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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9 |
젊은 시각 전- 유기준의 현재진행형
관리자(2005-09-08 17:09:45)
‘대상의 정신을 그려낸다’ 지난 8월 3일부터 12일까지 전주 서신갤러리에서 열린 ‘젊은 시각 - 유기준 개인전’은 전북지역에서 활동 중인 35세 미만의 작가 두세 명을 갤러리 측에서 선별하여 매년 8월 한 달간 옴니버스형 릴레이 형식으로 치루는 전시 가운데 하나였다. 금번 전시는 99년 8월을 시작으로 05년 현재 7년차, 17번째 개인전에 해당한다. 이처럼 길지 않은 시간 동안 갤러리측이 젊은 작가 발굴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투자해 온 결과 이제는 지역 미술판에 있어서 종전의 전시 참여자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작업의 흐름과 작가층이 별도로 형성될 만큼 ‘젊은 시각’의 효력은 속속 가시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이는 비록 규모는 작지만 내실 있는 자체기획을 통하여 열악한 여건 하에서 고군분투하는 젊은이들에게 작품발표기회를 확대하고 그들의 고착화되지 않은 신선한 시각이미지들을 선보임으로써 지역미술계에 활기를 도모하고자 하는 프로그램의 기본취지가 이미 뿌리내렸음을 뜻한다. 지역화단에 있어서 ‘젊은 시각’이 갖는 의미의 발단은 보수적인 화풍이 화단의 주류를 형성하면서 빚어진 정체된 분위기 그리고 그로 인해 길들여진 관행과 습관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사실에 연유한다. 이를테면 인위적으로 조성된 틀에 의해 특정화풍이나 시대의 흐름을 비켜가는 조형관이 무의식적으로 강제됨으로 인해 동시대 미술 현장의 생생한 추이를 애써 외면하거나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 앞에서 신세대 작가들은 개개인의 재기발랄한 아이디어와 열정, 잠재된 표현욕구와 풍부한 상상력을 전시장 안에 마음껏 토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작업경향 역시 실험적인 성향의 추상이나 설치, 조각, 사진 등이 우위를 차지하는 편이었다. 회화의 김중수, 손소영, 김명숙, 양순실, 설치의 서희화, 임현채, 조해준, 채성태, 사진의 권순관 등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그렇듯 ‘젊은 시각’의 성과가 소리 없이 누적되어 가는 틈새로 줄곧 완고하게 지역화단을 조여 왔던 경직된 나사가 조금씩 풀리면서 신세대 작가들의 작업 층위와 보수적인 중견작가들의 작업 층위가 공존하는 형국이 조성된 것이다. 구세대와 신세대가 서로의 작업을 이해하고 격려하는 건강한 교호관계를 토대로 하여 획일성보다는 작가의 개성과 도전 의식이 존중되는 과거와는 사뭇 다른 지역 미술 판의 지형도 그 밑그림이 그려지기까지 서신갤러리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 하겠다. 2005년 ‘젊은 시각’ 전의 주인공인 유기준은 예원대학교를 졸업하고 본 대학 문화예술대학원 3학기를 마친 한국화가로서 몇몇 그룹전이나 전북 아트페어를 통해 그의 작가적 기량은 이미 널리 알려진 편이다. 작업에 대한 진지함과 열정으로 무장된 흔치 않은 젊은이로서 ‘누구를 위해 그리고 무엇을 위해 자신이 그림을 그리는지’에 대해 자문하는 작가는 전문가의 안목보다는 일반인들의 시선을 더 의식해 왔고 그런 만큼 비구상의 영역이 아닌 구상작업에 더욱 몰두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필자에게 그는 31세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에서 느끼는 나름의 고단함을 작업으로 승화시켜 내는 순수한 창작 에너지와 예술가의 진정성을 잃지 않기 위해 자기반성을 게을리 하지 않는 치열한 작가정신의 소유자로 다가왔다. 첫 번째 개인전에 해당하는 금번 전시에서 그는 전통 초상화 기법을 근간으로 하되 화면의 전체적인 구도나 운영은 현대적인 감각으로 처리한 일련의 ‘수묵인물화(水墨人物畵)’ 시리즈를 발표하였다. 전시작들은 지필묵(紙筆墨)만을 매재로 하여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동자나 노인들을 표현하고 있다. 