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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 |
[막걸리] 만인이 사랑하는 술 ‘막걸리’
관리자(2005-10-13 15:55:21)
만인이 사랑하는 술 ‘막걸리’ 글 I 박록담 <한국전통주연구소장> 탁주란 자전풀이 그대로 흐린 술, 탁한 술, 그리고 알코올도수가 낮고 맛이 박한 술을 가리킨다. 술이 익으면 마실 사람에 따라 맑게 거르기도 하고 반대로 흐리게 거르기도 한다. 따라서 맑게 거른 술을 청주라고 하고 흐리게 거른 술을 탁주라고 하는데, 이는 술의 빛깔에 따른 분류일 뿐, 청주나 탁주나 한 독에서 얻어지는 까닭에 같은 술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인들에게 우리나라 전통주의 종류를 꼽으라고 하면, ‘막걸리’ 아니면 ‘동동주’, ‘소주’가 전부인 것처럼 말한다. 필자의 연구소를 찾거나 문의를 해오는 사람들의 다수에게서 듣는 “막걸리나 동동주 한 가지만 배우는 것으로 만족하겠다”는 말이 그 예증이다. 그래서 “동동주가 청주(淸酒)입니까 탁주(濁酒)입니까?”라고 되묻는데, 절대다수는 “시중에서 보는 희멀건 술”이라고 한다. 그때 나는 다시 “그렇다면 잘못 찾아왔습니다. 나는 탁주나 막걸리를 빚는 법을 모르는데, 막걸리와 탁주가 어떻게 다릅니까?” 하고 물으면, 선뜻 시원한 대답을 못하고 되려 의아해하거나 자신의 과문(寡聞)한 소치라고 생각하여 부끄럽게 여기는 듯하다. 탁주란 자전풀이 그대로 흐린 술, 탁한 술, 그리고 알코올도수가 낮고 맛이 박한 술을 가리킨다. 술이 익으면 마실 사람에 따라 맑게 거르기도 하고 반대로 흐리게 거르기도 한다. 따라서 맑게 거른 술을 청주라고 하고 흐리게 거른 술을 탁주라고 하는데, 이는 술의 빛깔에 따른 분류일 뿐, 청주나 탁주나 한 독에서 얻어지는 까닭에 같은 술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물을 적게 넣고 빚은 술은 그 양도 적고 걸쭉해지므로 이때 물을 쳐가면서 거르게 되면 잘 걸러지고 양도 늘어나게 되는데, 술찌꺼기의 쌀밥알과 누룩 속의 밀가루까지 알뜰하게 걸러내기 위해서 ‘마구 주물러대고’ ‘힘껏 짜서’ 거르는 술이 막걸리이다. 결국 막걸리와 탁주는 어떠한 술 빚기에서도 얻을 수 있는 까닭에 특별히 막걸리나 탁주를 빚기 위한 방문(方文)은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처음부터 탁주를 빚고자 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농가에서 농사일과 같이 가용(家用) 목적으로 한꺼번에 많은 양의 술이 필요할 때 쉽게 빚어 마시기 위한 탁주 제조법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대개가 소위 ‘동동주’라고 불리는 단양주법의 탁주 제조법이 등장하면서 본디 청주였던 동동주가 탁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고, 과거 배고팠던 시절에 양을 늘리기 위해 물을 많이 탄 막걸리를 즐기게 되면서 탁주의 한 가지였던 막걸리가 탁주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술 빚는 일은 ‘대사(大事)’라 할 만큼 복잡하고 힘든 것으로, 술을 빚어 본 사람이면 누구라 할 것 없이 보다 간편한 방법의 술 빚기를 추구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여러 번에 걸쳐 빚는 술보다 한 번으로 끝내는 술빚기가 선호되었을 것이고, 한 번 빚는 술 가운데서도 동동주(부의주)처럼 씻어 불린 쌀을 별다른 가공작업 없이 시루에 안쳐 찌는 방법이 간단하고, 또 투입되는 쌀의 양에 비해 보다 많은 양의 술과 맑은 술을 얻을 수 있으므로, 한 번에 술빚기가 이루어지는 동동주가 유행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 술을 빚다 보니 점차 똑같은 방법의 술빚기라도 보다 많은 양의 술을 얻고자 했을 것이고, 본래의 제조법보다 많은 양의 물을 넣고 빚게 되면 발효과정에서 고두밥알이 ‘동동’ 떠오르게 되는데, 술 빚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과거에 한자를 공부할 기회를 별로 갖지 못했던 이 땅의 여인들이었던 관계로 한자어의 ‘부의주(浮蟻酒)’라는 술 이름은 잃어버리고, 발효과정에서 나타나는 고두밥알이 떠오르는 현상을 두고 ‘밥알이 동동 떠있다’고 해서 ‘동동주’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그런데 사실 부의주에는 떠오른 밥알이 없어야 하니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부의주와 같은 발효주는 발효와 숙성이란 과정을 거치는 동안 술이 다 익게 되면 떠올랐던 밥알이 다시 가라앉으면서 맑은 술이 고이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밥알이 술 속에 섞여 있다는 사실은 ‘덜 익은 술’이거나, 이미 제조된 술에 고두밥알을 섞어 넣은 것이 분명하다. 