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0 |
[막걸리] 어론자 박구기를 당지둥 띄워두고
관리자(2005-10-13 16:08:55)
어론자 박구기를 당지둥 띄워두고
글 I 최승범 시인
다 좋은 일이나, 한가지 지난날 여름지이의 흥겨운 정경들이 우리 농촌에서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은 아쉬움이다. 두레, 새참의 정겨운 풍경을 어디 그리 흔하게 대할 수 있던가. 지난날의 두레나 품앗이 때의 새참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옛 시조가 있다.
근년에 이르러 벼의 재배·관리는 꽤나 기계화되었다. 이른바 ‘영농의 과학화’에 의한 것이다. 이즈음에는 기계에 의한 벼의 직파(直播)도 권장되고 있는 것 같다. 다 좋은 일이나, 한가지 지난날 여름지이의 흥겨운 정경들이 우리 농촌에서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은 아쉬움이다.
두레, 새참의 정겨운 풍경을 어디 그리 흔하게 대할 수 있던가. 지난날의 두레나 품앗이 때의 새참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옛 시조가 있다.
다나 쓰나 이탁주 좋고 대테 메운 질병들이 더 보기 좋데
어론자 박구기를 당지둥 띄워두고
아희야 절이김칠망정 없다 말고 내어라
지은이는 채유후(蔡裕後, 1599~1660). 17세에 생원진사에 뽑히고, 벼슬이 이조판서·대제학에 이른 어른이니, 직접 무논에 들어 여름지이에 땀을 흘린 분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모내기·김매기철의 새참에는 소탈하게 한자리 끼여들어 즐길 수 있는 성품이었던 것 같다. 새참에는 으레 농주(農酒)가 따르기 마련, 일꾼들이 새참을 먹는 자리에 이 어른이 끼여든 것이다. ‘아희야 절이김칠망정 없다 말고 내어라. 그 농주 한 표주박 얻어마셔 보자’는 노래 사설로 미루어 알 수 있다.
초장에 나오는 ‘이탁주(梨濁酒)’는 쌀막걸리의 한자어다. 막걸리를 흔히 탁주·탁료(濁 )로도 일컬었다. 지난날 농주로 쓰던 막걸리는 멥쌀뿐 아니라, 있는 집에서는 찹쌀을, 어려운 집에서는 보리·밀·감자 등을 원료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찹쌀로 빚으면 찹쌀막걸리, 보리쌀로 빚으면 보리단술·보리막걸리(麥濁)로 흔히 일컬었다.
저러한 원료들로 술을 빚자면 누룩가루를 섞어야 한다. 농주용 막걸리에 쓸 누룩은 이른 봄 배꽃(梨花)이 필 무렵에 만들어놓아야 제때 맞추어 쓸 수 있고, 또 이때에 만든 누룩을 으뜸으로 쳤다. 하여, 이탁주(梨濁酒)라는 말이 일찍이 고려 때부터 있어 온 것이다.
지금이야 술통도 플라스틱 제품이 많지만, 지난날엔 나무통(木桶), 그보다 옛날엔 진흙으로 만들어 구워낸 질병이었다. 질병에 금이 가면 대를 쪼개 만든 테를 메워 사용하였고, 금이 가기 전에도 미리 요량하여 대테를 메워 쓰기도 하였다. 막걸리야 플라스틱으로 만든 병이나 나무통의 것보다도, 질병들이의 것이 제맛이리라 생각한다. 흔히, 멋이나 맛은 편리한 것에서는 오히려 그 진가가 덜하지 않던가.
‘어론자’는 어룬자·얼씨구와 같은 흥겨움에서 나온 감탄사요, ‘박구기’는 박으로 만든 표주박, ‘당지둥’은 둥둥 떠 있는 모양을 일컫는 말이다. 모양뿐 아니라 동당거리는 소리까지도 함축되어 있다. ‘절이김치’야 다 아는 겉절이와도 같은 말이다.
이 노래가 좀더 사설화하여 전해진 것도 있다.