자칫 수묵만으로 작업을 하게 될 경우 지루함과 단조로움이 부담으로 느껴질 법도한데 작업의 시작에서 마무리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이 그에게는 내공의 열락(悅樂)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그러한 연유에서 인지 화면들은 한결같이 낡은 필름을 보듯 리얼하면서도 다채로운 표현의 묘미가 흑백의 모노톤만으로 능숙하게 구현되고 있다. 예를 들어 단순한 세필묘사, 농묵(濃墨)과 담묵(淡墨)의 적절한 혼용, 선염(渲染)과 감필(減筆) 효과 등으로 먹에 잠재된 갖가지 뉘앙스의 표현어휘를 화폭에 고스란히 살려내는 것이다. 기실 전통양식의 초상화가 의관을 갖추고 반신상이나 전신상으로 정면을 응시하면서 부동의 자세를 취하는데 비해 작가의 인물들은 주변의 간소한 풍경과 어우러지면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러한 가운데 초상화의 기본 모랄이라 할 수 있는 ‘대상의 정신을 그려 낸다’는 전신(傳神)의 미학이 충실하게 실현되고 있다. 특히 눈동자를 중심으로 피부, 주름살, 골상과 같은 안면의 극사실적인 묘사가 그 요지에 해당한다. 나아가 작품들이 지닌 공통적인 특징이라면 형식상으로는 현대라는 시제를 감안한 참신한 인물화이자 내용상으로는 단순히 인간 형상의 외관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시간의 흐름을 담보로 하여 삶에 대한 존재론적 자각 내지는 인간과 사회를 둘러싼 비판의식을 암묵적으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독히 사실적인 그래서 무언가를 향하여 뚫어질 듯이 응시하고 있는 눈길들은 작금의 사회 부조리를 통렬하게 질타하는 시대풍자의 아이콘으로 혹은 철학적 사유의 잔재나 증거물로 기능한다. 이처럼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타자의 얼굴과 그들의 시선을 빌어 작가는 본인의 내면세계를 치밀하게 탐색함과 동시에 현재라는 시간의 정체성마저 냉철하게 환기한다. 전시작들 중에서 <신소상팔경도(新瀟湘八景圖)>는 인간과 자연의 순환성을 기저로 하여 존재론적 자각의 의지를 비교적 담백하면서도 리얼하게 표현하고 있다. 예로부터 빼어난 경관으로 이름난 소상(瀟湘), 즉 중국 호남성(湖南省) 동정호(洞庭湖) 남쪽에 위치한 지역을 소재로 삼아 안개 빛 아래로 펼쳐지는 사계(四季)의 자연풍광을 8개의 화제, 예컨대 ‘산시청람(山市晴嵐)’ ‘어촌석조(漁村夕照)’ ‘원포귀범(遠浦歸帆)’ ‘소상야우(瀟湘夜雨)’ ‘연사만종(煙寺晩鐘)’ ‘동정추월(洞庭秋月)’ ‘평사낙안(平沙落雁)’ ‘강천모설(江天暮雪)’로 나누어 그린 <소상팔경도>를 풍경이 아닌 인물을 중심으로 새롭게 각색하여 <신소상팔경도>라 이름 붙인 것이다. 생성과 소멸, 윤회의식이 담긴 화면 속 인물들의 다양한 모습이 망자(亡者)의 혼령을 연상케 하면서도 사계절의 변화에 따른 간결한 자연의 이미지와 함께 전체 화면은 고즈넉한 여백의 운치를 상실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그는 노인의 주름살이나 그들 특유의 표정을 매개로 하여 세월의 자취를 각인시켜가면서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암시하고자 한다. 그 같은 소멸의 아이콘들이 그에게 있어서는 덧없음의 발로, 허무의 나락, 종말이 아니라 단지 순환하는 우주 질서에 부응하는 자연현상으로서의 현재이자 일정순간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면 안에는 과거와 현재, 미래 그 상호간의 유기적 사이클이라는 변증법적 지양(止揚)의 의지가 숨어 있다. 흡사 영(靈)적 순례의 도정(道程)으로 비유됨직한 정결한 의식(儀式)을 창작행위로 치러낸 작가는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시대마저 극복하고자 스스로를 부정하면서까지 격랑의 부침 속에 기꺼이 동참한 셈이다.   손청문 | 홍익대 대학원 미학과에서 석사를 원광대 대학원 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주미협과 전북미협평론분과 이사, 전북문예진흥기금평가위원 및 벽골미술제심사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원광대학교와 전주대학교 강사로 일하면서 미술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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