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5 | [시사의 창]
[전북의 땅과 문화, 사람들 - 순창]
"사라져 가는 역사를 놓칠 수 없다"
향지사(鄕地社) 양상화 회장
황경신 문화저널 기자(2003-04-07 15:22:59)
어릴 적 보이던 그 많던 고향의 유적과 유물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순창'에 대한 기억들을 그곳에 사는 사람들 조차 놓쳐버리고 있던 때,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찾기 위해 뒤늦게 고향땅을 찾은 향지사(鄕地社) 회장 양상화(70세)씨.
고향에 다시 발을 들여놓은지 9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그는 일흔이라는 연로한 나이에도 순창땅 구비구비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열성이다.
"임진왜란과 6.25 동란을 겪으면서 순창의 많은 유적은 거의 손실됐습니다. 남아있는 유적들은 복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고, 내려오는 역사와 전설들이 일제시대를 넘어오면서 많이 왜곡된 채로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이러다간 순창의 모습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기록작업에 나서게 됐습니다."
향지사와 양회장은 그 첫 번째 작업으로 순창의 지명찾기에 나섰다. 3년의 답사 작업과 집필기간을 거쳐 완성된 책에는 순창의 문화와 사람이 오롯이 담겨있다.
단순히 지명과 지명의 유래만을 기록한 것이 아닌, 지명을 통해 그곳의 문화를 읽어보는 일과 지명과 문화 모두 사람이 일구어낸다는 생각에 토착 성씨를 찾아내는 작업까지 보태졌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두 번째 작업으로는 순창의 물과 산을 천천히 따르고, 거슬러 올라 남아있는 문화유적과 유물들을 꼼꼼히 담아낼 예정이다.
물론 양회장 혼자의 힘으로는 부치는 일. 향지사는 각 면마다 편집위원을 두고 자료를 수집하고, 활동하고 있다. 마을 구석구석을 잘아는 각 면의 편집위원들이 낚아내는 정보는 그래서 더욱 생생할 수 밖에 없다.
빼곡히 들어선 답사일정을 숨가쁘게만은 여기지 않고 노후를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위해 '저당' 잡혀 놓았지만 그런 양상화씨를 안타깝게 하는 것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기껏해야 지금은 금석문자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순창의 많은 유적들은 흔적을 감춰버렸기 때문이다. 전국에서는 유일하게 순창에만 남아있는 '가마탑'의 왜곡된 전설을 바로 잡고, 인계 세종마을의 석룡사 석탑의 작은 흔적이라도 하루가 늦기 전에 담아둬야 한다.
애써 옛 자료들과 기억을 더듬어 찾아간 곳의 유적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고, 그저 구전으로밖에는 기록을 남길 수 없는 애석함은 이루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그는 향지사와 자신의 일을 더욱 미룰 수가 없다. 언젠가는 그 구전으로 전해오는 순창의 크고 작은 역사마저 사라질 날이 멀지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