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0 |
호남오페라단 제 21회 정기공연 '서동과 선화공주'
관리자(2005-10-13 16:44:24)
오페라적인 지극히 오페라적인…
글 I 배석호 국소리문화의 전당 예술사업부장
오페라를 보기에 앞서 필자는 『삼국유사』에 나오는 ‘서동요’를 다시 펼쳐보았다.
선화공주님은
남 그윽히 얼어 두고
맛둥방을
밤에 몰래 안고 가다.
1400년 전 불려진 서동의 노래가 마치 요즘 노래 같았다. 1400년 전에 살았던 사람과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의 문화적 아이덴티티를 느끼게 한다. 서동의 노래는 아마 그 당시 무척 통속적인 유행가였을 것이다.
선화공주가 서동이란 사람과 바람피운다는 뜻을 지닌 내용부터 그랬다. 선화공주는 서동이란 사람이 어떻게 생겨먹은 사람인지도 알지 못한다. 그런데 뜬금없이 스캔들에 휘말려 궁궐에서 쫓겨나는 처지에 놓인다는 설정도 그렇다. 또 정작 이 노래를 퍼뜨린 작자(作者)가 은근히 선화공주를 마음에 두고 있던 서동이란 사실도 긴장감을 준다. 서동이 비천한 신분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백제 왕자였다는 내용도 그렇다. 대체로 오늘날 멜로드라마의 수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선화공주가 신라왕의 딸이었고, 서동이 백제왕의 아들이었으니 국경을 초월한 사랑이야기라 해도 무방하다. 또 당시의 종교적 신념이었던 불교문화와 신화가 들어간 이야기이며, 해피엔드로 끝나는 ‘한국형 드라마’이기도 하다.
막이 올랐다. 지난 9월 9일부터 11일까지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모악당에서 열린 호남오페라단 스물한 번째 정기공연은 지성호 작 ‘서동과 선화공주’ 초연이었다.
한국에서 오페라 초연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국에 오페라가 살아있다는 걸 뜻한다. 오페라가 살아있다는 것은 무얼 말하는가? 사람들이 살아있음을 뜻하며, 자기가 살고 있는 세상의 무대를 볼 줄 안다는 걸 말한다.
관객들이 모두 숨을 죽이고 기다리는 가운데
조명이 비추기 시작하면
하나의 이야기가 펼쳐지지
어느 시대나 세상은 하나의 무대야…
비퍼(Viper)의 노래 ‘운명이라는 이름의 극장에서’(Theatre of Fate)를 듣다보면 이런 가사가 나온다. 그렇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무대에 올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인생의 무대를 바라볼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운명은 뜻 없이 굴러가지 않는다.
대개 오페라 대본은 통속적이며 줄거리가 뻔하다. 남녀 주인공이 나오고 둘 중 하나는 신분의 차이가 있고, 그 둘 사이에 권력자가 끼어들어 문제를 일으킨다. 어느 한쪽이 배신을 하다가 후회를 하고, 둘 중 한 사람이 죽거나 둘 다 죽는 비극으로 막을 내린다. 이에 비하면 한국 창작 오페라들은 대개 해피엔딩이다. 대부분 고전소설을 텍스트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페라 ‘서동과 선화공주’는 소재의 채택(리브레토)에서 이미 성공하고 있다. 대본은 『삼국유사』의 설화에 지나지 않지만, ‘서동요’라는 고대 시가(詩歌)문학인 향가(鄕歌)를 주제로 하고 있다. 또한 그 배경이 백제와 신라, 두 나라인 점도 흥미를 끈다. 당시 왕권은 대립되어 있었지만 백성들은 서로 이웃이었다. 그리고 두 나라의 왕실이 맺어짐으로써 화해와 평화가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고자하는 백성들의 열망이 담겨있는 노래다. 이 노래는 순식간에 두 나라에 퍼져나갔을 것이다. 오페라 ‘서동과 선화공주’는 이미 히트 곡(서동요) 하나를 끌어안고 들어간 셈이다. 이 오페라는 이러한 한국적인 주제를 보다 효과적으로 표출시키기 위해 판소리를 접목시키고 있다.
창작 오페라에서 판소리나 민요풍의 노래가 사용되는 경우는 종종 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판소리는 상당히 절제되어 있다. 간주곡이나 코러스 효과 외엔 사용치 않고 있었다. 이 경우 판소리가 오페라에서 주는 전환의 의미를 분명케 한다.
