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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7 |
고추장 작은 단지를 보내니
관리자(2005-07-06 14:19:00)
연암의 섬세한 내면을 비추다 『고추장 작은 단지를 보내니』 (박지원 지음, 박희병 옮김, 돌베게 펴냄) 올해는 우리나라가 세계에 자신 있게 내세울 수 있는 문호 연암 박지원이 서거한 200주년이다. 가을에는 어느 대학에서 큰 학술행사가 준비되고 있는데, 말석에서 연암을 바라보고 있는 필자가 주목하면서, 그 노고에 감사하고 부러워하는 두 권의 연암관계 노작이 최근 출간되었다. 성균관대의 김명호 교수가 고인이 되신 우전 신호열 선생과 공동 번역한 『연암집』과 서울대 박희병 교수가 번역 해설한 연암의 편지글 모음인 『고추장 작은 단지를 보내니』(돌베게.2005.5.30)라는 아담한 책이다. 앞의 책이 연암의 사상과 문학을 공식적이고 공개적인 차원에서 알려주고 있다면, 후자는 사적인 차원에서의 연암의 얼굴을 내보고 있다. 그런 점에서 두 책은 연암의 두 측면을 밝혀주는 것인데, 더욱이 두 교수의 보완적이면서도 동지적인 면모까지도 드러내준다. 우리의 옛 작가 중에 연암만큼 일반 대중이나 학자들에게 지속적으로 관심의 대상이 된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그의 인간적인 실제 모습, 외면적인 사상과 학문적 깊이 저 넘어 형성되어 있는 인간의 얼굴이 드러난 적은 없었다. 『고추장 작은 단지를 보내니』는 이런 우리의 연암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고 있다.    ‘홀아비의 모성’ 멀리서 너희들을 생각하면 서글플 뿐이다. … 이번 달이 네 처가 해산하는 달이라 밤낮 마음을 졸이며 기다리고 있다. 다만 달이 임박했는데 간호할 사람이 없으니 이 점이 걱정스런 일이다. (2. 수록된 순서를 가리킨다.)   전후에 보낸 쇠고기 장볶이는 잘 받아서 조석간에 반찬으로 하니? 왜 한 번도 좋은지 어떤지 말이 없니? ... 고추장은 내 손으로 담근 것이다. 맛이 좋은지 어떤지 자세히 말해주면 앞으로도 계속 두 물건을 인편에 보낼지 말지 결정하겠다. (7) 마치 딸을 시집보낸 어머니, 아들을 유학 보낸 시골 어머니의 음성을 듣는 것 같다. 이 글들은 51세에 부인을 떠나보낸 연암이 환갑을 전후한 나이에 멀리 경상도 안의현에서 떨어져 벼슬살이를 하면서 두 아들(종의·종채)에게 보낸 것들이다. 우리가 알던 연암은 새로운 세계관인 북학의 세계를 설파하고, 조선학자의 좁은 식견에 울분하고, 당시 동아시아의 정치질서를 논하던 선이 굵은 사상가이자 문학자였다. 그러던 그가 아들에게 고추장을 직접 담가 보내고 며느리의 산전산후 조리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역자인 박 교수에 의하면 이 책에 실린 33통의 편지글 중 큰 아들 종의에게 보낸 것이 무려 21통인데, 무엇보다 이런  ‘홀아비의 모성’이 가슴에 잡힌다. 이러한 섬세한 모성적 감성이 단순히 홀아비 생활 10년의 결과만은 아니다. 편지에 나타난 연암은 ‘근엄’한 선비가 아니라, 오늘날의 아버지처럼 자신이 몸으로 ‘설득하는 부성’을 가지고 있었다. ‘설득적 부성’       나는 고을 일을 하는 틈틈이 한가로울 때면 수시로 글을 짓거나 혹 법첩을 놓고 글씨를 쓰기도 하거늘 너희들은 해가 다 가도록 무슨 일을 하느냐. 나는 4년간 강목을 골똘히 보았다. … 너희들이 하는 일 없이 날을 보내고 어영부영 해를 보내는 걸 생각하면 어찌 몹시 애석하지 않겠니? 한창때 이러면 노년에는 장차 어쩌려고 그러느냐? 웃을 일이다, 웃을 일이야. (4) 과거 볼 날이 점점 다가오는데 …  비록 반도 못썼다 하더라도 답안지는 내고 나올 일이다. … 그리고 글씨 연습을 하지 않아서는 안되니 좋은 간장지를 사서 성의를 다해 살지고 충실하게 글씨를 써보는 것이 어떻겠니? 