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9 |
길은 길을 묻는다
관리자(2005-09-08 17:12:20)
길은 길을 묻는다
고수를 찾아서
그 이름도 긴 ‘전북작가회의 문학지도간행위원회’에서 이번 여름을 길에서 보내기로 한 것은 어디까지나 철없는 발상 때문이었다. 머리로 고민만 할 게 아니라 몸으로 문학의 본령까지 걸어가고자 했던 것, 책상 위에서가 아니라 그냥 길을 걸어 가 보자고 했던 것이다. 물론 이런 발상이 책상에서 이루어졌는지 (그렇다면 이렇게 무모할 순 없지) 어느 늦봄 취기어린 술상에서 흘러나왔는지 나는 알 수 없다. 결국 우린 걸어 보았다.
무진장(무주, 진안, 장수)과 임순남(임실, 순창, 남원), 영화 고래사냥에 나올법한 이름들과 함께 한 것은 7월 4일부터 8월 16일까지 40여 일간. 전북지역의 문학지도를 그리기 위해 (1권인 군산, 김제, 부안, 고창편은 올해 이미 간행되었다) 우린 장마 속에서도 걸었고 전국최고기록을 갱신하는 더위 속에서도 걸었다.
‘걸었다’는 말은 사실 이 글의 시작이자, 결론이다. 섬진강의 발원지인 ‘데미샘’에서 시작하여 섬진강 시인의 동네인 진메 마을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었을 뿐,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길은 여전히 푸른 짐승처럼 달빛아래 누워 있다.
길은 살아 있었다. 그 길에서 만난 시인들이 (무주-이봉명, 인월-재연스님, 악양-박남준, 지리산-이원규, 남원-복효근, 임실-이시연, 섬진강-김용택) 그랬고, 작품에서 보여진 작가들이 (박범신, 문순태, 서정인, 조정래…) 그랬으며, 그들을 만난 우리도 역시 또 하나의 길이었다.
이처럼 문학지도 발간을 목적으로 우리는 ‘길을 개척하는 자’, ‘길을 해석하는 자’, ‘길을 기록하는 자’의 역할분담을 하게 되었다. 첫 번째는 나의 역할이었고, 두 번째는 김병용 형이 맡았고, 세 번째는 전북대 방송국 영상제작팀의 임무였다. 큰길의 자취를 찾아가며 문득 ‘고수를 찾아서’라는 텔레비젼 다큐가 생각났다. 뭔가 한수 배우러 떠나는 수련자들의 이야기처럼 우리는 시인들이 마실을 나오거나 작품구상 했던 길을 같이 걸으며 그들의 문학을 몸으로 이해하고 싶었다. 그러므로 길을 걸었던 것은 1부요, 같이 밤을 새며 수작했던 것은 2부라. 주량이 두 세 잔 밖에 안 되는 필자도 문학지도가 끝날 무렵엔 두주불사의 금강불괴가 되어있는 몸을 발견하고 놀라게 되었다. 그래서 주력은 필력이란 말이 나왔을까?
길을 닮아 간다.
여행이 부르조아 계급의 또 다른 학습장이라고 누가 그랬었지? 경험해본 바 체험의 학습은 허구화된 문학을 제대로 인식하는 철학적 교육장임에 틀림없었다. 괴테를 비롯한 18세기 지식인들이 그랬고, 서거정을 비롯한 수많은 유학자들이 그랬다. 지금까지 보고 싶은 대로 보았던 미적대상을 (길!) 실지로 체험함으로써 ‘인간에 대한 더 가까운 접근’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 여행의 궁극적인 목표였던 셈이다. 이번 문학기행 역시 소설가 김병용 형을 팀장으로 한 문학기행 본대와 (7~10명 정도를 유지했다) 지역의 작가회의 회원들이 함께 걸으며 우리 고장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했다. 그래서 반듯한 샛길보다는 곰티재와 같은 오래된 길을 물어물어 걸어갔던 것이다. 힘든 길일수록 같이 걸어주는 이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정겨운 것인지, 길을 이해하면서 나는 서서히 걷는 일에 중독이 되었다. ‘여행이 아름다운 것은 돌아올 곳이 있어서’라고 누군가 말했다지만 우리에게는 돌아가는 길도 하나의 텍스트로 생각되었다. 길은 그 자체로 매력적이었다.
