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01.5 | [시사의 창]
[전북의 땅과 문화, 사람들 - 순창] '오지'에 울고 '인심'에 울고
장세길 문화저널 기자(2003-04-07 15:15:11)
늘컹늘컹한 삶은 콩 한되와 빻은 멥쌀 여섯되의 비율로 음력 칠월에 메달아뒀던 메주들. 곰팡이가 스면 한가위가 되기 전에 햇볕에 바싹 말려 다시 빻고 체로 걸르고 그러기를 음력 섣달까지 갈무리 해둔다. 그리곤 메주가루를 끓인 물에 반죽해 다시 묵히고 불리고 찹쌀과 절구통에 넣고 치고 여기에 소금과 고춧가루를 적당히 넣어가면서 틈틈히 놓아두면 빠알간 색이 우러난다. 이것이 그 유명한 순창고추장이다. 이성계가 무학대사를 만나러 순창에 찾아가다가 어느 농가에서 비벼먹은 고추장을 잊을 수 없어 그 뒤로 순창고추장을 왕실에 바치라고 명령했다. 그 뒤로 임금님 수라상엔 언제나 순창고추장이 올랐고, '순창'하면 '고추장'이 떠오를만큼 순창과 고추장은 동의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순창에서 몇십년동안 고추장을 담궜던 사람이 전주와서 담궈봤지만 제 맛을 내지 못하자 순창 물과 고추를 가져와 담가도 역시 그 맛이 나지 않았다는 말도 있다. 순창에서 담궈야 순창고추장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순창고추장의 맛은 순창의 기후덕택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도 그럴것이 메주를 쑤고 말리고 다시 햇볕에 쬐이는 그 복잡하고 세심한 제조법을 보면 순창의 햇빛과 바람이 '순창고추장'에 스며듬을 알 수 있다. 그렇게 서늘하지도 그렇다고 무덥지도 않은 전라도 중산간지방의 기후특성이 고추장에도 고스란히 담겨지는 셈이다. 후덕하고 인심좋은 천예의 자연 순창 자랑좀 해달라는 말에 "순창(淳昌) 이름처럼 순하고 인심이 후덕한게지"라는 촌로의 말처럼 순창은 아직 '때가 덜 탄' 고장으로 인식되고 있고 이고장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들 한다. "물좋고 산좋고 인심좋고.. 나쁜 것이 있어야지"라는 말은 급변하는 도시생활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편안한 고향의 향취를 떠올리게 하는 고장이랄 수 있을 만큼 순창은 '조용하다'. 노령산맥의 산줄기에 둘러싸인 채 북쪽으론 '그 유명한' 회문산이, 서쪽으론 백양산, 남쪽은 설산, 동쪽은 적성산이 병풍처럼 가려 삼방고원이라는 분지를 이룬 순창이다보니 "산좋고 물좋고 인심좋은 것"은 당연할 터. 그러나 한편으론 "인심까지 후덕하게" 만드는 이 자연경관이 오히려 마을발전을 더디게 한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한 고장임에도 이곳은 자연적 여건으로 생활권이 확연하게 나뉘어져 있다. 고원분지 중에도 높은 고원을 이루는 쌍치면과 복흥면은 내장산과 연결돼 정읍시 생활권이라 볼 수 있고, 적성면과 동계면은 남원시에, 순창읍과 그밖의 면은 광주에 속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순창군청이 하나의 사업을 벌일 적에 애를 먹는 이유도 이래서란다. 자연경관의 험준함은 기찻길도 순창을 '한참' 빗겨가게 만들었다. 전라선 철도가 임실과 남원을 지나고 호남선 철도가 정읍을 지나지만 순창은 그 두 철길 한가운데 외롭게 자리잡아 88 고속도로가 생기기 전까지 어떤 이의 말처럼 이곳은 '육지 속의 고립된 섬'이었단다. 그 섬에 발령나는 조선시대 현감들의 심정이야 오죽했을까. 순창에 부임하는 현감이나 관리들은 한결같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오지중의 오지'로 내려가라 함은 좌천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임기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갈때도 오지를 떠나는 기쁨의 웃음이 아닌 눈물을 흘렸단다. 