대부분의 음악적 구성은 서구의 전통적인 오페라들이 갖고 있는 스타일을 따르고 있어 초연의 낯설음을 어느 정도 완화시켜줬다. 필자는 이 오페라가 한국적이냐 서구적이냐를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보다 얼마나 접목이 매끄럽고 조화로운지, 이를 통해서 볼 수 있는 무대예술의 완성미는 어떠한지가 관극 포인트였다.
작곡자의 의도인가? 이 오페라가 제시한 미적 구조는 ‘퓨전’의 새로운 모형이었다. 이것은 ‘퓨전의 오페라’라는 뜻은 아니다. 이 오페라 속에 일어나고 있는 퓨전의 즐거움을 간과하지 말라는 얘기다. 극은 동양인데 음악은 서양이 아니라, 동양의 이그조틱(exotic)과 서양적 멜로디(melody)가 씨줄과 날줄로 잘 짜여져 서양인들에게는 이그조티시즘을, 동양인들에게는 포퓰러한 맛을 준다. 장차 세계무대도 겨냥해볼 일이다.
판소리와 현대음악의 기법, 낭만 오페라에서 볼 수 있는 우아한 멜로디의 이중창과 리골레토 제3막에서 즐겼던 4중창 기법, 라 트라비아타의 전형적인 독백 스타일, 장중하고 아름다운 멜로디의 합창이 드라마 전편에 접목되어 오페라적인 지극히 오페라적인 무대를 만들어 냈다.
물론 이 조화로운 무대예술이 100퍼센트 만족스런 것은 아니었다. 지역의 민영 오페라단이 갖고 있는 한계성도 부분적으로 드러냈다. 신예들의 과감한 발탁은 호남오페라단이 갖고 있는 벤처정신일 수 있으나 좀 더 비중있는 스타급 성악가의 출연이 아쉬웠다.
관현악은 오페라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요소의 하나이고 그 자체로 극적 재미도 줬지만, 부분적으로 소리의 명확성이 떨어졌다. ‘초연’의 경우, 정교한 관현악은 스토리 전개의 기준이며, 러닝타임의 표준이 될 것이다.
무대는 전체적으로 다양한 전환과 시도가 있었지만 오페라의 시작과 함께 위에서 내려오는 탑은 아무래도 리얼리티가 떨어졌다. 더욱이 그 탑은 너무나도 평면적이었다. 그리고 제2막의 신라 왕궁 장면에서 화려한 궁궐 면모를 보여줬더라면 어땠을까?
지역의 민영 오페라단이 갖고 있는 장점도 두루 보여줬다. 먼저 치열한 오페라 운동 정신이다. 전북을 근거로 한 호남오페라단은 20년 동안 한 해도 거름 없이 오페라를 무대에 올려왔다. 특히 수년간 창작 오페라 상연을 통해 전북 스타일을 만들어왔는데, ‘녹두장군’이나 ‘동녁’ ‘춘향’ ‘쌍백합 요한 루갈다’에 이어 ‘서동’을 발굴했다.
저예산 고효율 오페라의 추구는 프로덕션의 자생력을 키워낼 것이다. 오페라 흥행의 시대다. 돈에 좌지우지 되는 것이 오페라다. 그러다보니 막대한 자금력을 동원해 간편하게 수입 오페라로 관객을 채워가는 게 유행이 되어버렸다. 이미 수백억짜리 운동장 오페라가 수입되고, 거대한 오페라 프로덕션이 통째로 수입되어 전작을 다 보기 위해서 100만 원짜리 입장권을 구입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자칫 오페라 제작을 무감각하게 만들 수 있으며 한국을 프로덕션의 능력이 없는 국가로 전락시켜버릴 지도 모른다.
이 소용돌이 속에서 지역 캐릭터를 발굴해 오페라 레퍼토리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호남오페라단에 박수를 보낸다.
---------------------------------------------------------------------------------------------
배석호 | <객석> 기자를 거쳐 94년 재창간 된 <월간음악> 편집장 역임. 클래식 음반잡지 <CD가이드>를 창간, 통권 제71호까지 발행했다. 23년 동안 음악저널리스트로 일하면서 유럽의 주요 음악제와 세계적인 음악가들을 취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