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0 |
전주향교 김춘원 총무
관리자(2005-10-13 16:53:45)
불치하문(不恥下問)하고 견득사의(見得思義)하라!
글 I 김선경 문화저널 편집위원
향교를 찾은 날은 전국시조경창대회가 끝난 다음날이었다. 명륜당에는 아직도 책걸상이 빼곡이 들어차 있고 서재(西齋)에 마련된 사무실에는 대회 수상자의 프로필을 묻는 전화가 연신 걸려오고 있었다. 김춘원 총무는 전화기를 붙들고 수상자들 프로필을 들려주느라 미처 의자에 앉을 여유도 없었다.
올해 나이 일흔넷. 새까만 머리카락과 구릿빛 피부가 나이보다 훨씬 그를 젊어 보이게 한다. 10여 년 남짓 향교에서 총무 일을 보고 있는 김춘원 씨는 원래는 법학을 전공한 법학도였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 전북도청에 행정직으로 취직을 했지만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나면서 병역미필자로 강원도에 끌려가기도 했다.
“병역미필자를 구제한다는 명분으로 끌고 가서 도로확장 공사 같은 데 투입시켰지. 9개월 정도 일하고 병역필을 받았어.”
다시 전북도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전매청에 입사를 했고, 그곳에서 정년을 했다. 일제강점기 때 국민학교를 다녔고 마을 서당에서 명심보감을 수학했지만 특별히 옛사상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던 것은 아니었다. 향교에 오게 된 것은 순전히 집이 교동(현 풍남동)인 탓이 컸다. 매일같이 향교를 오가다 보니 향교 일에 관심을 갖게 됐고, 어찌어찌 하다가 총무 일까지 떠맡게 된 것. 향교의 직제를 보면 맨 위에 전교가 있고, 그 밑에 의전이 있으며, 그 아래로 총무와 재무가 있다. 전주향교에는 현재 4명의 상근자가 근무를 하고 있는데, 전국적으로 이렇게 많은 상근자가 있는 곳이 많지 않다고 한다.
“어딜 가도 전주향교 만한 데가 없어요. 그만큼 정신이 굳건한 곳이 전주지. 나도 클 적에는 유교사상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자랐어요. 부모님이 병들면 자기의 육신을 희생해서 부모님을 구제하는 것이 자식의 도리였지. 향교의 정신도 바로 그런 것이에요.”
향교의 정신을 여러 대중들에게 포교하기 위해 총무 일을 자원했다는 김춘원 씨. 조상의 가르침대로 밝고 맑은 도덕적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다짐이 김춘원 씨를 여지껏 향교에 머무르게 한 힘이다.
“해외에서 공부하고 온 박사도 돈 때문에 아버지를 살해는 것이 요즘 세상 아닙니까? 하지만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어요. 밥을 굶더라도 다른 사람 앞에서는 이를 쑤시는 게 바로 고결하고 근엄한 선비정신이었어요. 지금은 돈에 굴복해서 나라가 흔들흔들하잖아요?”
고급교육을 받은 엘리트들이 오히려 이 나라를 나쁜 쪽으로 끌고 가고 있다면 개탄을 하기를 한참 여, 바로 그렇기 때문에 향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전주향교에서는 매주 일요일마다 사자소학을 가르치는 ‘일요학교’를 통해 사람의 도리를 가르치고 있는데, 초·중·고생은 물론이고 대학생, 일반인들까지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고 한다. 전주향교의 일요학교는 벌써 20년 넘게 진행해온 향교의 교육 프로그램. 만화루만 힐끗 보고 지나쳤던 분들은 향교가 교육기관이라는 사실에 다시 한번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또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성인교육도 이루어지고 있는데, 주부들이 와서 한문과 서예를 배우고 있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이 다 무료로 진행되고 있으니 올곧은 조상들의 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한 전주향교의 노력은 수백 년 동안 지속돼온 셈.
교육에 들어가는 비용은 국비 일부와 자체경비로 조달하는데 향교 주변의 소유지들이 많아 임대료를 받아서 운영비로 쓰고 있다고 한다. 정기적으로 모이는 향교 유림 회원들은 모두 20여 명 정도.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두 차례 모여서 ‘향교 시우회’를 연다. 같이 둘러앉아 시조를 읊는데, 시조 속에 담긴 정신도 일품이지만 시조의 호흡이 길고 음의 고저가 있기 때문에 폐활량이 좋아진다고 한다.