순창의 후덕한 인심과 산좋고 물좋은 환경을 떠나기가 몹내 아쉬워서 그렇다고. '울고 왔다 울고 가는' 고장이 순창인 셈이다. 경기좋은 자연만큼 더딘 발전 그러나 한편으론 "말이 좋아 '살기 좋은 순창'이지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죽을 맛이다"는 말도 들린다. 도로와 철길이 쉽게 들어올 수 없는 덕에 근대화 과정은 더뎠고 산간지방을 개간해봤지만 산성땅이라 누에치기말고는 이렇다할 특산물도 자라기 어려워 이 고장의 살림살이란 언제나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물자가 부족한 곳에서 여유로운 문화생활을 누리기도 어려워 이렇다할 문화활동을 찾기 어려운 것도 이 고장이 안고 있는 문제점 중의 하나다. 어떤 이는 이만한 읍내 규모에선 전국 최고일거라며 "읍내에만 40여개가 넘는 다방이 있고, 회식이 많고, 음주가무 문화가 발달한 이유도 그래서 일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살기 좋고 인심좋은 천혜의 자연경관이 오히려 한편에선 사람들의 삶을 척박하게 만들고 있다는 안타까움이 사람들의 가슴엔 남아 있는 듯 하다. 그린투어리즘은 이런 '위기'를 '기회'로 삼으려는 순창군청의 야심찬 계획중의 하나다. 더딘 발전으로 오히려 자연과 농촌의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순창의 특성을 '신농촌부흥운동'이라는 그린투어리즘으로 형상시킨 것이다. 이 사업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시도되고 있다는 점과 순창의 특성을 제대로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하지만 '구호성 사업'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은 것도 사실. 순창사람들의 삶에 시선을 맞춘 사업이라기 보단 '관광'을 위한 또 하나의 개발로 변질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심심찮게 들리고 있다. 판소리의 고향, 그러나 전통문화는 척박하다 고추장을 빼고 순창의 자랑거리로 꼽히는 것이 판소리다. 판소리 연구가인 최동현 교수는 순창을 동편제와 서편제 소리의 고향이라고 말한다. 서편제 판소리의 시조인 박유전이 탄생하고 소리를 익힌 곳이며, 송흥록과는 또 다른 동편제 판소리의 시조인 김세종이 낳고, 소리를 익히고, 살았던 고장이라는 것이다. 전라도 땅 어디나 그렇지 않을까마는 이런 이유로 이 고장은 '판소리의 본고장'이라는 자부심을 은연중에 내비친다. '발성 초가 썩 진중하고, 구절 끝마침을 꼭 되게하여 쇠마치로나 내려치는 듯이 하다'는 동편제와 '구절 끝마침이 좀 질르를 끌어서 꽁지가 붙어다닌다'는 서편제가 한 고장에서 시작됐다는 점은 순창만이 가지는 판소리 문화의 특징. 그러나 서편제가 순창사람 박유전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그를 이은 순창사람이 없고, 오히려 광주, 나주, 보성 등지에서 전승됐다는 점에서 '조선창극사'의 정노식이 말했듯이 순창은 전형적인 동편제의 고향이랄 수 있다. 그러나 힘들고 어렵던 시절 물자가 풍부한 평야지대로 소리꾼이 몰려들었던 반면 인심은 좋지만 물자가 넉넉치 못한 순창은 소리꾼의 소리를 듣기 어려웠을 터. 그래서인지 유성준의 수궁가 바디를 잇고 있는 박복남 명창을 빼놓고 이렇다할 판소리꾼을 찾기 어려운 것이 순창 판소리의 오늘이다. 순창국악원이 설립돼 국악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는 있지만 전통문화의 뿌리가 약해서인지 그리 활성화되어 있지는 않다. 하지만 뜻있는 문화예술인들이 순창만의 독특한 문화를 위해 필봉농악을 들여오고, 문학회를 구성하고, 문화예술인협의회를 구성하는 모습은 다른 고장에선 보기 힘든 움직임이다. 어쩌면 척박한 문화적 토양이 그들 스스로 문화를 일구도록 만들었고, 그것이 관에 의해 주도되는 오늘날의 문화행태와는 한참을 빗겨나 주민들의 문화를 만들어내는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