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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9 |
희망의 상상력
관리자(2005-09-08 19:16:17)
희망의 상상력 한적한 산길에서 낚싯대를 들고 가는 사람을 만났다고 합시다. 당신의 대뇌 피질에서는 어떤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될까요? “저것이, 저것이, 간첩아녀? 흐미, 그럼, 돈이 얼마여.” 그래서 당신은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떨리는 손을 내밀어 문자를 찍기 시작합니다. 간첩의 독침이 떠올라 음성으로 신고하다가는 자칫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거의 임사체험에 가까운 희열을 느끼며 당신이 문자를 찍는 그 순간에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간첩신고가 아직도 113인가? 문자 신고도 포상에 포함되는가? 아니, 113으로 문자가 들어가기는 하나?” 이 때 당신이 취하는 행위 일체는 어떤 동기에서 일어날까요? 리철진처럼 순수하고, 집요하고, 꼭지가 덜떨어진 간첩이 실세계에 나타날 것이라고 믿으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지어낸 얘기니만큼 걱정일랑 괄호 안에 넣고 마음 편하게 이야기해 봅시다. 포상을 받자마자 어느 틈에 기자가 찾아오고 방송국 카메라가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몇 번 연습한 다음,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신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목청을 가다듬으며 말씀하시렵니까? 저는 간첩 잡는 일처럼 전문가가 필요한 작업은 전문가에게 맡기고 편하게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세금을 냅니다. 뿐만 아니라 포상금을 탐내어 시민이 시민을 감시하는 제도가 공동체의 안녕을 심각하게 저해한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포상금은 포상금 사냥꾼에게 돌아가고 납세자에게는 서로를 감시하는 습관만 남게 됩니다. 친일매국노에 대하여 포상신고제를 실시하자는 어느 인사의 즉흥적 제안에 저는 반대했습니다. 친일이 간첩질보다 덜 위험하기 때문이 아니라 감시를 조장하는 발상의 위험을 더 염려하기 때문이었습니다. 60주년을 맞는 광복절이 지나갔습니다. 전후 세대인 저에게는 해방의 감격에 대한 추억이 없습니다. 환갑을 맞은 해방동이 어른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은퇴하신 제 선생님 가운데 한 분은 그 무렵 소학교에 다녔답니다. 항복 방송의 소식을 듣고, “아, 이제, 우리나라 일본이 망했구나, 어떻게 하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물론 선생님은 그것이 오류임을 곧 깨닫게 됩니다. 그렇지만 “아, 일본이 망했구나, 이렇게 쉽게 망할 줄은 몰랐는데, 이제 누구를 섬겨야 하나,” 이렇게 생각했던 친일인사들은 변절의 관성에 편승하여 별로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한국 현대사에서 식민, 분단, 독재의 질곡만을 본다면 절반의 진실에도 미치지 못한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식민, 분단, 독재에 맞선 독립, 통일, 민주의 흐름이 바로 역사의 본류였습니다. 그 힘은 처음에는 미미하여 예정된 실패처럼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거대한 제국이 전단 한 장에 호들갑을 떨고, 공고한 권력이 돌팔매질 하나에도 그처럼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던 것을 되새겨 봅시다. 저항과 변혁을 현실의 가능성으로 바꾸기 위하여 무엇보다 소중했던 것은 아마 희망의 상상력이었을 것입니다. 제국과 권력은 희망의 싹이 얼마나 크게 자라날 수 있는가를 우리보다 훨씬 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광복절을 맞아 태극기를 걸면서 또 이렇게 지나가다니,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다 경술국치일에 친일인사명단발표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무의미한 과거사 캐기라는 비난이나 국론 분열의 우려, 경제를 먼저 걱정해야 한다는 충고 등등에 대하여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형평성 시비에 이르면 정말 변하지 않는구나, 라는 탄식이 절로 나옵니다. 이번 기회에 저는 우리 지역의 인사 가운데 누가 포함되어 있는지, 그 분들이 무슨 일을 어떻게 했는지, 무슨 사연이 있는지, 조용히 살펴보려고 합니다. | 정철성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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