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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8 |
[화랑]세계의 화랑
관리자(2005-08-09 09:51:19)
위기 속의 불씨 글 | 최효준 전북도립미술관 관장 현대미술발전에 있어 화상(畵商)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구겐하임 베니스 미술관 컬렉션의 모체를 구성해 준 페기 구겐하임이 ‘금세기 예술’이라는 이름의 화랑을 거점으로 20세기 초에 유럽 화단에서 벌인 활약이라든가,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뉴욕 화단을 세계 미술의 중심으로 자리 잡게 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한, 새로운 미술 ‘팝아트’의 산파였던 화상 레오 카스텔리의 활약 등은 이미 전설이 되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젊고 혁신적인 당대의 작가들과 함께 뒹굴며 그들을 키워 세상에 내어 놓아 그들과 성공의 열매를 나누었다는 점이다. 허버트 리드가 도상(圖像)은 사상(思想)에 선행한다고 말했듯이, 이론가와 비평가들이 새로운 사조를 평가하고 새로운 작가를 인정하기 이전에, 이미 탁월한 안목과 예지력을 가진 화상들은 무명 작가들의 작품만으로 그 가능성을 보고 전폭적인 지원을 하여 그들과 함께 성장해 나아갔던 것이다. 오늘날 대형 화상의 경우 그 위상의 변화를 실감케 한다. 레오 카스텔리처럼 전설적인 존재로서 존경받는 이들은 이제 드물다. 오늘날 각광받는 화상은 대형 흥행사의 면모를 지닌다. 블록버스터 영화에 천문학적 투자금을 쏟아 부어 한 판 도박을 벌이듯, 악명 높은 래리 가고시안이나 명문대 MBA출신의 제프리 다이치 같은 대형 화상은 매튜 바니나 데미안 허스트와 같은 스타 플레이어의 ‘흥행’에 막대한 투자금을 쏟아 붇는다. 미술은 이미 옛 미술이 아닌 것이다. 그런 한편 유럽, 미국, 일본 등지의 대다수 화상들은 자신만의 영역에서 특정 분야의 특정 사조의 특정 작가를 전속으로 두고 점진적으로 전속 작가를 추가하며 자신만의 색깔을 지켜 장기적인 차원에서 꾸준히 프로모션에 매진한다. 동고동락하며 의리를 지키던 옛날 풍조는 사라져 작가들이 전속을 이리저리 옮기기는 하지만 큰 화상과 큰 작가의 경우 ‘전속’의 개념은 기본적이며 필수적인 것이다. 작가와 화가가 하나가 되어 공생하며 입지를 다져 나간다. 여기서의 미술은 옛 시절과 변함이 없는 미술이다. 외국 미술 시장의 특징 하나는 활성화된 판화 시장의 존재이다. 작가들은 재료값을 벌기 위해서라도 상대적으로 저가인 판화를 제작 판매하되 철저히 에디션 관리를 한다. 판화 분야는 마치 상호금융 상품이 서민들의 투자 수단이 되듯 주머니가 얇은 미술애호가들의 애장 품목이자 투자 수단으로 정착하였다. 해외의 크고 작은 화랑은 단지 상업적 거래가 이루어지는 장소가 아니다. 엄청난 자료가 집적되어 관리되고 재생산되며 문화 현상과 문화 담론을 이끌어 내며 작가와 작품과 애호가가 만나 치열한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특별한 장(場)이다. 화랑에서 일하는 이들은 해박한 미술사적 지식과 작가들의 작품세계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을 과시한다. 고정 고객층을 가지고 그것을 점진적으로 넓혀 나아가며 긴 호흡으로 작가와 고객과 함께 성장해 간다. 새로운 작가의 발굴에 매우 조심스럽되 꾸준하다. 늘 신진들의 포트폴리오를 받아 정밀하게 검토하고 새로운 동향에 민감하게 창을 열어 놓되 변화에는 신중하다. 물론 시장 조작과 구조 왜곡 등 어두운 면이 병존하기는 어느 시대 어느 분야와 다르지 않다. 한국 화랑의 경우 해외의 경우와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대부분의 경우 특정한 성격이 없이 대가급부터 젊은 작가까지 두루 취급하며, 참신한 전시는 보이기 용으로 하고 수익은 일종의 중개인의 역할을 해서 창출하곤 한다. 선호도 높은 작가의 경우 너도 나도 취급하려 하는 반면 무명의 작가를 비전을 가지고 꾸준히 지원해 키워나가는 경우는 드물다. 시장 규모가 작고 상황이 열악하여 전속의 개념은 대체로 정착되지 않았다. 