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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9 |
[모악산]그리운 모악산방
관리자(2005-09-08 17:01:14)
그리운 모악산방 모악산에서 보낸 날들, 나는 거기 작은 골짜기 외딴 집에 살며 즐겁고 행복하기만 했을까. 이곳 지리산 자락으로 이사를 와서도 내 삶이라는 모양새는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이런 저런 문명의 이기로 인해 편해진 것은 사실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어떻게 13년을 살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 겨울에 설거지를 할 때도 마당앞 개울에 나가 해야했으며 빨래는 물론 이따금 전주에 나가기 위해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을 때면 둔기로 얻어맞는 것처럼 겨울 개울물이 머리 속을 파고들었다. 내 고단한 삶을 딱히 여긴 분이 마련해준 가스레인지가 들어와 잠시 편안하기도 했지만 빈 가스통을 차가 들어올 수 있는 곳까지 지고 내려가서 기다렸다가 새것을 끙끙거리며 용을 쓰고 메고 올라와야 하는 등, 차가 닿지 않는 산 속에서의 삶이란 생각이나 말처럼 썩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무를 해서 아궁이에 불을 지펴야 했으므로 틈나는 대로 산에 올라가 나무를 해야 했으나 차일피일 게으름을 피우다 어느덧 겨울이 오고 나무를 쌓아놓는 허청은 텅 비어 겨우겨우 냉기를 면하다가 고마운 후배들의 도움으로 나뭇간을 채우고는 했다.   아랫마을 사람들은 내가 사는 골짜기를 새탁골이라 불렀다. 신뱅이, 신전, 즉 새로 생긴 밭이라는 마을 이름에서 새터골을 그렇게 불렀겠지만 그 작은 골짜기엔 유난히 새가 많이 날아들었으므로 나는 새들의 골짜기라는 뜻의 새터골로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혼자 맞이하는 아침과 저녁, 심심했었다. 사람들과 보낸 시간보다는 새들의 골짜기 모악산방에서는 나무와 풀꽃, 귀뚜라미와 베짱이와 다람쥐와 족제비와 새들과 나비와 바람과 구름과 별들과 보낸 날들이 더 많았다. 그들의 모습에서 문득문득 나의 지금을 보고는 했다. 그들에게 독백처럼 내 생각을 이야기하곤 했다. 어느 누구에게도 말 할 수 없던 비밀이나 부끄러운 고백도 그들은 끝까지 다 들어주고는 했다. 지금껏 낸 9권의 책 중 8권이 모악산방이라 불려진 그 작은 산골짜기 외딴 집에서 쓰여졌다. 간혹 당신의 글 속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드러나지 않느냐고 물어오는 이들이 있다. 하루의 일상을 일기로 쓰듯 모악산방에서의 내 삶이, 그 삶의 글이 그랬기 때문이다. 삶이 깃들어 있지 않은 글을 내 무슨 수로 쓸 수 있으랴.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며 설레임의 기쁨과 눈물의 슬픔에 싸여있기도 했다. 뉘엿뉘엿 거리는 저녁햇살에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처럼 목을 빼고 기다리던 인기척에 화다닥 맨발로 뛰어나가 반갑게 맞이했고 문을 닫고 냉정히 축객령을 내리기도 했다.   모악산방, 거기 작은 개울가에 버들치들 잘 살고 있을까. 반딧불이를 위해 내가 키우는 것이라고 동네아주머니들에게 낯을 붉히며 애써 잡은 다슬기를 다시 개울에 내려놓고 가시라 일장 호통을 치기도 했었지. 검은머리로 거기 첫날밤을 보내고 반백의 머리칼이 되어 떠나온 모악산방이여. 돌아갈 수 없는 것들은 모두 그리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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