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9 |
안순금 개인전
관리자(2005-09-08 17:10:29)
아름다운 사람, 안순금 개인전 스케치
세상에는 아름다운 것들이 많다. 자연, 사람들, 그리고 함께 피어나는 이야기들이 다 그 속에서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를 나름대로의 모습으로 지키고 있다. 공생과 환생의 존재의 의미를 찾아서 꿈을 꾸듯 꿈틀거리는 이 우주의 만물이 모두 다 아름답다.
내가 아는 안순금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변함없는 순수함과 따뜻함, 그리고 자아의 깊이를 잃지 않으며 일상의 풍경을 그려내는 잔잔한 열정을 지닌 사람이다.
그는 오랜 세월을 함께 하며 인연의 즐거움을 갖게 해준 사람이다. 대학시절 전공후배로서 우연히 얘기를 나눈 기억이 떠오른다. 유독 어려보이는 얼굴에 다정하게 느껴지는 모습을 지녔었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외모에서 느껴지는 편안함과는 달리 사뭇 진지한 눈빛으로 날카롭게 사물을 직관하며 주변의 일상에 대한 철학적 사고가 깊은 후배임을 알게 되어 매우 관심 있게 그를 지켜보았다.
대학시절과 졸업 후 한 동안 안순금은 인간 속에서 찾아가는 삶의 모습에 관심을 보이며 작업을 해 나가고 있었다. 그 후 그의 그림 속에 자연이라는 모티브가 형성되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고창, 운주 등 시골 학교의 오랜 미술교사 생활이 그의 삶 속에 자연이좀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된 동기가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1997년 첫 개인전 작품들 속에서 자연과 교감하고 얘기하며 그 속에서 삶의 유희를 그려내는 안순금의 따뜻하고 풍요로운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수묵이라는 전통적 재료를 그의 성품처럼 온화하게 풀어나가는 반면 아크릴이라는 강한 칼라재료를 서슴없이 함께 구사하는 대담함을 보였다. 안순금의 작업에는 수묵화의 정신적 철학의 묵상과 함께 현대적 조형감각의 대담한 화면의 구성 그리고 모노크롬한 색채표현의 절제된 언어가 숨겨져 있다.
3년 전 남편과 함께 영국으로 건너가 코벤트리 대학에서 다시 그림공부를 하기 위해 준비하던 안순금에게 다가왔던 벽은 영국이라는 나라의 교육과정에 동양화라는 회화양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도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알고 있는 상식이었지만 다시금 자존심이 상하는 문화적 충돌과 반발을 느꼈다. 어쩔 수 없이 서양화 아니 그쪽 문화로 회화를 전공하게 되었다고 한다. 수묵재료와 수성의 안료성질을 다루어온 그에게는 유화라는 안료에 대한 이질감과 재료의 물성에 익숙하지 못함 때문에 힘들고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이야기하는 표정에서 그때 그의 당혹함과 힘겹게 작업해 나갔으리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또 다른 조형감각과 새로운 표현의 영역을 넓혀나가는 소중한 시간에 대한 추억이 묻어나는 뿌듯함도 읽을 수 있었다.
이번 우진문화센터의 기획전에서 보여준 안순금의 작품에는 3년 전 유학시절 수학했던 작품들이 일부 전시되어 있었다. 유학 초기 작품에는 서구적 조형구성과 재료의 학습과정을 차분하게 그려낸 인물군상이 눈에 띄었다. 그 옆쪽으로 여러 번 바탕의 덧칠한 화면위에 자유분방한 선과 터치를 살린 대담한 드로잉형식의 작품에 눈길이 갔다. 그 작품을 설명하는 그는 즐거운 표정이었다.
여러 번 작업에 실패를 거듭하면서 자조적 심정이 되어 수묵화를 그리던 기분으로 붓질하여 그려 내렸는데 지도교수가 의외로 매우 큰 관심을 보이며 좋아했다는 기억을 떠올려 주었다. 나 또한 그 얘기에 ‘그렇고 말고’ 어깨가 들썩여 졌다. 그들에게 붓의 생명력은 오랜 동안 모필의 운필을 통해 작업해오던 동양의 작가에게서 느낄 수 있는 신선함이었을 것이다. 거기에 힘을 얻은 안순금은 붓의 운동력이 살아있는 면과 선의 조형성이 엿보이는 작업을 통해 다소 안정적인 작업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선보였다.
이번 전시회에는 크게 두 가지 형태의 작업이 눈에 들어온다. 하나는 유학시절 접근해 본 타일작업의 일상 시리즈이고, 또 하나는 한국에서 작업해왔던 풍경의 새로운 조형적 접근을 보여주는 작업이다. 그 중 눈에 띄는 것은 작업의 소재였다. 안순금은 그림을 통해 일기를 쓰고 있었다. 그림일기와 같은 타일그림을 통해 그의 일상을 읽을 수 있었고 그의 눈을 통해 천착되는 내면의 감성과 자연, 그리고 일상을 바라보는 안순금이라는 인간의 향기를 맛보는 재미를 갖게 하는 기분 좋은 전시회였다.
긴 세월 속에서도 변함없는 순수함을 넉넉하게 간직해 오면서 잔잔한 파도처럼 끊임없이 자신의 세계에 새로운 산소를 불어넣는 의지가 두터운 후배의 모습에 새삼 그 사람의 아름다움을 느낀다. 20년이 지난 어느 전시장에서 욕심 없이 그려낸 넉넉하면서도 꿈이 살아있는 그림 앞에 서 있는 안순금을 만나고 싶다. 여전히 따스한 일상 앞에 소중히 자신을 내려놓는 아름다운 사람을…
정미현 | 전북대학교 미술교육과를 졸업했다. 5회의 개인전과 1백여 회의 단체전 및 초대전에 참여했다. 현재 군산산북중학교에서 미술교사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