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8 |
화장실에 흐르는 재즈
관리자(2005-08-09 09:46:16)
화장실에 흐르는 재즈
글 | 인재진 (주)AMP대표
처음에는 모든 사람들이 다 무모한 짓이라고 생각했었다. 심지어 내 자신까지도 확신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 오히려 솔직한 심정이었다. 지역 사회의 비판적인 시각과 부정적인 견해들을 그 나마도 약간의 관심의 표명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내 자신을 위해서 더 이롭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 그 시작이 얼마나 험한 첫 발자국이었는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으리라.
그렇게 경기도 가평에서 제 1회 자라섬 국제 재즈 페스티발은 시작된 것이다.
지금까지 10여 년에 걸쳐 재즈와 월드뮤직 공연을 기획 제작해 오고 있고, 이제는 사람들이 그 분야의 전문기획자로 인정해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늘 마음 한구석에 나의 직업과 관련하여 꼭 이뤄보고 싶은 일이 두 가지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대규모의 재즈 페스티발이었다.
해마다 많은 해외 유명 재즈 페스티발에 초청받아서 그곳을 참관하고 때로는 국내의 아티스트를 인솔하여 공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항상 그런 행사에 대한 동경과 부러움을 마음 가득 담고 언젠가 대한민국에서 꼭 해외 유수의 페스티발에 견주어도 전혀 손색없는 페스티발을 만들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하곤 했는데, 그 시작이 전혀 뜻하지도 않게 서울도 아닌, 문화적으로 아무런 특색도 없는, 재정자립도가 극히 낮은, 전체 인구 5만5천의 경기도 가평에서 풀리게 된 것이다.
2003년 여름, 모 신문사의 문화센터에서 여름 특별강좌로 개설했던 문화성공전략 캠프에 급하게 대타로 특강을 하게 되었는데 그 당시 수강생 중에 가평군청의 문화 관광과 직원이 있었고 그런 만남이 인연이 되어 대한민국 음악계에 전례가 없는 대형 사고를 치게 된 것이다. 강의 후 몇 개월이 지나 연락을 받고 가평에 답사를 갔을 때는 황량하기 그지없는 자라섬을 보여주며 반신반의 하던 그에게 확신을 주려고 애쓰면서 나 자신도 확신시키려 노력했던 웃지 못할 상황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일은 시작되었고 예기치 못한 장애는 끊임없이 발생했다. 부족한 예산과 시간, 부정적인 시각으로 일관하는 군청 내부의 분위기, 그리고 계속 문화적으로 고립되어 살아온 가평주민들의 패배의식, 재즈라고 하는 전혀 생소한 음악에 대한 고정관념 등등. 하지만 시간을 가지고 하나씩하나씩 차례로 극복해나가면서도 최후까지 극복하려 애쓴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나 자신이었다. 역시 다른 사람을 설득시키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이 나 자신에게 최면을 거는 과정이 아니었던가 싶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고 지금까지 1천여 회의 공연을 기획제작했던 모든 나의 경험을 활용하여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발 3일간의 막이 오르게 된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줄까? 성공리에 끝낼 수 있을까? 사실 기획자로서 본 행사의 일주일 전에야 막연한 예감으로나마 이 행사의 성공을 확신할 수 있었다. 꽤 많은 공연을 제작해오면서 무디게나마 발달된 감각덕분인 듯 하다.
행사 당일 금요일 오후 5시가 되어도 집객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오후 6시경부터 마치 피난민 행렬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자라섬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멋진 자연경관과 좋은 날씨, 최고의 음악과 2만여 명의 관객이 어우러져 자라섬은 저녁 무렵부터 별천지를 이루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해냈다고 너무나도 기뻐했다. 기획자로서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그 이튿날부터 퍼붓기 시작한 비는 내리 이틀을 사정없이 쏟아부어 잠시의 기쁨을 송두리째 앗아가고 그중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토요일 행사를 전면 취소해야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하룻만에 다시 지옥으로 떨어져 버린 것이다. 호우에 대한 대비책이 완전치 못한 것에 대한 쏟아지는 비난과 수습해야할 너무나도 많은 문제들을 우여곡절 끝에 수습하고 3일째 행사를 폭우 속에서 겨우 강행하니 다시 밀려드는 격려의 말들과 폭우 속에서 수천 명의 관객들이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공연을 끝까지 보았다. 마지막 공연이 끝나고 나서 60이 넘은 한국 재즈 일 세대들의 흥겨운 연주에 맞춰서 모든 스탭들과 관객이 혼연일체가 되어 기차놀이를 하며 폭우 속을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게 되었을 때 첫날 느낀 벅찬 느낌과는 또 다른 감동이 밀려왔다.
그렇게 제1회 자라섬 재즈페스티발은 막을 내린 것이다.
이제 오는 9월 2 ~ 4일에 제 2회 자라섬재즈페스티발이 예정되어 있다. 2회 페스티발에 보여주는 주변의 관심은 너무나도 뜨겁다. 모든 가평 군민들이 기대를 하고 있으며 대한민국의 모든 재즈팬들이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이제 이 행사는 단순히 경기도 가평의 지역 행사를 벋어나 가장 가능성 있는 대한민국 축제 중의 하나로 자리매김하기 직전에 이르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대체로 지역축제가 각 지역의 특산물이나 자연현상, 명승고적 또는 역사적 사실을 근간으로하여 이루어 진다고 볼 수 있다. 외부에서 인위적인 테마를 정하여 축제를 뿌리내리게 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현실임을 감안 할 때, 자라섬 재즈페스티벌의 경우는 매우 특별한 케이스라 할 수 있겠다. 자생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갖지 못한 상황에서 의외의 성공을 기대할 수 있게 된 이유를 몇 가지로 추론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변화된 트렌드에 대한 이해, 둘째 독특한 아이템에 대한 선점, 셋째 지역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넷째 초기 기획 단계부터 외부 전문 기획자에 대한 배려, 다섯 째 담당 공무원의 굳은 신념이 그것들이다. 흔히 하는 이야기로 페스티벌은 2회 차에서 위기가 온다고 한다. 처음 시작은 용기가 중요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이외의 것들이 중요하게 됨을 알 수 있다. 자연, 가족, 휴식 그리고 음악이라는 주제하에 시작했고, 한국적 페스티발의 새로운 전형을 제시한다는 모토로 출발했으며, 아시아를 대표하는 재즈페스티발로 발전시킨다는 목표로 달려가려 한다.
가평군민과 군청의 지속적인 관심과 음악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의 애정이 있다면 우리도 이런 음악 페스티벌하나쯤 갖는 것이 그리 사치는 아니리라.
요즘 가평군청의 화장실에서는 구내방송으로 재즈가 흘러나온다.
인재진 | (주)AMP 대표로 있으면서, 자라섬 국제 재즈페스티발 예술 감독과 상명대 정보통신대학원 겸임교수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