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1 |
[전주세계소리축제] 5년의 성과와 한계, 그리고 전망
관리자(2005-11-12 14:07:50)
정체성 논란의 종식을 바라며
글 | 곽병창 (전주세계소리축제 총감독)
오 년 동안을 두고 어떤 이는 충분한 시간이었다고 하고, 어떤 이는 아직 궤도에 오르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정확하게 그만큼의 세월이 흐른 것이다. 관점에 따라서는 이제 제 자리를 잡아야 하지만 아직 왠지 불안해 보이는 시기, 그게 5년을 지낸 소리축제의 지금 모습이다. 소리축제는 공식, 비공식의 숱한 논쟁과 다섯 번의 실행 과정을 거쳤지만 아직도 논란이 분분한 측면이 남아 있다. 이른바 ‘정체성 논쟁’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불필요하게 증폭된 측면이 있다.
조직위는 2001년의 평가서 이후 일관되게, 정체성 논란의 핵심인 ‘소리’의 개념에 대해서, 판소리를 중심으로 한 목소리, 그리고 목소리를 중심으로 한 세계의 전통음악으로 그 범주를 확고히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2003년 판소리가 세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등록되면서, 전문가들의 소리에 대한 개념은 ‘판소리를 중심으로 한 목소리’로 그 개념을 확고히 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평가 또한 관람객과 전문가 모두로부터 긍정적 반응을 얻고 있다.1) 특히 전북도민의 ‘소리’에 대한 연상도 조사에 의하면 이는 더욱 확연해진다.2)
그런 점에서 이른바 정체성에 대한 논란은 이제 종식되어야 하며, 따라서 본문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이 글에서는 지난 오 년 동안, 소리축제가 쌓아온 성과와 그 한계를 꼼꼼히 살펴보고, 한계로 지적할 수 있는 부분들의 원인을 분석함으로써, 향후 전망에 기여하고자 한다.
소리축제 5년의 성과
‘전주세계소리축제’라는 브랜드 이미지의 인지도 확산
저간의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수도권을 포함한 타 지역의 많은 이들은 전주, 전북의 소리와 소리축제에 대해 좀 더 진전된 인식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의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소리축제가 개최되는 지역명을 기술하라는 설문에 대해 전주, 전북을 떠올린 사람이 33%로 나타났다. 초기의 조사 자료가 없는 탓에 비교 분석이 어렵지만, 전라도라는 유사 오류 응답인 29%까지를 포함한다면 이는 결코 낮지 않은 수치라 할 수 있다.3) 또, 그 동안 소리축제에 다녀간 국내외의 많은 연주자들은 축제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으며 다시 참여하고 싶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특히 해외에서 다녀간 공연단들의 경우 ‘Sori Festival'이라는 이름에 대한 선호도가 높으며, 재방문 의사가 더욱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소리‘라는 고유명사에 의한 축제 브랜드 이미지의 상승효과가 분명하게 나타남을 알 수 있다.
주민 참여형 공연예술축제로서의 가능성 확인
-소리판 복원의 기운
2004년 축제를 시작하면서 새로 구성된 집행부는 2004-2005년의 축제를 통해서 ‘지역주민의 신뢰 회복을 통한 정서적 착근’을 이루겠다는 목표를 내세운 바 있다. 2005년 축제를 치르고 난 뒤 이 목표는 어느 정도 근접하게 달성한 것으로 생각된다. 어느 해보다 많은 지역민들이 축제의 현장에 나와서 흔쾌히 동참하고 즐기는 모습을 확인했고, 무엇보다도 판소리와 창극 공연장의 관객들이 현장의 열기를 주도함으로써, 오래된 소리판의 기억을 되살릴 만한 성과를 거뒀다. 전주/전북이 소리축제의 주력 상품으로 삼아야 할, ‘주민/청중’과 함께 하는 소리판의 독특하고 열광적인 기운이 결코 복원 불가능한 것이 아님을 확인한 셈이다.
