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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9 |
여승에게서 가지취 내음새가 났다
관리자(2005-09-08 17:14:36)
여승에게서 가지취 내음새가 났다 내가 아주 아주 젊었던 시절, 그림 배운다며 유명 화가들을 따라다닌 시절이 몇 년 있었다. 유화를 배우던 동호인 몇몇이 동아리를 만들고 그 이름 짓기를 ‘일요화우회’라 했다. 일요일만 되면 언제나 화구를 메고 시골을 찾아갔다. 하루해가 그을리다가 어느덧 보랏빛 황혼이 들녘을 덮어가고 있었고 토담위로 키 솟은 감나무에는 감들이 벌써 가을의 풍광을 붉은 빛깔로 더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었다. 화가 하반영 선생님은 우리 모두를 둘러 앉혀놓고 종례를 하셨다. “이 그림은 이렇고….” “저 그림은 어쩌고….” 품평회가 끝날 무렵에도 말쟁이들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이어지므로 귀가시간은 더딜 수밖에 없었다. 어느 때는 모두 말할 기회를 갖자고 누군가가 제안했다. 처량하게 예쁘고 다소곳했던 처녀 여선생은 항상 말할 기회를 뒤로 미뤘다. 영어 가르치는 송 선생이라 했다. 그녀는 느닷없이 이야기는 않고, 백석의 시 「여승」을 낭송했다. 목소리는 가늘었고, 시 내용은 아마 서러운 사연이었다고 기억되었다. 나는 시를 모르던 때라서 잠시 분위기에만 젖어 애상어리게 감상의 덫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그 후 여선생은 멀리 서울로 직장을 옮기고 이사했다고 전해졌다. 그리고 불치병에 걸려 신음한다는 소문도 들렸다. 시 「여승」을 후에 감상하면 그 여선생의 생각이 겹쳐들었다. 여승이 딛고 간 삶이, 서러운 조선 여인의 운명 바로 그런 것이었다. 여승이므로 불성(彿性)의 분위기를 자아내야하는데, 시에서는 그냥 ‘가지취’ 냄새만 나는 여인이었다. 그것은 초연하게 암자의 뜨락에 서 있는 한 여승의 현상이었다. 불경이 서럽다고 했다. 속세와 불계가 서로 구분 없이 넘나들고 있었다. 불행한 운명과 서러움을 털어내며 합장하는 여승은 서럽게 살아오던 우리들의 누이였다. 소재호 | 전북 남원에서 태어났다. 『현대시학』으로 시 등단했다. 시집으로 『이명의 갈대』, 『용머리고개 대장간에는』등이 있다. 현재 완산고등학교장으로 일하고 있으면서, 전북문인협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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