다섯 냥을 보내 줄테니 시지 및 과거 볼 때 필요한 물건을 사는데 보탰으면 한다. 다만 그때 임박해서 보내겠으니 잘 헤아려서 처리하렴. (17) 연암은 자신이 법첩을 놓고 글씨 연습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아들에게 공부의 기초를 단련하도록 설득하고 있다. 좋은 붓을 보내며 아껴 쓰라고 타이르고, 과거 시험문제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풀어보라고 설득하고 있다. 시험 볼 때의 비용을 보내주면서 젊은 아들이 손에 돈을 들고 시간낭비를 할 것을 염려하여 ‘임박해서’ 보내겠다는 헤아림과 함께 설득조의 부성이 생성된 것이다. 이 글을 읽고 누가 조선시대 선비를 근엄한 아버지라고 할 수 있을까.   세상사에 대한 권태로움, 그리고 서화 취미 나는 밥 잘 먹고 잠 잘 자며 가을을 맞아 몸이 꽤 회복되고 있는데, 다만 권태로운 증세가 날로 더욱 심해지니 어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29) 평시 필자는 연암이 「날개」의 작가 이상과 비슷한 면모가 있다고 생각하였는데, 이글은 특히 이상의 ‘권태’를 떠올리게 한다. 이상이 암울한 식민지적 일상, 탈출구 없는 막막함에 권태를 느꼈던 것처럼 연암의 권태 또한 그런 막막함과 답답함에서 오는 것일 터이다. 연암은 아들에게 이 권태증을 표현하면서 동시에 감사가 순회를 하는데 숙박에 필요한 물자를 조달해야하는 걱정을 늘어놓고 있다. 권태가 단순한 무력증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답답한 환경에서 오는 것임을 짙게 암시하고 있다. 세상사에 대한 이런 권태를 잊기 위하여 그는 서화 완상에 빠져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석치의 두 서첩과 화축을 잘 받았다. … 하루 종일 강물소리 요란하여 몸이 흔들흔들 마치 배에 앉아 있는 느낌이다. 대개 고요함과 적막함이 지극하므로 강물소리가 그렇게 느껴지는 거겠지. 문을 걸어 닫고 숨을 죽이고 있거늘, 보내온 이 권축을 펼쳐 이따금 완상하지 않는다면 내 무엇으로 심회를 풀겠니. 하루에 열 두 번 씩 이 권축을 열어 보거늘, 글 짓는 도리에 큰 도움이 되는구나. (3) 연암은 벗 정철조의 그림을 보면서 배에 탄 느낌을 갖는다. 그림 속 세계로의 감정 이입으로 ‘불안정한 마음’, 답답함을 풀어내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글 짓는 도리’가 느껴진다는 고백에서 우리는 연암의 문학이 자아의식과 사회의식이 충돌하는 현장에서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역자의 말처럼 이런 종류의 사적인 편지글이 작가 연구에 절대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거듭 보여준다.     한마디로 이 책은 대학자 대문호의 섬세한 내면을 맑은 물처럼 비추고 있다. 역자의 간결한 번역 문장이 이를 돕는다. 옛날 지명이나 관직명 등이 그대로 잘 살아있으면서도 오늘날 독자의 문장의식에 막힘없이 편히 읽힌다. 글에 나타나는 인물이나 사건에 완벽하리만큼 상세한 주를 다는 과정에서 번역문장이 푹 익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속에 드리운 작은 조약돌 하나라도 모두 시야에 넣으려는 공력이 보인다. 독자는 마치 그 시대 연암의 가정과 친구들 사이에 서있는 듯하다. 편지 하나마다 붙인 해설이나 책 마무리에 따른 역자의 해제를 따라 읽게 된다면 독자들은 아마도 이 서평이 쓸데없는 개칠임을 바로 느낄 것이다. 역자의 꼼꼼함이 연암의 명주실 같은 섬세한 감성과 만나고 있는 글속으로 바로 빨려들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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