덜 익은 술은 탁할 수밖에 없다. 또 마신 후에는 헛배부름과 숙취 등의 부작용이 따를 것이고, 술에 고두밥알을 섞은 것이라면 밀가루로 빚은 가짜 찹쌀술을 사 마신 꼴이니 비싼 술값을 치룬 셈이다. 우리나라의 술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술이 바로 탁주라고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술이 빚어지기 시작한 연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고삼국사>에 천제의 아들 해모수가 웅심연가에서 하백의 딸 세 자매에게 미리 마련해 둔 술을 마시게 하였는데, 취하여 돌아가지 못하게 하고 큰 딸 유화와 인연을 맺어 주몽(동명성왕)을 낳았다고 한다. 또 <위지(동이전)>에  마한의 풍습에 5월 밭갈이와 10월 수확기가 되면 신에게 제사하고 주야로 주연을 베풀고 가무를 즐겼다고 한 기록으로 미루어, 삼국시대 이래 술 빚는 기술이 발달되어 이미 ‘청주(淸酒)’와 ‘탁주(濁酒)’의 구별이 시작되었다고 하니, 탁주의 역사를 가늠할 수 있다. 탁주가 먼저인지 청주가 먼저인지는 확신할 수 없으나, 술이 빚어지는 과정과 방법으로 미루어, 탁주가 청주보다 먼저 빚어졌을 것이란 추측을 할 수 있다. 술이란 본시 곡물을 익힌 것에 누룩과 물을 섞어 발효시킨 것인데, 술이 익어 걸러낼 때 자배기나 옹배기 같은 그릇에 체를 이용, 흐리고 뿌옇게 만들면 탁주가 되고, 술독에 용수를 박아 맑게 걸러내면 청주가 된다. 그런데 오랜 역사를 가진 술 빚는 방법 가운데 몇 가지 예를 보면, 확실히 탁주가 먼저 빚어졌을 것이란 짐작이 가능하다. 실례로 곡물을 죽이나 백설기 형태로 만들어 술을 빚는 방법이 가장 오래 된 술 빚기 방법으로 전해오고 있는데, 그 중 일일주(一日酒), 삼일주(三日酒), 지주(旨酒), 계명주(鷄鳴酒) 등과 같이 하룻밤 사이 또는 며칠 만에 익히고 술 빚는 일을 한 번으로 끝내는 단양주법의 술 가운데는, 죽이나 백설기를 지어 누룩과 섞어 빚는 경우가 많고, 이들 술은 숙성이 끝나 뜰 때가 되어도 걸죽한 죽 형태의 탁주이기 때문에 물을 타서 막걸리로 걸러 마시게 된다. 이런 종류의 술은 원시시대의 술처럼 알코올 도수도 낮고 맛과 향도 떨어진다. 그러던 것이 술에 대한 기호가 점점 바뀌고, 더불어 술 빚는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알코올 도수도 높고, 맛과 향기가 좋은 술을 찾게 되면서 청주와 탁주를 구별하게 되었을 것이라는 것이 나의 추론(推論)이다. 탁주류는 일반 탁주류와 고급 탁주류로 나누는데, 일반 탁주류는 ‘탁주’, ‘막걸리’, ‘재주(滓酒)’, ‘회주(灰酒)’, ‘탁배기’ 등으로 불러 왔다. 반면, 고급 탁주류는 ‘이화주(梨花酒)’, ‘추모주(秋   酒)’, ‘혼돈주(混沌酒)’ 등 고유한 이름으로 불러왔으며, 별도로 누룩을 만들어 사용하기도 하고, 재료도 쌀이나 찹쌀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탁주류는 빈부·신분의 귀천을 막론하고 전국적으로 빚어 즐김으로써 우리 민족의 고유한 술로 자리매김 되었는데, 감미(甘味)와 산미(酸味), 고미(苦味), 삽미(澁味)가 잘 어울려 감칠맛을 주며, 특히 청량미가 뛰어나 땀 흘리고 일한 뒤의 갈증을 씻어주는 힘이 있어, “만인(萬人)의 술”로 불리어 왔다. 탁주가 우리 민족의 고유한 술이 된 증거 가운데 하나가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러 왔다는 사실이다. 그 예로 술 빛깔이 흐리고 탁하다고 하여 ‘탁배기’라고 부르는 것을 비롯하여, 마구 거른 술이라고 하여 ‘막걸리’, 집집마다 담그는 술이라고 하여 ‘가주(家酒)’, 술 빛깔이 희다고 하여 ‘백주(白酒)’, 농가에서 농사지을 때 필수적인 술이라고 하여 ‘농주’ 등 다양하다. 이러한 탁주가 지금과 같이 신맛이 세고, 희멀건 상태의 박주(薄酒)로 변질된 것은 50여 년 전부터이다. 