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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 |
시장
관리자(2005-10-13 17:49:24)
물산이 모이는 고장, 전주성 시장풍경 글 I 홍성덕  <전북대박물관 학예연구사> 50년 낙후라는 꼬리표를 달고 반세기를 지내온 요즘 사람들에게는 먼 옛날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황현이 지은『매천야록』에는 전주를 우리나라 3대 시장의 하나로 기록하고 있다. 전라도가 살기 좋은 곳이고 먹을 것이 풍부한 고장이었다는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것은 정치적으로 핍박받는 현실에 대한 위안인지, 그것을 생활 속에서 자랑스러워 하는 면은 많지 않다. 어쨌든 분명 전주가 물산이 모이는 고장이었음에는 틀림이 없는 것같다. 물산이 모이고, 사람이 모이고, 돈이 모인 전주에서는 자연스럽게 문화적 향유력이 높아졌을 것이고, 문화 향유력이 소리, 음식, 서예 등등 전주의 문화적 코드를 자연스럽게 형성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것을 증거할 만한 자료나 연구를 가지고 있지 않다. 조선시대 전주라는 도시의 경쟁력이 어느 정도인지 말만 있을 뿐 증거는 없는 셈이다. 전통문화도시 전주를 만들고 있는 지금도 그것은 여전하다. 다만, 『전주부사』에 전주부성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활동, 특히 장터에 관한 언급에 의하면 전주에는 4개의 성문 밖에 정기적으로 장이 섰다고 한다. 남문밖 시장은 2일장으로 생활용품과 곡식을 거래하는 장터가 섰으며, 동문밖 시장은 9일장으로 한약재와 특용장물의 장터가, 서문밖 시장은 7일장으로 소금, 깨와 같은 양념과 어물이, 북문밖 시장은 4일장으로 비단같은 포목과 잡곡을 거래하였다고 하다. 뿐만 아니라 전주천에 놓인 다리를 중심으로 구별된 상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싸전다리는 말 그대로 싸전이 중심이었고, 매곡교 부근은 쇠전 강변이라 해서 우시장이 열렸으며, 서천교는 설대전다리라 해서 담뱃대 장수들이 좌판을 깔았고, 완산교는 소금장수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에 소금전다리라 불리웠다. 이외에도 성 안에는 상설 점포들이 들어서 있었으며, 거래품목들은 유기, 주석, 은 제품 등이었다. 결국 성밖의 경우 먹거리 중심의 시장이었으며, 성안 시장은 수공예품 등을 파는 상점이 주류를 이루었음을 알 수 있다.   전주가 물류의 중심이었다는 것은, 중심이 무슨 물품이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전해져 오는 단 한 장의 사진으로 그 사실을 엿볼 수는 있다. <사진 1>은 1900년대 초엽의 남문밖 시장 모습이다. 당시의 성내 인구가 1만명을 조금 넘었으므로 시장에 몰려나온 사람들로 볼 때 단순히 전주성내 사람들이 먹거리를 사고팔기 위해 나온 것으로 보기는 어려울 듯하다. 한명 한명 일일이 세어 볼 수 없는 노릇이지만, 적어도 이런 규모의 장터가 섰다는 사실만으로도 전주의 경제력을 엿보기에 부족하지는 않을 듯하다. 『사진으로 본 전주서문교회 100년』(1994)에 실려 있는 <사진 1>의 설명을 보면 “멀리 기린봉이 보이고 좌측은 향교가 있는 교동부근이며, 우측의 많은 인파가 있는 곳이 현 남문시장 자리”라고 설명이 되어 있지만 조금 이상하다. 먼저 좌측(향교)와 우측(남문시장)은 천을 가운데에 두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사진의 왼쪽이 교동쪽이라면, 사진 속 우측 시장은 싸전다리 건너편으로 옛 반석리(현 전주천 좌안도로)에 해당하므로 남문밖 시장의 건너편에 해당한다. 보통 옛 사진을 볼 때에는 장소가 어디며, 어떤 모습을 담고 있는가에 집중하기 마련이다. 몇가지의 정황으로 보아 이 사진은 초록바위에서 한벽당쪽을 향해 찍은 것으로 추정되며, 그럴 경우 남문밖 시장 앞 전주천 건너편에도 큰 장터가 열렸음을 알려주는 것이기도 하다. <사진 2>는 풍남제전위원회에서 발간한 『전주100년 풍물사진집』에 1920년대 남밖장이라고 쓰여져 있지만, 역시 틀린 설명이다. 이 사진은 정확하게 현 완산교 밑 시장을 촬영한 것이다. 오른쪽 중앙에 반듯하게 보이는 선이 바로 완산교이며, 완산교 너머 낮은 다리는 매곡교이다. 오른쪽 나뭇가지 끝 부분에 연결된 산봉우리가 곤지산이며 나뭇가지에 가린 뒷 산은 투구봉에 해당된다. 사진에 있는 완산교의 모습은 1922년에 세워진 콘크리트 다리로 여겨지며, 천변에는 전주천의 제방이 쌓여있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이 사진은 1920년대 완산교 밑 시장의 풍경이다. <사진 3>은 서문밖 장터의 모습이다. 동학농민혁명 때에 농민군이 장사치로 위장해서 전주성에 침투했다던 바로 그 시장의 모습이다. 메이지 43년 10월 13일, 동척시찰단 환영기념 스템프가 찍힌 것으로 보아 사진이 촬영된 시점은 1911년 이전으로 1900년대 전주 서문밖 시장의 모습이다. 정확하게는 서문밖에서 완산교에 인접한 곳으로 여겨진다. 우측 중앙 끝에 있는 다리가 완산교이며 상류쪽 낮은 다리가 매곡교이다. 서문밖 시장의 천변가에 있는 초가의 상점들은 가설 점포로 여겨지며 역시 제방은 쌓여있지 않다.<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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