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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9 |
친절한 금자씨
관리자(2005-09-08 17:15:33)
징한 배우, 징한 감독 복수의 시작은 일단 그 고통을 잊지 않는 것. 죽도록 기억하는 것. 가끔 <양들의 침묵> 같이 새끼양의 울음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지만, 어쩌랴, 시간은 칼날에 녹을 내린다. 그리고 공소시효는 서서히 다가오고. 하여, 애써 외면하거나 수치심을 안고 사는 편을 택하는 것이 보통사람. 그래서 복수를 실천하는 사람은 일단 대단한 인간이다. 마른하늘이 날벼락을 내리는 법은 없기에 악한을 벌주는 것 만한 카타르시스가 어디 있겠는가? 눈에는 눈으로, 망치에는 망치로. 그 복수가 산 사람을 전율시키는 신체에 대한 형벌의 집행일 때 그 흥미감은 배가된다. 똑똑한 사람보다 따뜻한 사람을 원하는 곳이 감옥 아닌가. 이 친절한 죄수의 햇빛은 상처 난 여인들을 따스하게 감싸지만, 미인의 성실성에는 독이 묻어있다. 이 친절은 감옥을 작은 하늘나라로 만들지만 사실 비용절감일 뿐. 왜? 복수에는 돈과 시간이 많이 들기에. 그녀의 친절함은 코스트다운과 네트웍의 형성과정이므로 분명 선의가 아니다. 13년 동안 금자씨의 피가 매우 나쁜 상태에 놓였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있었으니 그가 전도사 양반. 복수가 곧 자존심이며 동일감인 금자씨 마음에 들어있는 지옥을 모르는 전도사는 두부를 먹이려 한다. 그러나 큰굿을 앞둔 무정가인(無情佳人)이 내 뱉는 말. “너나 잘 하세요.” 조금씩 쳐지기 시작한 볼이 위태롭긴 하지만 젊음을 유지하고 있는 하얀 얼굴의 장금이는 빨간 아이새도우를 발라도 이쁘다. 감독은 촌스럽게 가자고 물방울무늬 원피스를 입혔을 텐데, 그녀가 입으면 청색 수의나 노란색 모범수복도 패션이 된다. 거의 여신이다. 가죽 자켓에는 검은 배경, 파란 코트 뒤에는 청색 조명, 죄수복에는 따뜻한 조명도 한 몫 했을 터. 우리는 이 징한 여자의 친절이 악랄해지기 위한 위선임을, 그녀 또한 악한임을 잊게 된다. 이 교묘함은 뭔가? 어디서 오는가? 미모는 자본을 뛰어넘기에, 예쁘면 모든 게 용서가 된다고 믿기에. 이 헷갈림은 영화의 구성상 금자씨의 친절과 잔혹성에 일관성이 부족한 것까지도 잊게 만든다. 복수의 흉기가 될 총의 제작을 주문하면서 “예뻐야 돼. 무조건 예쁜 게 좋아.”라고 말하지 않던가. 너나 잘 하시라는 존칭과 비존칭의 혼합에 이은 친절과 잔혹의 착시를 능청스럽게 구사하는 박찬욱, 징하다. 이 부조리한 복수굿은 화려한 스타일을 고집하다보니 분명 내러티브가 딸린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 모호함으로 가는 거다. 금자씨 몸에 금빛 아우라를 발하게 하거나 개의 몸을 한 백 선생 장면은 살바토르 달리의 그림을 닮았달까. 거기다 복수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유괴된 가족들의 엇박자 소동극도 복수의 주체가 모호해지는 과정 아닌가. 이게 뭔가.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처럼 이것은 현실이 아닌 영화라고 말하는 듯. 그래도 부족한 리얼리티를 뒷받침하여 끌고 가는 힘은 역시 감독의 호흡에 있다고 봐줄 만하다. 너무 길지도 짧지도 않게 컷과 컷을 붙이는 박찬욱의 숨 고르는 솜씨는 알아줄 만하다. 사실 플래시 백 연결의 부족함을 때우는 것은 친절한 세원씨의 해설과 비발디 선율이기도 했지만. 연기력이 많이 떨어져 매끄럽지 못했던 단체복수극은 박찬욱의 기막힌 상상력의 발로(서럽게 맞아 본 필자가 꿈꾸었던 복수극이란 말이다)일텐데 소동극으로 처리되어 아깝다. 더불어 백 선생 캐릭터도 한니발 렉터나 박해일 같은 악당을 만들지 않고는, 쯧쯧. 물론 백 선생이 주는 이미지에는 칠팔십 년대 정치적 인물(정말 백 선생처럼 단체로 당해야 할 놈이 있을 것이다)에 대한 메타포도 있을 것. 이것도 관객에게 알아서 읽으라고 시치미를 떼는 감독. 죄와 벌이라는 과제를 두고 신의 영역인 인과의 성찰보다는 한 계단 내려와 스타일리시한 폭력의 휘두름을 택한 박찬욱! 복수 3부작을 통틀어 그 어떤 희망도 보여주기를 꺼리며 사형(私刑)의 윤리학으로 복수의 끝을 마감한 그는 앞으로 어디로 튈까? 이제 그의 따뜻함을 보고 싶다.   PS. 숨은 그림 찾기: 김현희, 정순덕, 김선일, 비스콩티의 <베니스에서의 죽음>의 소년 타지오. 진짜 임수경. butgoo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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