세계와의 소통 가능성 확인
예술의 국제적 교류란 어느 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며 그래서도 안 된다. 오히려 양 방향의 소통이 가장 빠른 시간에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먼저 고민하는 게 급선무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국제적인 공연예술축제인 WOMAD4)가 전주세계소리축제에 깊은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인 성과라 할 수 있다. WOMAD 사무국의 총감독인 Thomas Brooman은 4박 5일의 일정으로 축제의 구석구석을 돌아 본 뒤, 내년 이후 전주에서 개최하기로 잠정 합의했던 “WOMAD in SORI” Festival에 대해 강한 자신감과 의욕을 내비쳤다. 내년 이후의 소리축제는 ’워매드 인 소리 페스티벌‘이라는 새로운 장치를 통해 세계의 음악, 세계의 공연예술축제와 소통/교류할 수 있는 중요한 발판을 마련하게 된 셈이다.
프로그램의 안정화, 다양화
축제의 프로그램은 그 정체성과 지향점을 그대로 드러내는 촉수와 같은 구실을 한다. 그런 점에서 초창기 이후 지금까지 위촉, 초청해 온 프로그램의 내용을 보면 점진적으로 혼란스러움을 극복해 온 과정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특히 판소리를 중심으로 하는 축제로서의 면모는 해를 거듭할수록 강화되어 왔으며, 전 세계의 토속성악예술을 주 초청대상으로 삼으려는 해외프로그램의 방향설정, 소리프린지 페스티벌의 확대와 정착, 어린이 소리축제의 지속적 성장 등을 꼽을 수 있다.
소리축제 5년의 한계와 그 대안
올해 소리축제가 끝나는 시점에서 내려진 안팎의 평가를 종합해 보면 올해의 축제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그 한계를 드러냈다. 첫째, 홍보 및 마케팅 역량 미숙, 둘째, 일부 프로그램의 운영 미숙, 셋째, 공간 및 시간 배치상의 몇몇 오류, 넷째, 유료 입장권 판매 미흡을 비롯한 수익성 미확보 등이 그것이다. 이 지적들은 대부분 타당하다. 그리고 오 년 동안 치러 온 축제로서는 반복하지 말아야 할 오류들을 여전히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안타깝게도, 이 오류들은 서로 얽혀서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받는 악순환의 구조를 지니고 있다. 지금 시점에서 잘못을 지적하는 것 못지않게 잘못을 반복하는 원인과 구조에 대한 분석이 절실한 이유이다.
홍보 및 마케팅 전략의 부재
전적으로 타당한 지적이다. 무엇보다 이 문제는 인력과 예산의 문제에 대부분 그 원인이 있다. 현재의 상근 인력에서 홍보를 담당하고 있는 인력은 팀장 한 사람이다. 홍보 관련 인력은 말할 것도 없이, 초창기의 인력들 가운데에서 이른바 간부급 직원들은 현재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다. 홍보 및 마케팅 분야야말로 축적된 노하우와 인맥, 안정적인 예산 배정 등이 생명임을 감안한다면, 지금과 같은 인력 구조에서 홍보, 마케팅의 전문성을 기대한다는 것은 거의 나무 위에서 물고기를 찾는 일과 같다. 이런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서 시급한 것은 인력과 그 노하우가 축적될 수 있는 구조를 갖추는 일이다. 물론 유능한 인력이 안정적으로 노하우를 축적시켜 가며 일할 수 있는 구조와 조건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좀 더 전문적인 경영진단이 전제되어야 한다. 해마다 축제를 치르고 나면 축제의 존폐를 거론하면서 미래를 기약할 수 없게 하던 분위기나, 총감독이 바뀔 때마다 그 핵심 인력들이 모조리 교체되는 관행은 이제 바꿔야 할 것이다.
축제의 경제성-수익 창출의 문제
안타깝지만 이 부분은 가까운 시일 안에 획기적인 개선책이 나오기는 어렵다. 유료공연장의 티켓 수익으로 손익 분기점을 맞추는 일은 지금과 같은 구조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협찬 수익을 높이는 일 또한 하루 아침에 호전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현 단계에서 검토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는 축제의 수익창구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과도기적으로 일부 또는 전체의 축제권역을 대상으로 입장권을 판매하는 방안과 식음료, 기념품, 실황음반 등의 판매를 통한 수익사업을 강화하는 방안을 강구할 때이다.
