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1 |
[전주세계소리축제] 소리 속에 길이 있다
관리자(2005-11-12 14:11:14)
글 | 윤흥식 (KBS 전주방송 총국장)
면면히 흐르는 예맥과 놀랍고 자랑스러운 소리문화전당을 비롯해 도처가 공연장인, 그래서 날마다 막이 오르는 호남의 중심 전주에서 세계 소리 축제가 올해까지 다섯 번 치러졌다. 그동안 소리 축제는 예술로서의 완성도와 축제로서의 대중성을 확보하고자 나름대로의 노력을 경주해왔고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시행착오도 있었다. 2001년 1회 축제 때는 풍족한 예산 지원으로 세계적인 공연을 다량 유치해 큰 호응을 얻긴 했으나, 정체성으로 논란이 파다했고 2회와 3회 때는 이로 인해 축제 자체가 실험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절반 이상 줄어든 예산으로 축제는 조잡함을 드러냈고 검증되지 않은 해외 공연단의 초청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조직위원회의 공연단 선별 능력까지 의심을 받았었고 관객 동원도 부진했다. 무료공연에는 관객이 몰렸지만 유료공연은 세계소리 축제라고 하기에 민망할 정도였다. 2-3회 축제는 정체성을 찾으려는 시도와 노력은 있었지만 가닥을 잡지 못한 채 공연장마저도 소리문화전당, 한옥마을, 전북대 등 일원화했다 이원화했다 갈피를 못 잡는 형국이었다. 2004년 4회 대회부터 세계소리축제는 양보다 질을 추구했고 안숙선 명창을 조직위원장으로 영입하여 전주세계소리축제의 정체성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자했으며 그 결과 상당한 효과를 거두었다. 아울러 공연 작품의 과감한 구조 조정과 함께 무료 초대권 발급을 중단하고 유료화를 시도하는 등 소위 문화 경영에 눈을 뜨면서 도약 원년의 5년차를 맞게 된다.
2005년. 올해의 소리축제는 적은 예산으로 비교적 모양을 갖춰 진일보한 느낌을 받았으나 홍보와 조직 운영에선 미숙한 점이 많았다. 프린지 공연의 경우 안내판이 없어 뭘 하고 있는지 궁금했고 한옥체험관에선 준다던 막걸리를 관객이 많다고 취소하기도 했다. 공연장 내에서의 난투극은 명창의 재치로 웃고 넘어갔지만 외국 손님을 배려하지 않은 홈페이지 관리와 행차 뒤에 나팔처럼 뒤늦게 나온 안내 책자는 속터질 일이고, 명인홀 입구까지 밀어닥친 화물차가 급기야 가로등과 루미나리에까지 훼손하는 등 안전 관리의 허술은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오점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주제에 대한 응집력만 보강된다면 5년차는 가능성을 확인해준 행사임이 분명하다.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소리축제의 성장을 반기면서 몇 가지 소견을 밝힌다.
대회 기간 중 너무나 다양한 작품이 동시 다발적으로 이뤄져 뭘 볼까하고 잠시 행복한 고민에 빠지기도 했지만 역시 양적 팽창보다는 질적 향상이 우선해야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된다. 음악적 완성도가 느낌과 인상을 각인할 수 있다면 언제라도 관객의 마음은 출렁일 준비가 돼있다. 그런 이유로 개막작은 지나치게 심오해서 오히려 손해 보지 않았나싶다. 물론 그렇지 않은 관중도 있겠지만 일반적 기준에 비춰볼 때 그렇다는 것이다. 대부분 관객은 중후한 무대와 장내 분위기에 젖어 이미 조금은 뜰 뜬 상태에서 차분함보다는 약동과 적당한 흥분을 기대하고 있었기에 시종 조심스럽고 기복 없이 운반됐던 테마 ─ 난, 민, 협률 보다는 좀더 쉽고 어쩌면 상투적일지라도 일반적 표현, 다시말해 우리의 소리(Sori)가 흐드러지길 더 바랬을 것이다. 소리축제에서 정작 소리(Sori)가 빠진 셈이다. 혹자는 소리(Sound)란 범주를 말함이니 소리축제라는 작명 자체가 넌센스라고 꼬집기도하지만 기실, 소리(Sori)라고 명명한데는 소리(Sori)가 우리 전통음악을 대변할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개막작에서도 소리축제의 본류인 소리(Sori)가 어떤 식으로든 주류를 이뤘어야한다. 해마다 주제는 바뀔지언정 축제의 바탕색만큼은 우리의 Sori로 깔아야 한다. 어쩌면 폐막작인 “2005소동·소통”이 필자가 그리는 개막 공연과 가깝다 하겠다. 변화도 중요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똑같이 중요하다. 소리의 표현 양식이 시대 정서와 함께 진화할 때 비로소 우리 소리(Sori)가 새롭게 꽃필 수 있고 전통의 계승 발전은 물론, 소리축제의 태생 목적까지도 함께 이룰 것이다.
