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8 |
외로운 것은 귀가 있기 때문이다
관리자(2005-08-09 09:47:21)
외로운 것은 귀가 있기 때문이다
여름, 젊음 그리고 시와 음악의 연애
사람이 외로운 것은 귀가 있기 때문이지만/ 그 외로움 아니라면 그대에게도 가지 못하리/ 그대가 떠나도 떠나도 다시 돌아오는 포구가 되겠네/ 이 세상 밖 또 하나의 귀 한 잎을 가지라면 / 내 마음도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 그대에게 주겠네 (「귀 한 잎」, 유강희)
시인은 외로움을 노래했으나 더운 여름밤은 결코 외롭지 않았으니 그곳에는 젊음과 시와 음악이 공존했기 때문이다. (사)전통문화사랑모임과 (사)전북작가회의가 공동으로 지난 7월 19일 한옥생활체험관에서 시와 음악이 어우러지는 자리를 마련했다. 젊은 청년 작가들과 음악인들을 중심으로 꾸며진 이번 행사에는 젊은 시인들과 국악인들이 함께 했으며 전주전통문화중심도시추진단 기획팀장 여원경씨의 사회로 진행됐다.
전북작가회의 임명진 회장은 행사 시작에 앞서 “오늘 행사는 젊은 작가들의 열정이 모여 이뤄졌다”며 “앞으로도 이곳 전주가 문화의 모범이 되고 이런 열정적인 행사가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제 1부 ‘날개의 깃털을 색칠하다’에서는 최미진씨가 ‘성금연류 짧은 산조’로 문을 열었다. 구전심수의 형식으로 이어져 내려왔다는 산조로 주거니 받거니 하던 가야금 가락은 좌중에게 여름밤의 정서를 묻는 듯 했다. 이어 시낭송에는 한정화 시인의 「새」, 유강희 시인의 「귀 한 잎」 이 낭송되었다.
시인들의 문자언어를 그들의 음성언어로 재구현해 듣는 시간은 시의 ‘완벽한 이해’보다는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사람들의 ‘공감의 조화’를 제공했다.
제 2부 ‘세상사는 맛을 알아가다’에서는 노선미씨의 ‘한갑득류 거문고 산조’가 어느덧 어둑해진 저녁하늘을 채웠다.
이미/ 어머니 김치에 익숙해진 나는/ 짠 줄도 모르고/ 매운 줄도 모르는데/ 세상사는 맛은 어머니가 더 잘 아련만/ 더 잘 알아 하는 말일 것인데/ 세상사는 맛이 어떠냐?/ 자꾸만 물어 대는 것이련데/ 그만/ 들어가라 한다 (「김치를 담근다」, 경종호)
시인 경종호씨는 「김치를 담근다」에서 어머니를 통해 알 듯 모를 듯한 세상살이의 맛을 이야기 하고 뒤이어 낭송된 이경진 시인의 「얼룩동사리」, 박태건 시인의 「낙랑」에서 시인들은 다양한 군상들을 통해 녹록치 않은 삶의 무게를 노래했다.
제 3 부 ‘너울 같은 편지를 쓰다’ 에서는 장지연씨가 ‘흥부가 중 박타는 대목’과 ‘춘향가 중 사랑가’를 들려줬다. 젊은 소리꾼의 신명나는 소리에 청중들은 ‘얼씨구’ ‘잘한다’의 추임새로써 화답했다. 마지막 3부를 장식한 시인들은 「다도해」의 문신과 「그 저녁」의 김다비 씨. 이들은 그리움이 뚝뚝 묻어나는 시간들을, 또 그 시간속의 사람과 배경들을 이야기했다. 여기에 막 끓여낸 조갯국 한사발에 더위를 식히고 나무들에게 물을 주는 노인을 통해 삶의 무릉도원을 그린 박성우 시인의 「도원경」을 끝으로 행사의 모든 순서가 끝났다.
이날 행사에는 더운 여름밤을 무색케 할 정도로 시와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한옥생활체험관 대청마루에 옹기종기 자리를 잡았다.
이번 행사를 기획한 전북작가회의의 박성우 시인은 “전주에 문화행사는 많지만 젊은이들 스스로 참여할 수 있는 행사가 많지 않고 다른 장르의 예술가들은 서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타 장르와의 자연스러운 교류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자는 취지에서 마련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 작가든, 연주자든 모두 미숙하지만 앞으로 지속적인 행사를 통해 스스로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이며, 다음 행사에는 좀더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들과 함께 판을 벌릴 생각”이라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이날 시와 음악의 첫 만남은 ‘여름, 젊음 그리고 시와 음악의 연애’라는 부제처럼 첫 연애의 설레임과 수줍음을 띄고 있었지만 구슬프다가도 흥겨운 우리가락을 타고 다가온 아름다운 시어들은 그날 함께한 사람들의 마음을 가득 채웠다.
하늘 높은 곳의 둥근 달에서 여름밤답지 않은 시원한 바람이 한 줄기 쏟아져 머릿결을 날리자 문득, 가을 어디쯤에서도 이런 자리에 앉아 있고 싶다는 기대가 떠올랐다. |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