그러므로 얼마나 걸었느냐 보다, 어떻게 걷느냐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 것은 우리가 가난했기 때문이라고 말해도 될까? 길이 걷는 자에게 요구하는 법이 없었음으로, 배 고프면 근처의 마을에서 뜨거운 밥을 해다 먹었다. 또 시인이 밭에서 따온 호박과 고추와 더불어 세속의 기름기를 내장에서 씻어냈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걸었다. 행복했다.
정보통신이 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되면서 ‘조금 더 빠르게’는 곧 생존과 결부된 모토가 되었다. ‘빨리빨리’를 강요하는 시대에 맞서 조금씩 느리게 가는 건 어떨까? 자동차로 좁아진 길을 느린 걸음으로 걷다보면 우리 국토는 좀 더 늘어나게 되지 않을까? 이런 우리의 바램은 스쳐 지났던 것들에 대한 관심을 자연스럽게 불러일으켰다.
‘관심’은 애정의 시작이다. 차로 지나가면 평범했을 국도를 직접 걷는 다는 것은 길에게 뜨거운 연애를 거는 것과 같다. 길을 걷는 순간 당신은 길과 특별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길은 길을 묻는다
80년대가 지나고 모두가 길을 잃고 헤맬 때 나 역시 그 중의 하나였다. 나도 누군가 가리켜 주길 원했다. 때론 모두가 선망하는 길에 편승하고 싶다는 상상을 하며 그 시절을 보냈다. 서로 자신의 길이 옳다고 목에 핏대를 올리고 싸웠던 그때, 어떤 길이 옳은지 도무지 감이 서질 않아서 고민할 때, 시처럼 그냥 걸어보는 건 어떨까? 미래의 지혜는 걸으면서 스스로 얻어지는 것이기에 망설일 시간에 차라리 그냥 걸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걷는다’는 건 또 하나의 자신을 만난다는 것. 땡볕 내리쬐거나 비오는 국도변을 걸을 때 나는 종종 걷는 ‘나’를 보는 또 하나의 ‘나’를 만나게 된다. 타자화 된 자신을 보고 스스로를 비판하는 인식의 발견이야말로 길의 은총이 아닐까? 그러나 우리가 흔히 보는 여행자들은 앤더슨이 통렬히 지적했던 것처럼 피식민지들이 자신들을 지배하는 제국(서구열강)으로 떠나는 ‘순례자’의 부류와 콘라드가 ‘암흑의 핵심’에서 은유하듯 경제적 규모가 열악한 나라를 여행하며 상대적 우위를 즐기는 ‘관광객’들로 넘실거린다. 우리는 ‘자유인’의 길을 걸어 보고 싶었다. 유목민의 피가 흐르는 그런 길, 문학은 고속도로처럼 견고한 길과 광대무변한 들판의 길 중에서 후자에 속하기 때문이다. 어디로든 통하는 들판의 길은 주변의 길들을 끌어 모으며 또 오래되면 주변에 스민다. 마치 월든 호숫가에 살던 소로우가 추구했던 것처럼 그 자체로 길인 문학이 우리가 가보고 싶어했던 길이었다.
그러므로 굳이 길을 물으려는 사람이 있다면 굳이 압도하려 하지 않으며 하나가 되는 아름다운 길을 나는 알려주고 싶다. 진안 데미샘 부터 남원 순창을 거쳐 구례 보성으로 흘러가는 섬진강변의 길을 걸어보시라고. 사람의 길이 있기 오래 전 부터 스스로 길이 되어 흐르는 뜻을 배워보시라고. 그리고 만일 당신이 그런 길을 걷고 싶다면, 가슴속에 그런 물음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면 당신은 이미 젊고 역동적인 또 하나의 길이다. 이미 굳어진 길은 스스로에게 묻지 않으므로, 길은 길을 물으며 걸어가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