명인홀을 중심으로 한 판소리는 젊은 명창들을 보는 즐거움과 전통 소리의 진가를 확인하기에 손색이 없었으나 소리축제에서 가장 큰 수확이자 뜻 깊은 공연이었던 5명창과 중복 편성돼 어디로 갈까 망설이며 속상한 관객이 한 둘이 아니었다. 이는 비단 명인홀과 한옥 체험관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모악당과 연지홀 프린지와 야외 공연장 거기다 전통문화센타까지 가세하면 밤마다 어디로 갈까 숨이 가빴다. 이 역시 주류를 중심에 놓고 시차 혹은 격일편성 등의 묘를 발휘해야겠다. 작품은 보다 엄선하여 양을 줄이는 한편 아까운 작품은 2-3회 편성해서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안배해야 한다. 그리하면 예산도 몰아서 쓸 수 있기 때문에 품질 제고와 노동 집약에도 기여하리라고 본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리 축제를 찾는 관객 대부분은 음악에 조금은 관심이 있는 사람, 혹은 관심을 같고 싶은 사람들이니 이들의 충성도를 강화시킬 사후 관리책이 필요하다. 공연에 관한 설문조사를 기획에 반영하고 홈페이지를 통해 소식을 전하고 관련 정보를 교환하는 등 유기적 관계를 통하여 적극 가담토록 유도, 홍보 요원화를 꾀해야한다. 소비자의 기호와 취향을 참고하는 것이 곧 고객 관리요 마켓팅의 기본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어린이를 위한 미래투자로서 “소리야 놀자”와 “애니판소리”. 누구나 즐길 수 있었던 “윤중강의 현무도” “팝페라 조아리아” “재즈코어 프라이부르크” “소리 희희낙락” “굿이야 GOOD” 등등 기획력이 돋보이는 작품이 상당수 있었다. 이렇게 누적된 우수작은 앵콜을 통해서 믿고 찾을 수 있는 명품으로 정착 시켜야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축제를 대표할 스타 상품 개발에 총력을 기울여야하겠다. 누구나 다시 보고 싶은 스타 상품이 곧 소리축제의 활로이자 흑자 축제를 맞이할 블루오션이라고 확신하며 대안으로 덕진공원을 마당으로 한 수상공연(水上公演)을 제안한다. 입구의 가지마다 한지등(韓紙燈)으로 장식하고 다리위에 설치한 폭포위로 달이 뜨고 용이 승천한다. 첨단과학과 접목된 퍼포먼스……
서커스, 마술, 마스게임, 탈춤, 그림자극, 음악분수 등등을 응용해서 그야말로 소리바다를 연출해 보자. 형형색색의 유등이 집산할 때마다 환타지가 열리고 풍물과 12발 상모가 물반사를 튀기며 신명을 돋운다. 현란한 빛과 장쾌한 율동은 오직 소리(Sori)만을 위해 존재한다. 우리의 소리(Sori)가 울을 박차고 핵이 되어, 모든 것을 하나로 아우르며 온갖 잡사를 떨쳐버릴 수 있는 그런 난장을 트고 싶다. 심청가, 수궁가, 서편제 등의 상설무대와 더불어 전주 속에 세계를 담아낼 수 있는 그런 소리축제로의 비상을 우리 모두 꿈꿔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