다. 나는 많은 판소리 가수의 거칠고 쉰 목소리를 들었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더 나은 단어가 없기에 하는 말인데, 대단히 "블루스적"이고, 미국 블루스 가수의 목소리와 흡사하다. 내 생각에 이것이 내가 축제를 통하여 얻은 가장 큰 놀라움이며, 상당히 오랫동안 내가 간직할 기억이다.
내가 또 경기 도당굿 같은 다른 여러 한국 음악, 아시아의 바람에서 굉장한 피리 연주, 현무도 공연에서 (어떤 것은 알고 어떤 것은 모르는) 매혹적인 현악기들의 나열을 들었지만, 나에게 최고는 아시아의 전통과 아방가르드 시리즈였다. 나는 시리즈의 전 공연을 관람했는데, 저마다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었다.
리빙 파이어 앙상블은 이름도 잘 지었다. 그들이 공연장에 가져온 것이 불이었으니 말이다. 쿠르드 노래는 여러 악기 위에 대가급의 솔로로 수를 놓았는데, 악기 위주의 프로그램이 나는 좋았다. 내가 성악보다 악기 음악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나는 대부분의 청중이 그들이 목도하고 있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의심한다. 그것은 현대에도 조국을 거부당한 사람들의 전통 음악 연주였다. 식민지 한국에서 판소리 공연이 지난 세기의 전반에 그러했듯이, (식민지 조국에는 조국이라는 땅이라도 있지만 쿠르드 사람들에게는 그조차 없으므로) 아마 더욱 그러할 터인데, 정말 의미심장한 사건이었다. 이를 눈으로 보는 것은 영광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악기를 완벽하게 소화하는 음악가들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탁월한 독주자 가운데, 내 생각에는, 다프를 연주한 후세인 자하위의 연주가 가장 뛰어났다. 갓 피어난 꽃다발 속의 한 송이 장미.
무지카 아타락시아 공연에서는, 음악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한, 다른 저항감에 부딪혔다. 여기서 전통적인 아시아의 악기가 내가 근년에 들어본 가운데 가장 물집 생기게 심각한 생음악 아방가르드 음악과 혼합이 되었다. 물론 이것은 이해하려면 훈련 또는 진지한 연습이 필요한 그런 음악이다. 나는 상당한 청중이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놀라우리만큼 잘 받아들이며 감상하였고, 아니면 최소한 품위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전통 아시아 악기로 연주하는 아방가르드 음악을 드는 것이 내 오랜 꿈의 하나였다. 그래서 종종 음악을 칭찬하기 어려웠지만 공연을 보는 것은 기쁨이었다.
전통과 아방가르드 시리즈의 하이라이트는 야이르와 살라메 앙상블의 연합 공연이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평화의 비밀--주의 깊게 듣고, 공통의 전통을 관찰하고, 조화로운 공존의 구축에 주목하기--를 아는 이들이 정치가들이 아니라 예술가들이라는 사실은 나에게 놀라운 것이 아니다. 지정학적 고려를 배제하더라도, 음악은 여느 공연에서나 가장 중요하다. 이번 공연의 음악은 놀라웠다. 그날 밤, 우드에 대한 나의 생각이 "중동의 기타 비슷한 것"으로부터 살아있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 악기는 그저 귀를 기울이라고 부드럽게 요청하는, 밤의 연인처럼 부드럽고 어두운 목소리를 가졌다.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악기, 시타르는 멀리 사막에서 가물거리는 불처럼 가끔씩 들리지만 그때마다 절대마법의 주문을 걸었다. 그날 밤 타블라스에서 (일종의 받침이 달린 북) 다르부카에 이르는 북의 리듬과 탬버린으로 연주한 어떤 것들은 상상을 불허한다.
공연이 끝난 후 거의 빠짐없이 사람들이 나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이것을 공연장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것은 너무 어려웠다. 정말 우연히도, 경계, 언어, 적대감, 분쟁, 또는 불화를 가로질러 인간 정신이 연대하는 것을 관람한 후, 그것에 대해 느낀 점을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가? 나는 많은 프로그램이 축제의 주제, 난, 민, 협률에 맞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를 이해하려고 애쓰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었던 개념들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가끔 단순하게,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내가 알고 있었던 그 감정을 표현하여, 이런 방식으로 말한다. "그것은 나에게 한 줄기 신선한 공기였다. 나는 내면의 세계에서 커다란 창이 열리고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내 안에서 잠자던 무엇이 깨어나 다시 삶으로 소환되었다. 나는 지금 행복하다."
몇 주가 지난 지금도, 다시 생각하면, 나는 여전히 행복하다.
-----------------------------------------------------------------------------------------
고드 셀러 | 캐나다 사스카툰 출생, 2002년 한국에 와서 2003년부터 전주에 거주했다. 중국 태평천국의 난에 대해 연구하며 시를 쓰고, 공상과 정치를 뒤섞은 스릴러 소설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