“건강에도 좋고 치매도 예방해 준다고 하니까 시조를 읊으면 참 좋지. 옛날에는 시조창이 궁중정악으로 대접받았는데 요즘엔 판소리가 더 대접받는 세상이잖아.”
워낙 고루하고 케케묵은 음악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람들이 그 맛을 모른다면 안타까워하는 김춘원씨. ‘알고 나면 달라진다’는 진리는 이곳에서도 어김없이 통한다. 방학 때마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한 번만 배우고 나면 아이들의 행동이 싹 달라진다고.
“인사하는 것부터가 완전히 달라져요. 그만큼 교육이 중요한 것이지. 부모님들이 그 교육효과를 아니까 방학 때마다 자리가 없어서 못 받을 정도로 수강생이 몰리고 있어요. 요즘 젊은 엄마들이 얼마나 영리한데, 교육적 효과가 없으면 보내겠어요? 어림도 없지.”
김춘원 씨는 이미 3남 1녀의 자녀를 출가시킨 지 오래지만,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싶은 욕심과 스스로 배우고 싶은 갈망을 아직 다 버리지 못했다. 사단법인 마당에서 마련한 ‘전통생활문화 도우미’ 수강을 신청한 것도 그러한 욕심의 일단인 셈.
“향교를 찾는 사람들에게 우리 전통문화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려면 나부터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불치하문(不恥下問)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모르면 배워야 하고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해요.”
시조 경창대회가 끝났으니 이제 석전대제(釋奠大祭)를 치를 일만 남았다며 바쁜 걸음을 옮기는 김춘원 씨. 음력 2월과 8월에 열리는 석전대제는 향교에서 치르는 가장 큰 행사다. 공자를 비롯한 51위의 신위를 모시는 문묘대제인데다 전주향교는 제주향교와 함께 유일하게 계성사(공자를 비롯한 5성의 아버지 신위를 모신 사당)을 두고 있어서 그만큼 자긍심도 높다.
“석전대제를 문묘대제라고 하는데, 문묘라고 하는 이유는 이곳이 문사(文士)들만 모신 곳이기 때문이에요. 이순신이 아무리 뛰어난 영웅이라 해도 무인이기 때문에 이곳에 모실 수가 없어요. 또 전주향교와 같은 형태를 ‘전묘휴학(前墓後學)’이라고 하는데, 앞쪽에 문묘를 모신 대성사가 있고 뒤쪽에 강학을 하는 명륜당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겁니다.”
전주향교는 또 가을철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로도 유명한데, 아니나 다를까, 대성사 앞뜰에도 그렇고 명륜당 앞뜰에도 그렇고 수백 년이 된 거대한 은행나무가 서 있다. 예부터 향교에는 은행나무를 심었는데 공자가 제자들을 데리고 은행나무 그늘 밑에서 공부를 한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아울러 은행나무는 절대로 벌레가 먹지 않고 잎이며 열매며 몸체까지 버릴 것이 하나도 없으니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여 나라의 중요한 직무를 맡게 되면 버릴 데 없이 훌륭하게 일을 하라’는 의미로 향교에 은행나무를 심는다고 한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늘 무료로 개방하니 언제든지 들러달라고 당부하는 김춘원 총무. 실비 35만원이면 누구나 전통혼례를 올릴 수 있다며 향교를 많이 이용해 달라고 신신당부한다. 향교를 찾는 시민들에게 당부 한 말씀 해달라고 마지막 청을 올렸더니 또 사자성어가 나온다.
“견득사의(見得思義), 내가 얻은 것이 있으면 의로운 것을 생각하라는 공자 말씀이 있습니다. 금전에만 눈이 어두워서 인간이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가서는 안되고, 이익을 얻는 일이 있으면 반드시 의로운 일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이 공자의 정신이고, 그러한 정신이 이 사회를 맑고 명랑하게 만듭니다. 상부상조, 복지국가도 다 견득사의 정신에서 나옵니다.”
불치하문과 견득사의. 이 두 가지만 잘 실천해도 누구에게 욕먹는 삶은 아닐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