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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9 |
‘정지’와 ‘부석짝’
관리자(2005-09-08 17:16:06)
‘정지’와 ‘부석짝’ 6,70년대 혹은 그 이전에 유년기를 보낸 분들에게 ‘정지’와 ‘부석짝’이라는 단어는, 듣기만 해도 유년의 아득한 추억 속으로 빨려 들게 되니까 이 단어는 마치 과거로 떠나는 시간 여행의 단추 같은 어휘입니다. 팔월 보름 즈음이면 이 ‘정지’와 ‘부석짝’은 유난히 바빠집니다. 부뚜막, 찬장, 물항, 나뭇간, 실겅, 부지깽이 등도 정지와 더불어 떠오르는 소품들입니다. 어느 것 하나에도 추억이 묻어 있지 않은 게 없지만 오늘은 ‘정지’라는 말과 ‘부석짝’이라는 말과 관련하여 생각해 볼 작정입니다. ‘정지’라는 말이 함경도 지방에서는 겹집에 있는 정주간(鼎廚間)으로 불린다고 합니다.1)  정주간(鼎廚間) 그러니까, 솥을 걸어두고 음식을 하는 공간을 말합니다. 표준어로 하면, 부엌에 해당하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함경도 사람들은 이곳을 방처럼 만들어서 이곳에서 손님도 맞이하고 온 가족들이 식사도 하며 잠을 자기도 하는 중요한 방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 등지로 내려오면 음식을 만드는 공간으로 그 기능이 분화되고 발음도 ‘정지’ 혹은 ‘정제’ 등으로 불립니다.   ‘부석짝’은 중세국어에는 ‘부   ’에서 비롯되었는데 ‘부   ’은 중세국어 ‘   ’에 ‘-업’이 합해진 말입니다.2) 중세국어 ‘   ’은 지금의 ‘불’과 관련되어 있는 단어입니다.3) 또한 ‘부석짝’은 ‘부   ’에 ‘짝’이 붙어서 된 말입니다. 표준어에서의 ‘부엌’이라는 말도 ‘부   ’에서 변화한 말입니다. 그러니까, ‘부   ’이란 말은 엄밀하게 말해서 표준어의 ‘부엌’이라는 말로 의미가 확대되기 이전에는 불을 지피는 공간의 의미가 있었던 것이며, 그것이 전라도 방언에 여전히 남아 있는 것입니다. 즉 전라도 말 ‘정지’는 표준어 ‘부엌’에 해당하고, ‘부석’은 ‘아궁이’에 해당합니다.4)   ‘정지’와 ‘부석짝’ 하면, 저는 이 말 속에서 어릴 때 정경이 하나하나 떠오릅니다. ‘지푸락’ 다발 ‘끄서다가’5) 쪼그리고 앉아서 불 때던 생각이 납니다. 바람이 부는 날이면 ‘낸내’6) 때문에 눈물 콧물 흘리기도 했고, 한여름에 불 때는 일은 또 얼마나 지겨운 일이었던지. 그렇지만, 시커먼 가마솥에다 해서 먹는 밥은 정말 맛이 있었습니다. 쌀밥은 또 얼마나 귀했는지. 그래도 ‘소두방’7) 열면 ‘푸우’하면서 하얀 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모양은 지금도 넉넉하게만 느껴집니다. ‘깜밥’은 또 어떻습니까, ‘눌은밥’은 정말 기막히게 맛있지요. ‘깜밥’, ‘눌은밥’도 참 재미있는 말입니다. 이 말은 표준어로는 ‘누룽지’쯤으로 불릴 수 있을 것입니다.8) 그런데, 어머니께 “누룽지좀 해 주세요?”하면, 무엇을 해 달라는지 헛갈릴 게 분명합니다. 이 말로는 ‘깜밥, 눌은밥’을 구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깜밥’과 ‘눌은밥’도 다 이치가 있는 말입니다. 예전에 가마솥에 밥을 하다보면 바닥에 밥이 눌곤 했지요. 그 누는 밥이 아까워서 예전 어머니들은 바닥에 먼저 보리를 깔고 그 위에 귀한 쌀을 얹어 밥을 했답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깜밥’은 쌀 밑에 ‘깐 밥’이고, ‘눌은밥’은 밥을 다 해 놓고난 결과 바닥에 ‘눌어버린 밥’입니다. 그러고 보면, ‘정지’와 ‘부석짝’ 그리고 ‘깐밥’과 ‘눌은밥’은 표준어에 비해 그 의미와 이치가 선명하게 남아있는 단어들인 셈입니다.   옛날 어머니들은 부뚜막 간수를 아주 정갈하게 하셨지요. 불 때고 나면 재가 날려 부뚜막이 새까매지기 마련인데 행주 여러 차례 빨아가며 꼭 부뚜막을 정갈하게 간수하곤 하셨지요. 그게 단순히 살림솜씨 덕만은 아닌 듯합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 부뚜막이 조왕신을 모시던 곳이기 때문입니다. 조왕신앙은 민속신앙의 하나인데, 조왕은 불의 신이고, 가족의 수명과 안전을 관장하는 신입니다. 그 양반이, 음력 12월 23일에 승천해서 옥황상제에게 그 집에서 있었던 일을 낱낱이 고하고 설날 새벽에 제자리로 돌아온답니다. 그런 양반을 함부로 대할 수야 없지요. 간혹 부뚜막에 앉았다가 불벼락을 맞곤 했는데 그 신성한 장소에 엉덩이 함부로 붙였다간 ‘죄로 가기’9) 십상일 탓이겠지요. 그런 사실을 알고 나니,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는 속담의 의미도 새롭게 다가오는군요. 살다보면, 잘못한 일도 있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그럴 때 우리 조상님들은 ‘부석짝’에 엿을 발라 두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엿이 끈적끈적하니까, 부뚜막 신인 조왕님이 옥황상제님에게 쉽게 가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기도 하고, 혹 갔다 하더라도 입에 엿을 넣고 있으면 말을 쉽게 하지 못할 것이라는 귀여운 상상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참 재미있는 상상이지요. 아무튼 조상님들은 누군가에게 검사를 맡으면서 살아가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밀란 쿤테라라는 작가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소설 속에서 ‘관객이 있는 것처럼 사는 삶’은 정직해 질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하더군요. 우리 조상님이 그렇지 않았을까요. 진실한 태도로 사람을 대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던 그 소박한 우리 할머니, 어머니들. 시대가 어수선할수록 그런 분들이 그리워집니다. ‘정지’와 ‘부석짝’, ‘깐밥’과 ‘눌은밥’은 나름의 합리성을 띄고 있는 전라도 방언들입니다. 부뚜막과 관련된 속담이나 행위들도 그 배경을 알고 나면 그 의미를 분명하고 생생하게 받아들 수 있습니다. 방언은 나름대로의 이치와 삶의 자취들이 소중하게 배어 있는 우리의 문화 유산 가운데 하나이며 방언 또한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애정을 가질 수 있는 것 아닐까요. ‘부석짝’에 불 때고 살던 시절을 생각하며, 이번 추석에는 할머니 손 한 번 잡아드리고, 어머니도 한 번 보듬아 드리고, ‘꾀복쟁이’ 친구들과도 술 한 잔 씩 나누면서 전라도 말 한 번 정답게 써 보시면 어떨까요. “아까막새, 너 머라고   냐, 그 때 내 패딱지10) 니가 다 가지갔다고? 하-따, 이놈 무선 놈이고만 인자사 그런 말을 허고잉. 야-, 그리도 그런 얘기 헝게 겁나게 좋다잉.”   | 언어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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