프로그래밍, 운영, 진행
이 부분 역시 근본적으로 인력의 질과 인적 노하우의 축적에 정확하게 비례한다. 따라서 홍보, 마케팅의 전략 부재에서와 같은 맥락의 논의가 필요하다. 다만 프로그래밍의 경우, 연구위원회의 기능을 재고하는 일과, 전문 프로그래머의 상근화 또는 외부 전문가의 역량을 다양한 창구를 통해서 활용하는 방안 등이 다각도로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서울을 비롯한 국내의 관련 전문가 그룹은 물론 해외의 우수한 전문 인력들을 두루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물론 상근인력의 재교육을 통한 기획력 제고 노력 또한 마땅히 병행해야 할 일이다.
중장기적 전망의 수립을 위하여
지역이미지와 축제 컨셉의 절묘한 만남, 세계축제로서의 무한한 발전가능성 등의 축복과 찬사를 받으며 출발한 소리축제는 4회를 치르는 동안 그 외형은 축소되었지만 그 기대치는 결코 축소되지 않는 역설적 결과를 낳은 채 5회째를 맞았다. 우여곡절 끝에 내리 4년 동안 그 외형이 축소되어 오긴 했지만 2004년을 전환점으로 하여 그 외적 조건은 반전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 2005년의 예산과 그에 따른 외적 규모는 사상 처음으로 전년도에 비해 확대되고 있으며, 2006년 이후에는 세계적인 공연예술축제들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하여 명실상부한 세계축제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하지만 축제를 둘러싼 외적 조건과 배경, 사회, 문화적 상황 등에 대한 면밀한 고려와 그에 입각한 중장기적 전망을 미뤄 둔 채 축제의 발전을 이야기하는 것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 그런 점에서 지난 4년을 포함한 축제의 중장기적 발전 전략을 수립해야 할 시점이다. 하지만 그 전망이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다음의 네 가지 전제가 충족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예산의 항구적 안정성 확보, 둘째 조직의 안정, 셋째, 소리테마공원, 소리박물관, 창극전용극장, 퍼레이드거리, 축제광장 등 수익창출이 가능한 하드웨어 인프라의 조성, 넷째, 전주시의 유기적, 능동적 참여가 바로 그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한 중장기적 전망의 예를 토론장에서의 발제문에는 제시하였지만 이 글에서는 지면관계상 생략한다5).
소리축제를 둘러싼 논의의 장은 그 동안에도 많았고 앞으로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 논의가 생산적이고 긍정적으로 기여하기 위해서는 축제를 움직이는 데에 기여하는 많은 실질적 주역들이 이 논의에 진지하게 동참해야 한다. 여기에는 축제의 상근인력은 말할 것도 없고, 관련 공무원, 그리고 소리꾼들을 비롯한 지역의 음악인, 문화예술계의 여론을 주도하고 있는 많은 전문가들 그리고 언론과 정치권의 인사들에 이르기까지 축제에 관심이 있거나 관련이 있는 모든 이들이 포함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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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주세계소리축제 활성화 방안], 전북발전연구원 중간보고서. 2005.10. 117쪽.
2. 전북도민의 소리에 대한 연상을 조사한 결과, 판소리 49.8%, 전통음악 17.2%, 음악과 노래 11.3%, 악기소리(타악) 5.5.%, 기타 16.2% 등으로 나타났다. 원도연, [전북도민의 문화향수실태와 소리축제], 특별기획세미나 {전주세계소리축제의 방향과 전망} 자료집, 전주세계소리축제조직위원회. 2002.3.11. 15쪽.
3. 전북발전연구소. 앞의 책. 142쪽. 연상도 조사장소는 서울역과 인천고속버스터미널이었으며, 조사일은 2005년 9월 11일, 대상은 무작위 추출의 101명이었다.
4. WOMAD 페스티벌은 1982년 영국에서 Peter Gabriel과 Thomas Brooman에 의해 처음 개최된 이래 지금까지 전 세계 24개 나라에서 140여 회의 축제를 펼쳐 온 바 있다. 이 축제를 통해 전 세계 전통 음악의 유산들이 서로 교류하고 확산하는 계기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왔으며 비서구권의 음악적 자산들이 대중적으로 발전, 성장하여 오늘날 이른바 ‘world music'이라는 이름의 한 경향으로 자리를 확고히 해 가고 있다.
5. 발제 당시의 원고 전문은 소리축제 홈페이지 www.sorifestival.com 에서 찾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