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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 |
전북 인물작가회 전을 보고
관리자(2005-10-13 16:43:02)
신체를 통해 던지는 의문 글 I 이철량 전북대학교 예술대학 교수 익히 알고 있듯이 우리 몸인 신체가 미술가들의 지대한 관심으로 떠 오른 것은 이미 오랜 세월이 되었다. 특히 지난 수세기 동안 미술가들은 신체를 통한 어떤 세계 혹은 신체 그 자체에 대한 다양한 표현을 보여주었다. 신체의 무엇이 이처럼 오랜 시간 동안 미술가들의 관심을 사로잡았을까. 신체는 우리 자신이다. 그래서 신체를 바라보는 것은 자신을 바라보는 일이라 할 만하다. 사실 미술가들의 표현이란 지속적으로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미술가들이 그동안 자신을 바라보는 표현의 대상은 여러 가지로 나타났다. 그것이 꽃이기도 하고, 나무이기도 하였으며, 폭넓게 자연이기도 하였다. 때로는 종교가 그 것을 대신하기도 하였으며 사회가 미술가들의 표현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그 중에서도 신체를 다루는 작업은 가장 극적이며, 또한 가장 감동적인 것일 것이다. 그것은 미술가들뿐만 아니라 미술을 공유하는 모든 사람들이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열렸던 전북 인물작가회전에서 바라보는 작품들에서도 실감 있게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신체는 독특한 물성과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물성과 구조는 나름의 각기 다른 표정을 지니고 있다. 많은 미술가들은 이 구조적 아름다움이나 특성을 드러내는데 노력하여왔다. 사실 신체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어서가 아니라 그만큼 매끈하고 아름다운 형태를 보여주는 것도 없다. 적절한 볼륨과 거기서 생성되는 유려한 곡선의 아름다움은 어디에서도 찾아지기 어렵다. 그리고 그 볼륨과 곡선들은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수없이 다양한 삶의 표정들을 연출하며 미술가들을 유혹한다. 이 신체의 표정들은 스스로 연출을 감행한다.찾아질 수 없는 미로 속에 미술가들을 밀어 넣고 있는 것이 우리의 신체이다. 미술가들이 끝없이 신체를 탐미하는 것은 마치 숨겨진 그러나 익히 알고 있는 듯이 느끼는 보석을 찾아내는 작업 같은 것일 것이다. 사실 신체처럼 독특한 물성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미술가들은 생각해 왔다. 그처럼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그리고 적절한 온도를 유지하며 아름다운 빛깔을 발산하는 물체가 세상에 또 어디 있는지 모른다. 그것은 미술가들에게서 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들의 꿈의 세계이고 아름다운 상상이다. 그러나 그 상상은 항상 실재해 왔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미술가들을 통해 이 상상을 실현해 왔다. 미술가들이 끊임없이 신체에 매달려왔던 이유가 이러한 많은 대중들의 꿈을 실현하는 역할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러나 신체가 자신의 물성과 구조로서만 미술가들을 끌어들인 것은 아니었다. 신체는 어느 때부터인지 미술가들과 색다른 대화를 시작하였다. 그것은 신체의 존재성과 같은 본질적 문제에서부터 신체가 놓여있는 사회현상을 신체 스스로 말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대화를 통해 미술가들은 결국 자신의 존재론적 사고를 비롯하여 신체를 통해 사회현상을 보도하거나 은유하기 시작하였다. 신체를 통한 담론이나 혹은 신체와의 대화가 점차 규모가 확대되면서 대중들은 이제 일부 미술가들의 단순한 신체 표현의 물성적 탐구나 구조의 아름다움에서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그로인해 점차 신체만을 들여다보는 일을 포기하기 시작한 미술가들이 많아지고 말았다. 전북 미술가들 또한 이러한 시대적 대세에 크게 맞서지 않았다. 전북인물작가전이 갖는 의미는 아마도 여기에서 찾아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20세기 소위 현대미술이 잘나가던 시절에 인물을 그려내는 작가는 매우 적었다. 최근에는 인물을 그린 전시를 만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전북인물작가회는 이러한 저간의 사정을 간파하고 출발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벌써 여섯 번째의 전시이니 그들이 남긴 파장이 결코 작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번 전시를 바라보면서 인물화에 대한 새로운 애정을 표시할 만하다고 생각된다. 이번 전북인물작가회 전시를 보면서 신체는 과연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 것인가 새삼스러운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나아가 화가가 신체를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는 지는 더욱 큰 관심이었다. 전북인물작가회는 인물을 드러내는 작가들의 구성체이지만 사실 그들의 관심은 다양한 편이다. 말하자면 다양한 이질적 관심사들이 인물이라는 하나의 테마로 소집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화면에는 하나같이 인물이 등장하지만 기실 그들이 각기 말하고자 하고, 또한 인물을 통해 바라보는 목표는 매우 다르다. 그래서 그들의 통일된 언어를 찾아내기는 사실상 어렵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인물이라는 단일 주제를 설정하고서도 단체전이 갖고 있는 취약점을 극복해 내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하기야 처음부터 그러한 의지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어떤 작가는 전형적인 신체탐색에 머물러있기도 하고, 어떤 작가는 신체의 사회적 환경을 드러내려 하고 있다. 이럴 경우 두 주제는 너무나 이질적 요소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 화면에 인물을 그렸다고 해서 인물화가 될 수 없는 것은 미술의 속성이다. 어느 작가는 인물을 통해 역사를 말하고 있으며, 어느 작가는 인물을 통해 현실속의 삶의 단편을 드러내려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어느 작가는 신체의 관능미에 관심이 있고, 또 어느 작가는 단순한 화초처럼 예쁜 얼굴만을 그려냈다. 여자는 예쁜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 같다. 그런가하면 어떤 작가는 아예 신체는 모호한 것이라는 무의미를 던지고 있는 것도 있다. 단순한 감상만으로도 이들이 얼마나 다른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 그러나 거듭 언급하지만 이러한 이질적 집합이 단체전의 성격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부적절한 성격이라는 것이다. 이는 작가들의 집단화에서 나타나는 필연적 결과로 나타난다. 그러나 작가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줄곧 해서 이 집단화의 유혹에 끌려가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그것을 현실속의 힘이라고 믿는 한 이 집단의 결성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문제는 이 집단화에 대한 경계를 개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가들의 속된 말로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는 것이 시중의 빈말인가 생각해 볼만하다. 이는 굳이 이번 인물작가회에만 해당되는 예기는 아니다. 그리고 실상 이번 전시 감상의 요점은 거기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보통사람들도 일상을 살면서 자신의 생각을 끊임없이 토해내며, 자신의 독특한 목소리와 어조를 통해 전달하려고 애쓴다. 하물며 작가들에게서야 새삼스럽게 강조될 일은 아닐 것이다. 이번에 참여한 작가들은 인물을 통해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어떤 생각을 하라고 하는 것인지가 궁금하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항상 새로운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며, 그 자신만의 언어로 말하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작가들의 고민은 인물을 선택하는데 있지 않고 인물을 어떻게 자신의 이야기로 말해야 하는지 그것이 고민이라는 것이다.   -------------------------------------------------------------------------------------------- 이철량 | 전북 순창에서 태어났다. 전주신흥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15회의 개인전과 한중 현대 수묵전, MANIF전 등 300여회의 그룹초대전을 가졌다. 현재 전북대학교 예술대학 교수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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