전속 개념이 없다보니 수요자들은 전시는 화랑에서 보고 작품은 작가와 직접 거래해서 구입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러다보니 미술시장의 근간이 될 화랑의 시스템이 정착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만의 유독 이례적인 관행도 있다. 상업화랑이 ‘기획하고 영업하는 직원’을 이른바 ‘큐레이터’라고 부른다는 점과, 상업화랑에서 하는 전시에 관람료를 받는 경우가 그것이다. 이들 경우는 우리나라만의 참으로 독특한(?) 문화라고 하겠다.   지금 미술시장은 전반적으로 불황이다. 세계적으로 이러한 현상은 현대미술이 처한 딜레마와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우리나라 역시 장기 침체를 겪었는데 근자에 몇몇 화랑은 국제적인 차원에서 국제적인 규모로 자생력을 갖추고 성장하는 듯하다. 이는 부의 편재 현상이 극심해지는 현재 우리나라 상황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과거 해외의 거상들이 담당하던 역할을 국내의 화상이 맡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소수 화상들의 생존이나 번창만으로 우리나라 미술 시장이 활성화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무엇이든 저변의 확충 없이 구조적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애호가 층이 두터워지지 않은 채 극소수의 초고소득층이나 소수 기관에 의존하는 시장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연전의 중국의 한 대형 전시장에서 아주 남루한 옷을 입은 수많은 서민들이 몰려 와 도판과 대조하며 열심히 전시를 관람하던 그러한 모습과 같은 광경을 쉽게 볼 수 없는 한 시장의 침체는 극복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지역의 경우는 어떠한가? 오늘날 그 침체는 더욱 심해 보인다. 과거 미술관의 역할을 담당하며 참신한 기획으로 젊은 작가들에게 발표의 기회를 제공했던 갤러리의 대표들은 스스로를 화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사실 그분들은 지역의 미술문화를 지키고 키워왔던 작은 미술관의 운영자였고 마땅히 각별하고 높게 평가되어야 하며 의미있는 역할과 소임이 주어져야 한다. 한국화, 서예 등 서화의 경우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 꾸준히 시장을 지켜 온 화상들에 의해 서화 중심 고장의 명맥이 어렵게 이어져 오고 있다. 불씨는 화로 속에 꺼지지 않고 있다. 서화 전통의 전승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날 그 불씨는 다시 타오를 것이다. 이 맥락에서 지역 미술관도 시장을 살리는 데 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의 미술관은 저변을 넓히고 토양을 기름지게 하여야 할 소임이 있다. 시장(市場)은 그 저변과 토양을 바탕으로 성장을 모색하여야 할 것이다. 발 디딜 틈 없이 전시장을 메우는 관람객을 미술 시장의 고객으로 전환시킬 방법을 함께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이제 ‘시장’만을 독립적으로 볼 수 없다. 지역 미술시장의 활성화 문제는 지역 미술, 현대 미술, 아니 미술 그 자체와 현대 문화 전반의 방향성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과 성찰로부터 출발하여 접근하여야 할 것 같다. 모든 관계자들이 소탐대실의 우를 범하지 않도록, 어렵더라도 좀 더 긴 호흡으로 대국적인 견지에서 문제를 보아야 할 것이다.   최효준 | 서울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시간주립대 경영학 석사과정과 서울대 인문대학 미술사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과정을 중퇴했다. 삼성미술관 수석 연구원과 서울시립미술관 수석 큐레이터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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