흐리나 맑으나 중에 이탁주 좋고 대테 메운 질병들이 더 보기 좋으니
어룬자 박구기를 쓰렝둥당 지둥지둥 띄워두고
아희야 절이침챌(沈菜)망정 없다 말고 내어라
‘쓰나 다나’가 막걸리의 맛을 말한 것이라면, 여기서의 ‘흐리나 맑으나’는 막걸리의 빛깔과 농도를 말한 것이 된다. ‘당지둥’보다도 ‘쓰렝둥당 지둥지둥’이 둥둥 떠 있는 모양의 표현으로는 흥을 더해주고 잔재미를 더 느끼게 해준다. ‘침채’는 김치와 같은 말.
앞·뒤 시조의 어느 것을 읊조려보아도, 지난날 모내기나 김매기철, 농부들이 새참 먹는 정경이 어려든다. 못밥이나 새참에는 지나가는 길손도 불러들이는 농촌의 인정이었다.
농촌 출신의 소설가 채만식(蔡萬植)의 수필 한 구절이 떠오르기도 한다.
여름철 남방 농촌에서 많이 보는 풍경인데 점심 때쯤 되어 논에서 김을 매던 농군들이 새참으로 논두럭에 앉아 막걸리들을 먹는다. 뻑뻐억한 막걸리를 큼직한 사발에다가 넘싯넘싯하게 그득 부은 놈을 처억 들이대고는 벌컥벌컥 한입에 주욱 다 마신다. 그리고는 진흙 묻은 손바닥으로 입을 쓰윽 씻고 나서 풋마늘 대를 보리고추장에 꾹 찍어 입가심을 한다. 등에 착 달라붙은 배가 불끈 솟고 기운도 솟는다.
수필의 제목은 「불가음주 단연불가(不可飮酒斷然不可)」, 제목도 멋스럽지만, 농부들이 막걸리 마시는 정경 표현도 재미있다. 채만식의 본관이 평강(平康)이거니, 채유후의 후예일시 분명하다. 시조와 수필로 표현양식이 다르고, 한 300년 시대적인 차이가 있는데도 새참에 대한 두 분의 흥결은 같은 것을 볼 수 있다. 용하다.
아무튼 지난날의 농부들과 막걸리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것이었다. 어느 때의 사설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다음 「농부가」의 한대목에서도 막걸리에 대한 찬양을 볼 수 있다.
와준(瓦樽)에 거른 탁주 박잔(朴盞)에 가득 부어
청풍에 반취하여 북창하에 누웠으니
무회씨(無懷氏)적 백성인가 갈천씨(葛天氏)적 사람인가
망중한의 심경이다. 오후의 새참 때엔 막걸리 한바가지 들이켜고 잠시 녹음아래 쉬는 것도 다음 일의 효율을 위한 것이 된다. 한여름 오후 세시경의 햇볕은 가장 기승을 부리기 때문이다.
뙤약볕 아래 무논에 들어서 하는 일이 어찌 쉬운 일이었겠는가, 그야말로 피땀을 쏟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옛 농부가를 보면 그 대부분이 경쾌한 흥결이다.
불볕을 등에 지고 진흙 물에 들어서서 이 농사를 이리 지어 누구하고 먹자 하노
얼널널 상사디여 어여루 상사디요
늙은 부모 봉양하고 젊은 아내 배 채우고 어린 자식 길러내서 사람 노릇 하자꾸나
전라도 지방에서 불렸던 「농부가」의 사설이다. 얼마나 밝고도 튼실한 사설인가.
두레나 새참의 풍경을 흔히 대할 수 없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거기에 얽힌 옛 노래들도 사라져가고 있는 게 오늘날 우리의 농촌이다.
문제는 농촌의 실의에 있다.
『시조에쎄이』(창작과 비평사 , 1995)의 ‘흥겨운 농촌 정경은 사라지고’를 재수록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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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범 | 1931년 전북 남원에서 출생했다. 저서로 시집『후조의 노래』, 『난 앞에서』, 『천지에서』와 수필집 『한국의 소리를 찾는다』, 『풍미 산책』, 『거울』, 『3분 읽고 2분 생각하고』, 『조선 도공을 생각한다』, 『시조 에세이』가 있다. 정운시조상, 현대시인상, 학농시가상, 가람시조문학상, 황산시조문학상 등 다수의 수상 경력이 있다. 재 고하문예관 관장과 전북대학교 국문과 명예교수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