1950년대 접어들어 만성적인 식량부족에 시달리게 되면서부터 쌀을 대신하여 밀가루와 옥수수, 감자, 고구마 등을 원료로 술을 빚게 되었고, 특히 밀가루로 빚은 술은 신맛이 세어 감미료 등으로 조미를 하고 있다. 지금도 밀가루나 옥수수를 이용해 만든 막걸리는 물을 많이 타서 거른 탓에 금세 앙금이 있게 마련이어서, 막걸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손가락이나 젓가락으로 휘저어 마시는 웃지 못 할 풍경을 목격하게 된다. 1977년부터 쌀 생산량이 늘어나자 쌀막걸리 생산이 허용되었지만, 술 빚는 법의 규제와 획일화된 공정으로 옛 맛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전통주는 으레 시큼하고 헛배 부름과 트림, 숙취 등을 부른다는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되면서, 소비자들은 값싸고 알코올도수가 높은 소주를 찾거나 ‘차라리 비싸더라도 양주를 마시겠다’는 등 기호를 바꾸고 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전통주로서의 탁주와 막걸리는 본디 상품화를 위한 술이 아닌, 제주와 손님접대, 농사일 등에 쓰기 위해 상비해두는 가양주여서, 시중의 막걸리처럼 금세 앙금이 앉지도 싱겁지도 않거니와, 일체의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아 건강에 좋고, 감칠맛이 뛰어난 것이 특징이자 장점이다. 특히 좋은 쌀로 솜씨를 내어 직접 손으로 빚기 때문이다. 고려대학교 한국영양문제연구소의 보고에 의하면, “특히 막걸리 등 탁주에는 다른 술에는 없는 콜린, 메티오닌, 엽산, 비타민 B1·B2 와 단백질이 들어있어, 술 마신데 따른 지방간 생성을 억제하는 효과를 나타내며, 보통 음주 후 혈당치가 떨어져 생리에 이상을 초래하여 건강에 무리를 주게 되는데, 탁주를 마셨을 때는 혈당치가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 전통주는 곡물과 누룩으로 빚기 때문에 발효가 진행되는 동안 효모에 의해 항생물질이 생성되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막걸리 등 탁주를 즐기는 사람들에게서 성인병이 적고 장수자가 많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전통주를 즐기고자 하는 동호인들로 구성된 ‘탐주회’, ‘나라사랑 막걸리 사랑’이라는 모임도 있고, 전문적으로 전통주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모임체인 ‘술방사람들’은 오는 12월 개인별 특기주와 다양한 종류의 전통주 발표회를 준비하고 있다 한다. 요즘 거론되는 전주의 ‘막걸리거리 조성’ 움직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내에서는 보기 드물게 과거 선술집이나 잔술을 팔던 모주집 형태의 주막들이 밀집해 있는 데다, 보다 싼 값으로 푸짐한 안주와 막걸리를 즐길 수 있어 막걸리 애호가들로 붐빈다니, 전국의 유일한 명소로 부상될 전망이다. 사실, 과거 몇 십 년 전만 하더라도 흥성하던 서울의 홍제원과 종로 광화문 뒤편의 피맛골을 비롯하여 서울서 인천 가는 길목의 ‘오류동’과 ‘천안삼거리’, 충청도에서 경상도로 넘어가는 이화령 너머의 속칭 ‘다자고 고개’, ‘죽령주막’ ‘문경새재’ 등 이름난 주막거리들이 사라져버린 지 오래여서 전주의 막걸리거리 조성에 대한 기대는 사뭇 크다. 이는 막걸리의 활성화뿐만 아니라, 우리 전통주의 위상과 기반을 착실하게 다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 박록담 |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객원교수 및 한국전통주연구소 소장으로, 부설 ‘박록담의 전통주 교실(록담일반문화센터)’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18년간 국내 전통주 및 가양주에 대한 현장 조사와 발굴 활동에 전념하였으며, 요즘은 사라진 전통주 재현과 대중화 운동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광주일보 신춘작품상(시 부분) 및 월간문학 신인작품상(시조 부문)에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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